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난 2021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파기환송심 과정에서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들과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 등이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한 사실이 보도됐다. 이들 중 일부는 대법원 재판연구관 경력을 가진 판사 출신이었다. 이들은 “2017년 항소심(고등법원)과 2018년 상고심(대법원)에 법원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 씨(개명 전 최순실)를 단순뇌물죄의 공동정범으로 파악해 최 씨에게 금품을 전달한 이 부회장을 처벌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취지로 의견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들의 보수가 수천만 원에 달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로스쿨 교수들이 대가를 받고 써주는 법원 제출 의견서가 다시 논란이 된 것은 권영준 대법관 후보자(사법연수원 25기) 인사청문회에서다. 권 후보자가 서울대 로스쿨 교수로 재직한 기간(2018~2022년)에 국제중재와 국내소송 등 총 38건의 사건에 의견서 63건을 작성하고 약 18억 원을 받은 사실이 알려진 것. 권 후보자 측은 세금과 필요경비를 제하면 7억 원 정도라고 설명했지만, 법조계에서는 현직 교수가 한 달에 한 번꼴로 수천만 원을 받고 의견서를 써주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야당선 “변호사법 위반” 주장
처벌 필요성도 제기된다. 김회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1일 권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서울대 교수로서 돈을 받고 법률관계 문서를 작성한 건 변호사법 109조와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변호사법 109조는 변호사가 아니면서 이익을 받거나 받을 것을 약속하고 법률관계 문서를 작성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이를 어기면 7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권 후보자는 판사 출신 교수로 변호사 자격은 있다. 하지만 대한변호사협회에 변호사 등록을 하지 않고 법원(판사)에서 서울대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변호사가 아니면서’의 법 문항을 ‘변호사 자격증이 없는 사람’으로 제한하면 권 후보자의 행위는 위법 여지가 있다.
변호사법 112조 위반 소지도 있다. 변호사법 112조는 변협에 등록하지 않고 변호사의 직무를 수행한 변호사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의견서를 ‘변호사 직무 수행’으로 볼 경우 109조나 112조 모두 위반으로 볼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권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학술적 소신에 따라 학자적 의견을 개진한 것”이라며 “의견서 형태가 아니라도 법대 교수들이 연구용역 등 법률관계 문서를 많이 작성하고 그 대가를 받는 경우는 국내에서 매우 널리 알려져 있다”고 반박했다. 야당 의원들의 질의에 답한 서면답변서에는 “전문가 의견서 제출이 변호사가 변호사의 지위에서 수행해야 할 법률 업무의 영역을 침해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적었다. 변호사법 위반 가능성을 부인한 것이다.
#“수천만 원 받는데 소신 담을 수 있겠나” 지적도
그렇다면 법조계에서 ‘교수 의견서’는 어떻게 활용되고 있을까. 대형 로펌에서는 기업 사건에서 쟁점을 두고 다툼의 여지가 있을 때, 법원 설득 근거용으로 주로 활용된다고 설명한다. 형사보다는 손해배상 등 재판부의 판단 비율이 중요한 민사에서 더 많이 쓰인다는 게 공통된 설명이다.
대형 로펌의 파트너 변호사는 “판사들도 자주 참고하거나 형법, 민법, 국제법 등 특정법의 권위자라고 평가받는 교수들에게는 수천만 원을 주고 의견서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큰 기대를 하기보다는 학계에서도 우리 의뢰인 측의 입장에 지지하는 의견을 가지고 있다고 재판부에게 호소하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교수들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쓰기 때문에 내용에 따라 차등이 있지만 암묵적으로 1000만~5000만 원 내외의 비용을 지불한다고 귀띔했다. 아무나 받을 수 있는 제안도 아니라고 한다. 권위가 없는 교수의 의견서는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소형 로펌의 대표 변호사는 “친분이 있는 교수에게 의견서를 받으려고 한 적은 있지만 본인의 전문 분야가 아니면 꺼리기 때문에 받지 못했다. 규모가 있는 대형 로펌들이나 가능한 전략”이라며 “다만 의견서 한 장이 3000만 원이 넘는 게 일반적인데 이게 효율적이냐는 것에 대해서는 변호사들마다 의견이 다를 것 같다”고 설명했다. 책임 여부 인정 등 비율에 따라 수천만~수십억 원이 오갈 수도 있는 민사 재판에서는 시도해봄 직하지만, 유무죄를 다투는 형사 사건에서는 효율이 적다는 얘기다. 특히 새로운 법적 쟁점이 없는 경우 낭비라는 지적도 나온다.
권 후보자 청문회에서 의견서 비용 논란이 제기되면서 변호사업계 일각에서는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권 후보자의 설명처럼 미국에서는 법정 대응 전략으로 자주 활용되는 부분이지만, 대가가 수천만 원에 달한다면 교수가 자신의 소신을 담을 수 있겠냐는 우려가 반영된 것이다.
앞선 대형 로펌 파트너 변호사는 “사형제 같은 문제에 대해 헌법 전공 교수들이 헌재에 의견서를 내는 것은 누구나 다 소신과 신념이 담겼다고 생각하지만, 법원 사건에서 의뢰인의 입장을 지지하는 교수들의 의견서가 얼마나 소신과 신념을 담고 있을지는 의문”이라며 “의견서 대가로 오가는 비용에 대해 법원과 대한변협 등에서 가이드라인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차해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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