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가 알레르기 표시를 하지 않은 건강식품에 대해 판매 중단 및 회수 조치를 내렸다. 알레르기 유발 물질은 별도 알레르기 표시란에 표기해야 하는데, 이를 성분표에만 명시했기 때문이다. 식약처는 “알레르기 유발물질인 복숭아 표기 사항을 제품 전면 및 제품명에 표기했으나, 알레르기 유발물질 표시대상을 별도 알레르기 표시란에 표시해야 함에도 미표시한 제품으로 확인돼 판매 중단 및 회수 조치 중”이라고 밝혔다. 즉 성분표에는 명시됐으나 별도 표시를 하지 않아 회수하는 것이다.
현재 판매되는 모든 식품에는 성분과 별도로 알레르기 유발 물질을 표기해야 한다. 식약처는 식품 외에도 화장품, 생리대 등 일부 생활화학제품 등에도 알레르기 유발 물질을 별도로 표시하게 하고 있다. 특히 식품의 경우 알레르기 유발 물질 표시와 주의·환기표시를 병행해 혼입 가능성까지 명시해야 한다. 식약처는 식품 알레르기 증상을 예방하는 유일한 방법은 해당 성분을 섭취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정작 섭취에 주의해야 하는 의약품에는 알레르기 유발 물질을 별도로 표기하지 않아도 된다. 식약처는 의약품의 경우 의사의 처방이 이뤄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지만, 현장에선 오히려 혼란이 빚어진다. 알레르기 환자들은 별도 표기가 없어 의약품을 구매하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식품엔 엄격한 알레르기 표시, 정작 의약품은 미표기
의약품에 알레르기 유발 성분이 아예 기재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동물유래성분 등은 첨가제로 표기하게 돼 있다. 첨가제는 치료의 효과는 나타나지 않으면서 품질 등을 위해 추가 사용하는 물질을 말한다. 보존제·타르색소·동물유래성분 순으로 표시한다. 그러나 알레르기 유발 물질 혼입 가능성은 명시하지 않는다.
견과류 알레르기가 있는 A 씨는 약국에 갈 때마다 곤혹스럽다. 약품에 호두 등 견과류가 첨가되기도 해 약사에게 미리 얘기하지만, 약사도 어떤 제품에 견과류가 들어갔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A 씨는 “약품 포장지를 자세히 들여다봐야 하거나 포장지에는 표기가 안 돼 있어 제품을 개봉해 설명서를 봐야 할 때도 있다. 약사들도 잘 모른다”고 토로했다.
돼지고기 알레르기가 있는 B 씨도 상황은 마찬가지. B 씨는 “식품에는 성분표를 일일이 읽지 않아도 알레르기 표시 물질이 명시된다. 성분표에는 ‘돼지고기’보다 젤라틴, ○○분말 등으로 기재돼 정확한 성분을 알기 어렵기 때문에 알레르기 표기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의약품은 알레르기 성분을 아예 표기하지 않는다. 전 성분이나 첨가제 등을 살펴봐야 하는데, 약품 포장지에 적혀 있지 않으면 알기 어렵다. 약을 먹고 알레르기 반응이 온 적도 많다”고 토로했다.
쇠고기 알레르기가 있는 C 씨도 “약국에서 약을 구매할 때 ‘젤라틴’ 성분이 있는 건 빼 달라고 하지만 약사도 잘 모르더라. 작게 쓰여 있는 모든 성분을 들여다보기도 어렵고, 아예 빠진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식품은 표기도 돼 있고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기도 쉬운데, 의약품은 그런 게 아예 없다”고 말했다. 현직 약사 D 씨는 “약사도 주성분이 아닌 모든 성분은 알기 어렵다. 특히 일반의약품은 포장지에 명시가 안 되면 알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범진 아주대 약학과 교수는 “약에 따라서 표시해야 하는 의무조항이 있고 선택사항도 있다. 그런데 용기가 작으면 포장지에는 기재가 안 될 수도 있다. 제약사에서 모든 성분을 기재하지 않았다면 약사는 알레르기 성분을 알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의약품은 부작용으로 표시…알레르기 환자, 성분 알기 어려워
식품, 화장품과 달리 의약품에만 알레르기 유발 물질을 표시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식약처 관계자는 “의약품은 의사 처방 시에 환자가 알레르기 여부를 고지할 수 있다.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물질은 보통 분자량이 큰데, 이는 대부분 전문의약품이라 의사가 얘기를 해준다. 일반의약품의 경우 알레르기 유발 물질이 첨가물로 들어가는 편이라 그 양이 굉장히 적다. 또 사용상 주의 사항에는 전 성분을 기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의약품에 알레르기 유발 물질이 표기되지 않는 이유가 의약품의 특성 때문이라고 말한다. 의약품은 섭취가 목적이 아닐뿐더러 주성분 외에 첨가 물질이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형태인데, 이로 인한 문제들은 부작용으로 표기가 된다는 설명이다.
김정기 고려대 약학대 교수는 “의약품에 알레르기 성분이 포함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의약품 같은 경우 부작용 형태로 나타난다. 특히 알레르기로 나타나는 건 아나필락시스(특정 물질에 대해 몸에서 과민 반응을 일으키는 것)인데, 이런 부분은 부작용으로 표기가 된다. 의약품 같은 경우는 어떤 형태로 사람에게 나타날지 모르고,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모든 걸 다 표기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앞서 이범진 교수는 “알레르기라는 건 일반적으로 생명에 지장을 주지는 않는 특이한 면역 반응이다. 알레르기가 급격히 일어나 생명을 위협하는 건 보통 아나필락시스라고 말한다. 이런 경우는 임상실험이나 사례 보고 등을 통해 정보가 모이면 부작용으로 표기한다. ‘○○인 경우 섭취하지 말라’는 식이다. 알레르기 물질 자체가 약물의 부작용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반응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예측 불허 상태이기 때문이다. 사례들이 표준화돼야 명시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알레르기 유발 성분이 포함된 모든 약품에 아나필락시스 등의 주의사항이 명시된 건 아니다. 또 아나필락시스 주의사항이 있더라도 원인 성분 등이 명시되는 건 아니다. 결국 알레르기 환자들은 알레르기 성분 여부를 명확하게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소비자들이 알레르기 성분을 쉽게 파악하기 위해선 별도로 명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의사 처방 시에 알레르기가 있음을 고지하면 된다지만, 소비자들도 어떤 성분이 있는지 알아야 한다. 소비자들이 알면 안 되는 정보가 아니기 때문에 소비자가 쉽게 파악할 수 있게 표기하는 게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전다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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