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중견 화학 그룹 KPX그룹의 창업주 양규모 KPX홀딩스 이사회 의장이 장남 양준영 회장에게 최근 경영권을 승계했다. 그런데 이를 두고 ‘꼼수 승계’ 논란이 일고 있다. 양 의장이 보유하던 지주사 지분을 양 회장의 개인회사 ‘씨케이엔터프라이즈’에 블록딜 방식으로 매각했는데, 주식을 아들에게 직접 증여하는 대신 아들의 개인회사를 최대주주로 만들어 증여세를 낮췄다는 지적이 나온다.
KPX그룹은 화학지주사 KPX홀딩스가 정점에서 자회사 KPX케미칼·KPX개발·KPX글로벌·진양홀딩스를 지배하는 구조였다. 이번 승계를 통해 KPX홀딩스 위에 양 회장의 개인회사 ‘씨케이엔터프라이즈’가 자리한 ‘옥상옥’ 구조로 바뀌었다.
KPX홀딩스의 최대주주로 등극한 씨케이엔터프라이즈의 지분율은 11.24%에서 23.86%로 상승했다. 2대 주주는 10.40%를 보유한 양준영 회장이다. 양규모 의장(4.04%)의 지분율은 KPX문화재단(4.73%)보다 더 낮아졌다.
양규모 의장이 세 차례에 걸쳐 씨케이엔터프라이즈에 매각한 KPX홀딩스 주식은 53만여 주이며 총 매각가는 270억 원 수준에 달한다. 올해 4월 17일 12만 7000주, 5월 31일 31만 8906주, 6월 2일 8만 5294주를 넘겼다. 씨케이엔터프라이즈는 두 번째 블록딜 이전에 계열사 진양홀딩스 지분 11.63%를 KPX홀딩스에 매각해 210억 원가량을 확보했다. 자금 확보와 동시에 지배구조 단순화도 꾀한 것으로 파악된다.
양규모 의장이 양준영 회장에게 KPX홀딩스 지분을 증여할 경우 최대주주 지분 할증 등을 포함해 최대 60%에 달하는 증여세를 납부해야 한다. 이에 직접 증여가 아니라 개인회사 지분 매각을 통해 증여세 부담을 피해간 것으로 보인다. 양 회장은 씨케이엔터프라이즈를 통해 2008년부터 KPX홀딩스 지분을 꾸준히 매입해왔다.
씨케이엔터프라이즈의 주 수입원이 손자회사 격인 진양산업의 해외 종속회사 비나폼(VINA FOAM)과의 내부거래라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지난해 매출 101억 원 중 96억 원이 비나폼과의 내부거래에서 발생했으며 10년 전부터 비슷한 형태로 유지된 것으로 알려진다. 씨케이엔터프라이즈의 외형이 급격히 성장한 시기와 맞물린다.
진양산업은 2012년과 2015년 두 차례에 걸쳐 스폰지 원료 수출영업권을 씨케이엔터프라이즈에 양도했다. 씨케이엔터프라이즈가 KPX케미칼로부터 상품을 매입한 후 비나폼에 넘겨 매출을 올리는 중간다리 역할을 해온 셈이다. 지난해 씨케이엔터프라이즈는 KPX케미칼로부터 74억 원 가량의 상품을 매입해 이를 비나폼에 96억 원에 팔아 약 20%의 수입을 챙겼다. 2021년에는 진양산업이 수출영업권을 씨케이엔터프라이즈에 무상으로 넘겨줬다가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를 받았다. 당시 공정거래위원회는 양 사에 시정명령을 내리고 진양산업에 과징금 13억 6200만 원, 씨케이엔터프라이즈에 2억 7300만 원을 부과했다.
정동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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