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규모가 크든 작든 여러 구성원이 모이는 집단에는 규칙이라는 것이 있다. 회사 내의 규칙은 사규라고 하는데 그 중에서도 근로조건이나 복무, 직장질서 등에 대한 취업규칙은 입사하자마자 숙지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이라면 단체협약도 필수다. 회사에 따로 사규나 취업규칙이 없는가? 그러면 지금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고 있는 이들의 머릿수를 세어보자. 상시근로자가 10명 이상이라면 근로기준법에 따라 취업규칙을 작성하고 신고하게 되어있다. 그리고 누구든 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비치해 두어야 한다.
주위 선배나 동료들에게, 인사, 총무, 혹은 경리 담당자에게 물어보고 보여달라 하라. 다들 모르겠다고 대답하면 사장에게라도 물어봐야 한다. 취업규칙을 숙독해야 하는 이유는 근로자가 직장에 소속된 이상 지켜야 할 각종 의무와 책임, 그리고 권리가 모두 적혀있기 때문이다. 이를 잘 알고 있어야만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
규칙을 어기면 제재를 받듯이 근로자가 회사의 직장 질서를 위반하면 징계를 받는다. 일하면서 그럴 일이 얼마나 있겠나 싶지만 사람 사는 일은 모르는 일이다. 물론 사규에 적혀있으니 회사 사정이나 현안업무는 내팽개치고 자기 권리만 주장할 수 없는 것처럼, 사규를 지키지 않았다고 해서 무조건 징계를 받는 것도 아니다. 또한 사용자의 징계가 사내에서야 고유권한으로서 효력이 있겠지만, 회사를 벗어나 다퉜을 때는 무조건 정당하고 합당한 처벌행위라고 인정되지도 않는다.
근로자의 비위행위에 대해 징계하려면 그 사유와 절차, 그리고 처분양정(흔히, 경고-견책-감봉-정직-해고가 징계양정에 해당함)의 세 가지가 모두 정당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사용자가 명확하게 증빙할 수 있어야만 외부에서도 적법한 징계권의 행사로서 인정된다. 그런데 실무자 입장에서 이 세 가지를 모두 문제없이 진행하는 것 자체가 꽤 힘든 일이다.
징계사유는 불분명한데 특정 행위가 밉보여 그간의 근무태도나 업무실적, 업무지시 이행 여부 등을 문제 삼아 무조건 징계해고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고(이럴 때는 노동위원회에 구제 신청하면 100% 패소하고 돈만 깨지니 제발 정신 차리시라고 설득하는 것이 일이다), 부서 내에서 관리감독자가 적절히 관리하면 될 문제를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어 징계 절차부터 밟자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꼭 막대한 금액의 횡령이나 성추행 같은 범법행위만 징계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다. ‘회사의 위상이나 사회적 평가에 위해를 가하는 행위’라는 것은 때에 따라, 혹은 어떻게 논리를 만들고 살을 붙이느냐에 따라 사소한 행동에 불과했던 것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징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코로나 감염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2020년 4월. 마스크 미착용을 이유로 징계 요구된 직원 A, B가 이런 사례였다. 두 사람 모두 감염에 취약한 고령층의 고객을 직접 대면하는 현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이었다. 유행 초기, 마치 낙인찍듯 번호가 매겨진 감염자들의 동선이 낱낱이 공개되고 세상의 관심과 시선이 집중되어 있을 때였다. 직원 감염 시 직장폐쇄로 인한 영업 피해는 둘째치고 언론에 회사명이 거론되는 것만으로 질타의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혹여 내가 회사의 1번 감염자가 되면 어쩌나 하는 공포로 모두의 신경이 곤두서 있었고 그것이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였다.
A, B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채 출근하다가 방역 관리 중이던 직원에게 확인되었다. 평소 같으면 그냥 지나갈 법한 일이었는데 하필이면 마스크 착용을 요구하는 총무부 직원과 언성을 높여 실랑이하는 모습이 출근길 오너의 눈에 직접 발각되었다. 해당 직원들을 면담하고 인사위원회를 개최하기까지 하루가 채 걸리지 않았다. 무조건 당일에 징계 인사명령까지 내도록 하라는 것이 징계권자의 지시사항이었다. 하루 종일 해당 직원의 소속 부서는 물론 노조로부터 전화가 빗발쳤다.
업무를 처리하는 내내 이게 과연 맞는 건가 하는 의문을 떨쳐내기 힘들었다. 하지만 회사는 이들을 본보기로 삼아 마스크 착용과 사내 방역 지침을 직원들의 뇌리에 각인하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있었고 안타깝게도 그들은 희생양이 되었다. 징계양정 자체는 각각 경고와 견책(직원에게 욕설한 행위가 인정됨)에 그쳤으나 당시의 인사위원회는 마치 그들이 엄청난 부정행위를 저지른 범죄자이고 잠재적 감염자인 양 몰아가는 분위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3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 보면 별것도 아닐 일이지만 그때는 모두가 이성을 잃은 야수 같았다.
한 달 앞서 코로나 자가격리 지침을 어긴 직원을 징계 해고한 회사에 대한 언론보도가 있었기에 ‘거기에 비하면 우리는 양반이지 않냐’며 징계대상자와 노조를 겨우 달랬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 마스크 미착용 시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감염병 예방법도 개정되어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도 단 한 번의 일탈행위가 정당한 징계사유가 되기에는 무리가 있으며, 직장 질서를 확립한다는 이유로 과도하게 징계 절차를 밟는 것은 잘못된 의사결정이라는 것이 개인적인 의견이다. 참고로 타 회사의 징계해고 건은 양정과다를 사유로 부당해고가 인정되어 노동위원회와 행정법원에서 모두 사용자 패소판결이 나왔다.
필자 김진은? 정규직, 비정규직, 파견직을 합쳐 3000명에 달하는 기업의 인사팀장을 맡고 있다. 6년간 각종 인사 실무를 수행하면서 얻은 깨달음과 비법을 ‘알아두면 쓸데있는 인사 잡학사전’을 통해 직장인들에게 알려주고자 한다.
김진 HR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
[알쓸인잡] 교육훈련② 키워주면 떠나는 핵심 인재, 어떻게 붙들까
·
[알쓸인잡] 교육훈련① 지겨운 법정의무교육, 수박 겉이라도 핧아야 하는 이유
·
[알쓸인잡] 인사평가③ 평가결과 공개는 조직을 어떻게 변화시킬까
·
[알쓸인잡] 인사평가② 징계해고보다 어려운 저성과자 관리 비법
·
[알쓸인잡] 인사평가① 제도가 불만이면 평가자 마인드부터 바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