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하도상가(지하상가)’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대에 구경하는 재미가 있어 외국인 관광객도 한국을 방문하면 한 번쯤 들르는 곳으로 꼽힌다. 하지만 현금 결제를 유도하거나 정당한 이유 없이 교환·환불을 해주지 않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나오면서 소비자 사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8일 방문한 고투몰(고속버스터미널 지하상가)과 강남역 지하상가 입구에는 ‘우리 지하상가는 교환·환불·카드결제를 거부하지 않습니다’라는 내용의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그러나 이 같은 문구가 무색하게 매장 대부분이 현금가와 카드가를 따로 제시하거나, 교환·환불이 어렵다는 점을 고시하고 있었다.
#“아침부터 환불하러 오냐” 막말도
A 씨는 지난 주말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위치한 고투몰의 한 매장에서 현금 6만 원을 지불하고 셔츠를 구입했다. 가격이 조금 부담스러운 데다 입어보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던 그는 1시간가량이 지났을 즈음 환불하기 위해 다시 매장을 찾았다. 그러나 직원은 “교환만 가능하며 환불은 불가하다”고 했다. A 씨가 “구입 당시 환불 관련 안내를 따로 받지 않았다”고 따져 묻자 직원은 자신은 권한이 없으니 내일 다시 오라고 했다.
다음날 다시 고투몰을 찾은 A 씨는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상점 주인이 “무슨 아침부터 환불을 하러 오는 거냐. 백화점도 아침에는 기분 나빠서 환불을 안 해준다”며 환불을 거절한 것. A 씨는 결국 지하상가를 관리하는 서울시설공단 측에 민원을 넣은 후 환불을 받았다. A 씨는 “주인의 기분까지 고려해가며 환불을 받아야 하나. 매장 직원에게 구두로 혹은 영수증을 통해 환불 관련 안내가 전혀 없었음에도 환불을 받지 못할 뻔했다”고 토로했다.
하루 동안 지하상가 두 곳을 살펴보니 A 씨와 비슷한 일을 겪는 방문객이 여럿 보였다. 한 여성복 전문 매장 앞에서는 고객과 직원이 한창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초록색 여름 셔츠를 든 중년 여성이 “집에 가서 딸에게 보여주니 (옷이) 너무 안 어울린다고 하더라. 미안하지만 환불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하자 직원은 “어제 저렴하게 드렸는데 왜 그러시냐. 지하상가는 원래 흥정하는 곳이라 환불이 안 된다”며 다른 옷으로 교환할 것을 권유했다. 결국 여성은 환불 대신 직원이 추천한 파란색 긴팔 남방을 가져갔다. 여성은 “전날 환불이 안 된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민원 내용 가운데 교환·환불 거부가 가장 많아
고투몰·강남역 지하상가 상점 대다수는 매대마다 혹은 매장 내에 ‘교환·환불X’가 적힌 공지를 붙여놨다. 일부는 ‘교환은 3일 이내, 환불은 불가’라는 라벨을 상품마다 달아놓았다. 착용 흔적, 라벨 제거 등 교환이 어려운 조건도 빼곡히 적혀 있었다. 이처럼 가게에서 교환·환불 불가를 사전에 고지한 경우 소비자들은 교환 혹은 환불을 받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고투몰에선 매장 대부분이 ‘현금가’와 ‘카드가’를 다르게 받았다. ‘부가세 10% 별도’ 혹은 ‘현금가’ 등의 표시를 해놨는데, 기자가 카드 결제는 안 되는지 묻자 직원은 “계좌 이체는 가능하다”며 데스크에 적어둔 계좌번호를 가리켰다. 반면 강남역 지하상가에서는 부가세를 별도로 받는 매장은 많지 않았다. 매장 직원들에게 카드로 결제하는 경우 수수료가 붙는지 묻자 “그렇지 않다”고 답변했다.
지하상가의 환불 거절이나 카드결제 거부를 두고 소비자들은 “판매자 중심적”이라고 지적한다. 지하상가 매장은 대부분 피팅룸이 없어 다른 의류매장에 비해 옷을 충분히 살펴볼 수 없음에도 교환·환불 규정이 지나치게 까다롭기 때문이다. 가격을 미리 고지하지 않거나, 신발 같은 상품의 크기를 늘려 놓고 강제로 판매하는 사례 등의 민원도 계속해서 접수되는 상황이다.
