[비즈한국] ‘골목이 살아야 지역경제가 살아난다’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서울시가 지난해부터 추진하는 ‘로컬브랜드 상권 육성사업’이 곧 1주년을 맞는다. 오세훈 시장이 취임 후 내놓은 ‘서울비전 2030’ 핵심과제 중 하나인 이 사업은 상권별로 3년간 최대 3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상권을 기반조성부터 활성화까지 지원한다는 계획을 담고 있다. 시는 유무형의 지역자원(스토리, 특화상품, 문화시설 등)을 활용해 특색 있는 상점들이 형성되어 있는 인지도가 높은 골목상권을 로컬브랜드 상권으로 규정했다. 지난 26~27일 장충단길(중구)과 양재천길(서초구)을 방문해 상인들에게 사업 시행 이후의 변화를 물어봤다.
#사람은 없고 ‘로컬브랜드 육성사업’ 깃발만
‘로컬 라이프 스타일을 경험할 수 있는 머물고 싶은 공간’으로 조성하겠다는 서울시의 목표가 무색하게, 장충단길에서는 외부 방문객을 찾기 어려웠다. 평일이라고는 하나 점심 시간대임에도 가게당 1~2테이블 정도만 좌석이 찼고, 그 손님도 대부분 인근 직장인이었다. 드문드문 여행가방을 끄는 외국인 관광객이 눈에 띄었지만, 오후 1시 30분이 넘어가자 거리에는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가게마다 내걸린 ‘로컬브랜드 육성사업’ 깃발도 방문객들의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상인들은 사업 초기임을 감안하더라도 상권이 활기를 띠지 못한다고 입을 모았다. 골목 초입에서 16년 동안 카페를 운영해 온 황 아무개 씨는 “중구에서 작성한 게시글을 보고, 혹은 지인에게 이야기를 듣고 찾아오는 손님은 10명 중에 1~2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여전히 직장인과 장충체육관 방문객이 손님의 주를 이룬다”며 “장충동 하면 족발이라는 생각에 오는 손님들도 “소문보다는 덜하다”면서 한 번 오고 만다. 가게에서 보면 사람들이 골목 안으로는 안 들어가고 대부분 골목 바깥쪽으로 직진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1대 장충동 상인회장 신 아무개 씨도 “팝업스토어 같은 행사가 열려도 주마다 또는 달마다 주기적으로 열려야 하는데, 어쩌다 한 번씩 단발적으로 하고 마니 손님들도 행사가 끝나면 장충단길을 잊어버린다. 그때 왔던 손님들이 다시 가게를 찾아온 적이 없다”면서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어야 사람들이 꾸준히 올 텐데 아직 그렇지 못하다. 저녁 7~8시 정도면 이 사거리 밑으로는 사람들이 지나다니질 않아서 상인들도 문을 닫고 들어가는 상황이다. 그러면 이후에 방문하는 사람들은 ‘여기는 일찍 닫는구나’ 하고 오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라고 말했다.
현 상인회장 윤상철 씨는 “손님이 없으니 주말에도 장사를 하는 곳이 몇 군데 안 된다. 우리 가게는 열고 있는데 대부분 남산을 다녀오는 사람들이 들어온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는 교회 내에서 식사하는 것이 제한돼 교회 사람들이 단체로 오곤 했는데 지금은 많이 줄었다”면서 “최근에는 인근에서 회사 연수원을 짓고 있어서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그래도 좀 와서 매출이 나오는 편이다. 유동인구가 원래도 적었지만 상황이 더 안 좋아졌다. 3년 후에는 가게 문을 닫게 되나 걱정이 든다”고 토로했다.
#상인들 “인프라 조성이 우선”
상인들은 사업계획서에 담긴 ‘상권 인프라 조성’이 지난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을 문제로 꼽았다. 골목을 알리는 조형물부터 골목을 비추는 도로조명, 방문객 주차장까지 전반적인 인프라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장충단길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한 점주는 “가로등이 없어서 저녁에는 거리가 깜깜하다. 골목 초입만 사람이 조금 있고 이쪽은 상권이 완전히 죽었다”며 “거리를 밝고 쾌적하게 만들어야 사람들이 찾지 않겠나. 요즘 가뜩이나 묻지 마 범죄가 많이 일어나는데 여성들도 두려워하지 않고 다닐 수 있도록 거리를 조성해야 한다. 나도 무서워서 5시면 퇴근한다”라고 밝혔다.
