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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와이너리] 잡스가 남긴 '디자인 유산'이 위대한 까닭

16년 간 이어진 스마트폰 디자인 원형 제시…자기파괴적 혁신으로 헤게모니 주도

2023.07.20(Thu) 11:31:39

[비즈한국] 2007년 출시된 아이폰 1세대 4GB 미개봉 신품이 경매에서 19만 372.80달러(2억 4158만 원)에 낙찰됐다고 미국 경매업체인 LCG 옥션이 2023년 7월 17일(현지시각) 밝혔다. 4GB 용량은 아이폰 초창기에 출시됐다가 두 달 만에 단종되어 생산량이 많지 않다. 수집가들 사이에선 아날로그뿐 아니라 디지털 기기도 수집의 영역으로 들어온 지 오래다.

 

애플 제품을 쓰는 사람들 중에는 새로운 기기로 바꿔도 전에 쓰던 기기를 버리거나 팔지 않는 사람이 많다. 애플이 추구하는 고유 생태계가 제품 주기의 마지막까지 작동 중인 셈이다. 더구나 그것이 아이폰 1세대 신품이라면 누군가는 막대한 금액을 지불하고라도 충분히 갖고 싶을 수 있다.

 

아이폰은 단순히 새로운 휴대전화를 만든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의 개념을 재정의했다.

 

아이폰이 일으킨 열풍은 세계인의 삶을 영원히 바꿔 놓았다. 이전에도 ‘스마트폰’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제품이 없진 않았다. 그러나 아이폰은 친근한 디자인, 최적화된 OS, 그리고 앱스토어로 대표되는 애플리케이션 생태계를 통해 기기가 허락하는 성능 안에서 사용 가능한 프로그램의 제한을 사실상 없앰으로써 소수의 계층이 한정된 용도로 사용하던 스마트폰의 개념을 전면 재정의하고 사용 계층을 일반인까지 끌어내린 최초의 모델이다.

 

뮤직 플레이어와 휴대전화, 인터넷 통신 기기를 합친 아이폰은 애플 입장에서 딜레마에 가까웠다. 당대 최고의 히트 상품 아이팟을 고사시킬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애플은 이전에 휴대전화를 만든 경험도 없었다. 그러나 기업이든 개인이든 나 자신이 혁신하지 않으면 남의 혁신에 의해 청산당하기 마련이다. 애플은 자기 파괴적 혁신을 통해 스스로를 깎아 내면서 그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잠재적 헤게모니를 잡는 쪽을 택했다. 최초의 디지털카메라를 발명해 놓고도 자사 주력 제품이었던 필름 시장 약화를 우려해 주저하다가 끝내 회사 자체가 존폐 위기에 처했던 코닥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2006년 발표된 최초의 아이폰 디자인. 지금 스마트폰 디자인과 비교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진=애플 제공

 

새로운 개념을 담을 디자인도 뭔가 달라야 했다. 초기엔 아이팟처럼 전면 트랙 휠이 포함된 형태가 검토됐다. 그러나 개발팀은 트랙 휠을 입력 용도로 쓰기엔 부적절하다는 사실을 곧 깨닫고 유동성이 큰 멀티터치 스크린으로 선회했다. 단순하지만 중요한 발상의 전환을 통해 글자판과 숫자패드는 스크린 안으로 들어갔다. 그다음에는 거대한 스크린과 그 위에서 일어날 다양한 액션을 받쳐줄 수 있는 신소재 고릴라 글라스를 적용했다.

 

그리하여 우리가 아는 전면 스크린과 몇 개의 물리 버튼으로만 구성된 아이폰 디자인이 탄생했다. 그리고 이 형태는 스마트폰 디자인의 원형이 되었다. 배터리는 기존 휴대전화와 달리 교체할 수 없도록 밀봉됐는데 이것은 애플의 통제적 성향을 보여주는 사례다. 외형뿐 아니라 UI에서도 아이폰의 등장으로 대중화된 부분이 적지 않은데, 단적인 예로 잠금 해제 기능과 문자메시지가 있다. 기존 기기와 달리 메시지를 인물 별로 따로 정렬하여 실시간 채팅처럼 보여주는 인터페이스 역시 이후 등장한 대부분의 스마트폰과 채팅 앱이 그대로 따랐다.

 

디자인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 뿐만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내용도 함께 포함된다. 사진=애플 아이폰 발표 화면 캡처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을 매킨토시 이후 자사의 가장 중요한 제품으로 여겼다고 한다. 애플은 1977년 애플 II를 통해 개인용 컴퓨터 붐을 일으켰지만 80년대 들어오면서 경영진의 내홍과 제품력 약화로 흔들리면서 IBM 호환 기종 진영에 주도권을 내줬다. 그러나 이제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고 2007년 첫 출시부터 지금까지 플래그십 스마트폰의 대명사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필자 한동훈은? 서체 디자이너. 글을 쓰고, 글씨를 쓰고, 글자를 설계하고 가르치는 등 글자와 관련된 모든 분야에 관심이 있다. 현재 서체 스튜디오 얼라인타입에서 다양한 기업 전용폰트와 일반 판매용 폰트를 디자인한다. ‘월간 디자인’​, 계간 ‘디자인 평론’​​등에 기고했으며 온·오프라인 플랫폼에서 서체 디자인 강의를 진행한다. 2021년 에세이집 ‘글자 속의 우주’​를 출간했다.   

한동훈 서체 디자이너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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