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이제 2회가 남은 ‘악귀’를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나온다. ‘나병희(김해숙)는 얼마나 더 가져야 만족할까?’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 질문은 나병희가 아닌 이 사회에 던져져야 한다. 드라마 ‘악귀’에서 구산영(김태리)에게 씌운 악귀를 만들게 한 건 나병희와 그의 남편 염승옥(강길우) 부부지만, 그를 위해 어린 여자아이를 죽이는 데 동참한 것은 ‘장진리’로 대표되는 대한민국 사회니까.
‘악귀’는 악귀에 씐 여자 구산영과 그 악귀를 볼 수 있는 남자 염해상(오정세)이 그들 앞에 닥치는 의문의 죽음을 파헤치는 한국형 오컬트 미스터리물이다. 여기서 방점은 ‘한국형’이라는 데 있다. 정확히는 ‘악귀’는 현재 한국사회의 각종 병폐를 오컬트와 맞물려 소개한다. 보이스피싱, 아동학대, 가진 것 없는 청년들을 유혹하는 불법 대출 같은 범죄는 물론, 청년들은 떠나고 노인들만 남은 지역 사회, 남이 가진 것을 욕망하는 것을 넘어 탐욕하라고 몰아세우는 도시의 분위기 등이 드라마 속에서 전면적으로 그려진다. 그러다 보면 드라마 속 악귀가 무서운 것인지 이 세상이 무서운 것인지 분간이 안 가는 지경에 이른다.
‘악귀’에서 공시생인 구산영에게 씐 악귀는 장진리라는 마을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건과 관련이 있다. 1958년, 장진리의 마을 무당 최만월(오연아)은 중현상사를 운영하던 염승옥과 그의 아내 나병희에게 사주를 받아, 장진리에 살던 어린 여자아이 이목단(박소이)을 음식으로 꾀어 유인해 죽인다. 이렇게 죽은 아이의 혼령을 악귀인 ‘태자귀’로 만들어 사주한 이들의 부(富)를 방해하는 이들을 죽이고 재물로 승승장구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중현상사는 중현캐피탈로 이름을 바꿔가며 거액의 부를 쌓는다.
얻는 만큼 대가도 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악귀는 장자에게 계승되며, 부를 주는 대신 가장 사랑하는 것을 빼앗는다. 부를 누리며 즐기는 삶을 원하던 염승옥에겐 삶을 빼앗고, 사랑하던 아내를 빼앗길까 두려워 악귀를 없애고자 했던 염승옥의 아들 염재우(이재원) 또한 목숨을 잃는 데다 아내(박효주)를 지키는 데도 실패한다. 염해상에게 건너 갔어야 했을 악귀가 구산영의 아버지 구강모(진선규)에게 씌면서, 구강모는 희귀병으로 잃을 뻔하던 시력을 지키고 화원재를 비롯한 부를 얻지만 대신 사랑하던 아내 윤경문(박지영)과 딸 구산영을 잃는다.
남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는 심리는 자연스럽다. 그로 인해 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하는 마음인 욕망은 때로 성장과 발전의 동력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욕망이 상식적인 선을 넘어 탐욕의 지경에 이르면, 욕망 자체에 매몰되다 보면 이상행동을 하거나 남을 해코지하는 데 스스럼이 없어진다. 드라마의 악귀는 깃든 인물의 어두운 욕망을 먹고 자란다는 설정인데, 초자연적인 존재인 악귀가 아니어도 욕망이 인간을 얼마나 병들게 하는지는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건에서도 엿보인다.
내 아이를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부모의 이기적인 욕망이 또 다른 부모의 자녀인 한 교사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의구심이 드는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신림동에서 벌어진 ‘묻지마 칼부림 사건’의 범인은 “나는 불행하게 사는데,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다”는 말을 남겼다. 나의 욕망이 최우선이어야 하고, 내가 가질 수 없다면 남들도 가지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비틀린 욕망의 모습 아닌가. 이런 뉴스들을 보다 보면 드라마처럼 차라리 악귀라는 초자연적 존재가 우리 사회에 출몰한다고 믿는 게 낫지 싶을 정도다.
‘악귀’를 쓴 김은희 작가는 “어릴 때 홀리듯 봤던 ‘전설의 고향’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 바 있다. 김은희 작가뿐 아니라 한국인 대다수는 도깨비와 구미호, “내 다리 내놔!”로 친숙한, 시즌제 납량특집 드라마 ‘전설의 고향’이 친숙하다. ‘전설의 고향’은 전국 각 지역에 내려오는 전설이나 이야기들을 소재로 하는데, 그 안에는 가족 구성원 중 일부의 희생을 강요하던 열녀와 씨받이 등 조선시대를 포함한 당시 시대의 그릇된 병폐가 녹아 있었다. ‘악귀’는 조선시대가 아닌 현생에 일어나고 있는 문제들을 오컬트과 맞물려 보여주며 ‘전설의 고향’이 담았던 메시지를 한층 극대화한다.
부를 위해 아이를 죽이는 나병희와 염승옥과 장진리 사람들은 물론이요, 출생신고조차 않고 자신의 자식을 학대하는 사람들, 이윤을 위해 가난한 청년들에게 불법 대출을 권하고 자살로 내몰 정도로 괴롭히는 사람들, 객귀가 된 딸을 만나고 싶다는 마음으로 온 마을을 죽음으로 내모는 할머니, 자신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남이 가진 초라함을 대놓고 조롱하는 사람들··· 누구 하나 끔찍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귀신보다 무서운 게 사람이란 것을, ‘전설의 고향’이 사라진 지금 ‘악귀’가 보여주고 있다.
수거해야 할 떡밥들이 많지만 어쨌거나 ‘악귀’는 남은 2회 동안 구산영에게 씌인 악귀에 얽힌 추악한 사건의 전말을 밝히고 악귀를 없앨 것이다. 마지막 회까지 눈을 떼지 않고 드라마를 볼 테지만, 악귀가 없어진다 해도 씁쓸한 마음이 해소되진 않을 것 같다. 악귀가 없어지고, 나병희가 인과응보에 처해진다 한들, 악귀 같은 욕망을 부추기는 사회가 달라질 것 같진 않아서. 현생의 뉴스에서 악귀 같은 사건들이 계속될 것 같아서. 고난한 현실에서도 좌절하지 않는 구산영 같은 청년세대가 희망이라고 드라마는 말하고 있지만, 청년들에게만 희망을 거는 것이 옳은 것인가 하는 부채의식도 있다. 어쩌면 김은희 작가 또한 그 부채의식으로 ‘악귀’를 쓴 것인지도 모르겠다.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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