서울시설공단으로부터 받은 ‘최근 3개년 교환·환불 거부 및 불친절 민원 발생 현황’에 따르면 2021년~2023년 6월까지 접수된 민원은 모두 100건으로, 상품 교환·환불 거부가 64건, 임차인 불친절이 36건으로 집계됐다. 연도별로는 2021년 39건, 2022년 42건, 2023년 1~6월 19건으로 매해 비슷한 수준이다. 또 모든 연도에서 상품 교환·환불 거부 민원이 임차인 불친절 민원보다 많았다.
신대방동에 거주하는 이 아무개 씨(53)는 “만 원, 2만 원짜리 상품은 직원이 입어보라고 하지도 않는다. 그나마 오늘 구입한 3만 9000원, 4만 9000원 제품은 매장 안에서 한번 착용해보라고 하더라”라며 “교환이나 환불 문제로 직원과 손님이 다투는 모습을 너무 많이 봐서 애초에 해줄 거라고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한철 입는 옷 정도로 생각하고 산다”고 말했다. 이 씨는 “카드로 결제하면 수수료가 붙어서 대체로 현금이나 계좌이체로 사는데 손님의 입장을 조금 더 헤아려주면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공정거래위원회 소비자분쟁해결기준 규정상 의복류는 봉제·원단·부자재 불량, 치수(사이즈)의 부정확, 부당 표시(미 표시 및 부실 표시) 및 소재 구성 부적합으로 인한 세탁 사고가 발생한 것 외에도 사이즈가 맞지 않거나 디자인·색상에 불만이 있는 경우 제품 구입 후 7일 이내로 제품에 손상이 없다면 교환 또는 환급을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 규정은 분쟁이 원활하게 해결될 수 있도록 구체적인 합의 또는 권고의 기준을 제시하는 데 목적이 있는 만큼 강제성이 없다.
#경고, 과태료 부과해도 불공정 거래 계속…공단 “적극 개입, 노력 기울일 것”
서울시설공단 측은 지하상가관리규정을 통해 불공정 거래를 제한한다. 관리규정은 점포임대차계약서 제13조(임차인의 준수의무)에 따라 임차인은 ‘상품의 교환 및 환불거부 등 소비자 보호의무를 위반하거나 기타 고객의 권익을 침해하는 행위’, ‘고객에게 폭언이나 폭행을 가하거나 불친절한 고객서비스 등으로 고객이 불만을 갖게 하는 행위’ 등을 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공단 관계자에 따르면, 서울시에 지하상가 25곳이 운영되고 있는데, 이 중 고투몰과 강남역 지하상가를 포함한 일부 상가는 수탁법인이 공단으로부터 승인을 받은 운영 규정을 바탕으로 상가를 전적으로 관리한다. 시민의소리 홈페이지에 접수되는 민원도 수탁법인 측에서 사실관계를 확인한 후 민원인과 상의 조치 등을 거쳐 공단에 회신을 주는 식이다.
고투몰 수탁법인 (주)고투몰 관계자는 “교환·환불 거부, 가격 미표시, 현금영수증 미발급 등을 포함한 15개의 항목이 발생한 매장에는 경고장을 발부한다. 경고가 3회 누적되면 과태료를 부과한다”며 “과거에는 영업정지 등의 처벌 규정도 있었지만 상인회에서 과하다는 지적이 나와 현재는 과태료만 부과하고 있다”고 말했다. 준수의무를 위반한 임차인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 교육은 “일일이 방문할 수 없기에 공문을 보내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강남역 지하상가 수탁법인 (주)한국플랜트 측은 “위반사항 발생 시 2회까지는 구두 경고, 3회부터 금전적인 페널티를 부과하고 있다. 서비스 교육은 유선으로 연락한 후 공문을 보내는 식”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여전히 지하상가의 불공정 거래가 끊이지 않아, 공단이 사실상 이를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민의소리 홈페이지에 접수된 민원을 살펴보면 동일한 가게에서 같은 문제가 여러 번 생기는 경우도 적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공단 관계자는 “단속은 사실상 어려운 부분이 있다. 현장을 적발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곳곳에 현수막과 배너를 붙여놓고 전단지를 제작해 배포하는 등 홍보나 캠페인을 통해 점주가 인식을 전환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점포가 많고 판매 건수가 많은 데다 임차인도 계속해서 바뀌어 관리에 어려운 측면이 있다. 다만 현재까지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까지 가는 등 민원이 원만하게 해결되지 않은 경우는 없었다”며 “공단에서도 민원이 발생하면 적극 개입해 조사에 나서는 등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김초영 기자
choyoung@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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