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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와이너리] 원조의 귀환 알리는 '포니의 시간'

당시 최신 유행 패스트백 디자인으로 정체성 확립…1990년 단종까지 한국 자동차 산업 '이정표'

2023.07.05(Wed) 10:47:31

[비즈한국] 한국 자동차 최초의 고유모델인 포니를 재조명한 ‘포니의 시간’​ 전시가 2023년 6월 초부터 10월 초까지 현대모터스튜디오 서울에서 열린다. 예상보다 폭발적인 반응으로 원래보다 2개월 연장됐다. 포니가 한국 자동차 역사에서 갖는 의미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다른 곳이 아닌 본가에서 공식적으로 호명된 포니는 이제 기억될 만한 헤리티지를 메이커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계승할 것임을 알리는 하나의 선언과 같다.

 

사진=한동훈 제공

 

1967년 12월 출범한 현대자동차의 첫 조립생산 모델은 미국 포드와 계약을 맺고 들여온 포드 코티나였다. 처음 몇 년간은 그럭저럭 돌아갔지만 곧 충돌이 일어났다. 그것은 주요 부품 국산화율을 높여 독자적 역량을 확보하려는 현대와, 현대를 단순 하청공장 이상으로 키울 생각이 없었던 포드의 관점 차이가 원인이었다.

 

70년대 초 합작사 설립 협상이 최종 결렬되자 현대차 경영진은 조립생산을 허락할 다른 업체를 찾는 대신 자유롭게 생산·수출할 수 있는 고유모델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기아나 GMK를 비롯한 경쟁사가 해외 모델 조립생산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당시, 이는 회사의 명운을 결정할 중요한 선택이었다. 엔진을 비롯한 플랫폼 기술 도입은 일본 미쓰비시와, 차체 디자인은 신진 스튜디오 이탈디자인과 용역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많은 경험을 지닌 영국 브리티시 레일랜드의 조지 턴불이 물러났다는 정보를 입수하여 그를 프로젝트 총괄 부사장으로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사진=한동훈 제공

 

첫 고유모델은 대중성이 큰 1400cc급 소형차로 결정됐다. 이탈디자인의 주지아로는 3박스 세단 형태가 아닌 지붕부터 테일 게이트까지 매끈하게 내려오는 최신 유행의 패스트백 디자인을 제안했다. 비슷한 시기에 출시된 해치백의 정석 폴크스바겐 골프 Mk.1 역시 주지아로의 작품. 직선 위주의 외형은 기존에 조립생산하던 코티나의 디자인과도 많이 달랐다. 세단이 아닌 패스트백을 택한 포니는 “꽁지 빠진 수탉“이라는 부정적 피드백을 듣기도 했지만 사람들의 눈에 점차 익숙해지면서 국내 도로를 잠식해 갔다. 뒤쪽을 길게 뺀 스타일은 후에 포니2, 포니 엑셀, 엑셀까지 이어지면서 하나의 아이덴티티를 형성했다.

 

사진=한동훈 제공

 

4도어로 출시된 포니는 3도어, 왜건을 더하면서 라인업을 늘려 갔다. 그러나 끝내 양산되지 못한 미완의 라인업도 있다. 포니를 바탕으로 좀 더 과감하게 다듬은 포니 쿠페가 그것이다. 낮게 웅크린 쐐기형 프론트를 시작으로 면과 면을 종이접기 하듯 날카롭게 꺾은 포니 쿠페의 모습은 지금 봐도 디자이너의 스케치북에서 바로 뛰쳐나온 듯한 선진적인 느낌을 준다. 전시장 한편에는 복원된 포니 쿠페와 그 디자인 큐를 물려받아 재해석한 비전74, 아이오닉5가 함께 서 있다. 주지아로는 훗날 영화 ‘백투더 퓨처’​ 에 등장해 아이콘이 된 드로리안 DMC-12를 디자인하면서 포니 쿠페의 경험을 참고하기도 했다.

 

사진=한동훈 제공

 

1975년 울산공장에서 굴러나오기 시작한 포니 시리즈는 1990년 포니 픽업의 단종을 마지막으로 무대에서 내려왔다. 전성기인 1982년 한국 시장의 67%를 차지할 정도로 많이 팔린 포니 시리즈는 중고차로 쏟아져 나와 우리의 모터리제이션에 다시 한 번 기여했다. 앞으로 포니 뿐 아니라 한국 자동차 산업 초창기를 수놓았던 여러 모델의 아카이빙과 전시가 활발해졌으면 한다. 단순한 자동차 생산 대국을 넘어선 자동차 문화 강국의 길은 그것에서부터 시작이다.​

 

사진=한동훈 제공

 

 

​​필자 한동훈은? 서체 디자이너. 글을 쓰고, 글씨를 쓰고, 글자를 설계하고 가르치는 등 글자와 관련된 모든 분야에 관심이 있다. 현재 서체 스튜디오 얼라인타입에서 다양한 기업 전용폰트와 일반 판매용 폰트를 디자인한다. ‘월간 디자인’​, 계간 ‘디자인 평론’​​등에 기고했으며 온·오프라인 플랫폼에서 서체 디자인 강의를 진행한다. 2021년 에세이집 ‘글자 속의 우주’​를 출간했다.  

한동훈 서체 디자이너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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