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난달 한 외국인이 잠실 롯데월드타워를 무단으로 맨손 등반해 논란이 일었다. 단순 등반 목적으로 알려지면서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일각에선 초고층 건물에 대한 안전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롯데월드타워는 123층, 높이 555m에 달하는 국내 최고층 건물로 테러 가능성에 대비해야 함에도 이번에 테러 대응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다.
#약 4시간 만에 무단 등반…당국, 3시간 후에야 알아
외국인 남성이 무단 등반을 시작한 건 6월 12일 오전 5시경으로 알려졌다. 오전 7시 49분경 롯데월드타워 보안요원이 등반하는 모습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고, 8시 3분쯤 현장에 도착한 경찰과 소방은 오전 9시경 73층에서 그를 구조했다.
무단 등반한 지 약 3시간 만에 롯데월드타워 측에서 이를 인지하고, 4시간 만에 구조한 셈이다. 롯데물산 관계자는 “롯데월드타워 보안요원이 최초 목격해 신고했다. 이후 관할 송파경찰서에서 조사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롯데월드타워는 국내 최고층 건물로 대표적인 테러취약시설이다. 서울시에선 롯데월드타워를 초고층‧지하연계 복합건축물 재난관리계획 대상에 포함해 관리하며, 경찰청에서도 테러취약시설로 분류해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곳에서도 3시간 가까이 무단 등반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경찰이 이를 인지한 후 상황을 종료하기까지는 1시간이 걸렸다. 심지어 외국인에게 등반 중단을 설득한 사람도 롯데물산 직원으로 알려졌다.
롯데월드타워에서 무단 등반이 발생한 건 처음이 아니다. 2016년 외국인 사진작가가 공사 현장 최상층부에서 무단으로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려 논란이 일었다. 2018년에는 프랑스 암벽등반가가 남북관계 진전을 기념한다며 무단으로 롯데월드타워를 등반했다가 75층에서 체포됐다.
#초고층 건축물 안전 관리 충분할까
롯데물산은 테러 대비를 위해 2015년 국내 최초로 자체적인 테러대응팀(L-SWAT)을 만들었다. 당시 롯데월드타워에 폭발물을 설치했다는 장난 전화에 놀랐던 일이 계기가 되었다. 롯데물산에 따르면 현재 롯데월드타워 대테러팀은 인력 7명, 탐지견 3마리로 구성돼 24시간 대기한다.
이번 무단 등반 사건에서는 대테러팀은 움직이지 않았다. 롯데물산 관계자는 “외국인 남성이 무단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안요원이 보고 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대테러팀에서 대응을 한 건 아니다. 신고 후 경찰들이 오기 전까지 보안요원과 테러팀 요원들이 현장통제를 했다. 이후 직원이 남성을 구조해 경찰에 인계했다”고 설명했다.
지자체나 경찰에선 어떻게 대응했을까. 건물에 대한 안전관리 대책을 총괄하는 기관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경찰은 신고 받은 후 소방대와 함께 출동했지만, 테러 대비는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경찰청 관계자는 “테러취약시설은 방호 능력을 갖췄는지, 관련 설비 등을 갖췄는지 등을 점검하고 필요 시 교육도 한다. 그러나 건물 관리는 경찰이 아니라 시설주가 주체다. 테러방지법에 테러의 정의가 엄격하게 규정돼 있는데, 건물 외벽을 타는 것은 테러로 분류하지 않는다. 테러팀에서 관여할 사항이 아니었다”고 선을 그었다.
관할 지자체도 바로 대응하지는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송파구청 관계자는 “안전관리 및 방범·보안·테러 등을 포함한 통합적 재난관리를 효율적으로 시행하기 위해 종합방재실을 운영하고 있다. 롯데월드타워 내부에도 종합방재실이 설치돼 방재인력들이 24시간 상주한다. 6월 12일에는 소방으로부터 관련 상황을 전달 받아 4명이 현장에 출동해 현장 활동이 종료된 9시 2분까지 함께 대응했다”고 밝혔다. 다만 정확한 출동 시각은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서울시는 이번 사건에서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에서 하는 초고층 건축물 관리는 관련 시설을 점검하는 것이며, 이런 사건이 일어났을 때 시에서 직접 대응하진 않는다. 초고층 건축물은 시설의 종합방재실에서 대응하는 걸로 안다”고 말했다.
건물 안전 관리에 대한 내용도 기관마다 다르게 인지하고 있다. 2020년 서울시는 초고층 건축물에 대해 종합적인 재난관리계획을 처음 수립했다. 여기에는 롯데월드타워도 포함됐다. 서울시 중대재해예방과 관계자는 “초고층재난관리법에 의해 화재 등을 대비하고 피난안전구역 등을 관리한다. 소방청에서 일 년에 두 번씩 현장 방문을 하는 방식이며, 지자체에선 이를 지원하는 식이다. 소방청에서 계획이 내려오면 지자체는 항목별로 조사하고 관리하는데, 여기에 테러나 안전진단, 살인사건 등이 포함된 건 아니다”고 설명했다. 송파소방서 관계자 역시 “테러 대응은 잘 모르겠다. 화재 대비해서는 롯데월드타워를 대상으로 매달 훈련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행정안전부와 국방부 등 정부 기관도 서로에게 책임을 돌렸다. 행정안전부 대변인실은 “특정 건축물에 대해 행안부가 안전관리계획을 총괄해 세우진 않는다. 소관 부처마다 지자체와 협조해 사고별로 대응하는 체계다. 테러 대응 같은 경우는 행정안전부에서 관리하지 않는다. 국방부에서 하는 걸로 안다”고 밝혔다. 반면 국방부 대변인실은 “민간 시설은 행정안전부 담당으로 알고 있다. 군에서 민간시설을 지정해 통제하진 않는다. 일반적으로 대테러 같은 경우 군도 대응하지만, 행안부 쪽에서도 경찰 병력을 바탕으로 대응하게 돼 있다. 민간 영역과 군의 영역은 조금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민간 초고층건축물에 대한 안전 관리 콘트롤타워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다.
#민간 건축물 안전관리 모호…전문가들 “안전 관리 강화해야”
전문가들은 롯데월드타워가 민간 건물이라는 이유로 국가에서 안일하게 대처하고 있다며 초고층 건축물에 대한 안전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개인 건물의 경우는 국가에서 임의로 관리하기 어렵기 때문에 초고층 건축물은 총괄 자산관리자를 두고 방범이나 테러 보안에 관련된 부분을 개별적으로 신경 쓰도록 한다. 또 이번 사건은 테러 목적이나 의도성이 없었기 때문에 테러 대응 시스템이 작동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면서도 “다만 안전과 보안상으로는 관리가 더 필요해 보인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추후 이런 상황이 반복되지 않게끔 보완하는 게 필요해 보인다”고 짚었다.
국내 테러 대응 시스템을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우리나라가 외국에 비해 테러가 많이 발생하지 않은 만큼 민간 시설의 대응은 준비가 부족해 보인다. 그러나 앞으로는 시설 테러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문화가 다양해지고 여러 정치적 갈등이 표출되기에 더 그렇다. 아직 다중이용시설에 대한 보안 관리가 충분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국가적인 테러 대응 대책이 더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다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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