전 상인회장 신 씨는 골목 초입에 세워진 장충동 먹자골목 조형물에 큰 아쉬움을 드러냈다. 신 씨는 “저녁에 사람들이 찾아오려면 간판이 화려하거나 조명이 밝아야 하는데 이곳은 완전히 어두워서 사람들이 뭐 하는 곳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호기심을 갖게끔 해야 하는데 입간판이 밤에 불조차 안 들어온다. 하다못해 포토존같이 특이한 것이라도 있으면 와서 보려 할 텐데. 시에 여러 조형물 후보를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고 말했다.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2022~2024년까지 진행되는 로컬브랜드 상권 육성사업은 3단계로 나뉜다. 1단계에 해당하는 2022년에는 ‘기반 구축’을 목표로 로컬 브랜드 발굴, 로컬 네트워크 구성, 상권 인프라 조성, 로컬 크리에이터 양성 등이 계획됐다. 2단계인 올해는 ‘자생력 확보’를 목표로 로컬 브랜드 구축, 상생협약 체결, 상권 활성화 사업, 로컬 크리에이터 인큐베이팅 등을 꾀한다. 3단계인 2024년에는 ‘지속 가능’을 목표로 로컬 브랜드 강화, 성과 평가, 보완사업 추진, 상인조직 안정화 등을 구상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완료됐어야 할 상권 인프라 구성은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윤상철 상인회장은 “상인들은 이벤트 같은 것보다 외부에서 오고 싶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도로나 시설이 낙후되어 있으면 어떤 젊은이들이 오려 하겠나. 상인들이 먼저 도로 공사를 하자고 했는데 예산이 올해 하반기와 내년으로 잡혔더라. 조명 같은 부분도 건의했는데 실제로 바뀌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릴 것으로 생각한다”며 “연도별로 사업 주체가 바뀌는데 올해는 업체 선정이 4월에야 됐다. 올해가 벌써 7개월이나 지났는데 가시적인 게 안 나타나니 상인들은 조바심이 든다”라고 말했다.
27일 방문한 양재천길 또한 공영 주차장이 아직 공사 중이었다. 양재천길 카페 점장 류 아무개 씨는 “이쪽에 주차 공간을 가진 매장이 많지 않다. 거기다 거리 뒤편으로는 주거 지역이다. 차를 가지고 오시는 손님과 주차 문제로 갈등을 겪는 곳이 여럿 있다”면서 “애초에 시나 구에서 사업과 관련해 제대로 알려주지 않아서 우리도 길거리에 있는 현수막 같은 것을 보고 무슨 행사가 열리는지 안다. 안내문이라도 하나씩 나눠주면 매장에서도 같이 행사를 진행할지 계획을 할 텐데 아쉬움이 있다. 그렇게 하는 게 사업단과 사업장 서로에게 더 발전적이지 않을까 싶다”라고 말했다.
#“인위적 육성 바람직한가” vs “공공의 장점 있다” 전문가들도 엇갈려
서울시는 지난해 4월 ‘로컬브랜드 상권’ 육성사업 대상지로 ①장충단길(중구) ②합마르뜨(마포구) ③선유로운(영등포구) ④오류버들(구로구) ⑤양재천길(서초구)을 선정한 데 이어 지난 1월 경춘선숲길·사잇(it)길(노원구)과 용마루길(용산구)을 2기 상권으로 선정했다. 이와 별개로 시는 ‘2023년 골목상권 활성화 사업’으로 자치구별로 1곳씩 총 25개의 골목상권을 선정해 연말까지 골목당 1억 원을 투입해 매력적인 상권으로 활성화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앞서 시는 불광동 먹자거리, 장미원 골목시장 등의 상권 개발을 지원한 바 있다.
이 사업을 보는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공공의 잣대로 상권을 개발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꺼져가는 상권을 인위적으로 살린다는 게 장기적으로 좋은지 확신하기 어렵다. 도태되는 곳은 무너지고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곳은 살아나는 게 생태계인데 과연 이런 사업이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도움을 주는 게 과해지면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며 “한두 곳 정도 핀셋 지원하는 것이면 모를까 이렇게 많은 상권을 관리하는 게 맞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반면 공공 주도에 장점이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김현수 단국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도시재생사업은 시행착오가 많을 수밖에 없다. 다만 자발적인 활성화와 관제 사업 중 어떤 것이 더 낫다고 말을 하긴 어려울 것 같다. 공공에서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는 부분은 분명히 있다. 주차장, 도로, 소공원과 같이 민간에서 하기 어려운 기반 시설을 정비하는 데 노력을 기울일 수 있다는 부분에서 민간 주도 사업에 비해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김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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