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서울의 마지막 판자촌 강남구 구룡마을 재개발 사업이 본격화됐지만 보상금액이 책정되기 전부터 토지주들의 반발이 거세다. 산정 과정에 참여하는 감정평가 법인 중 과반수를 공공이 추천하도록 한 방식이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구룡마을은 30년 전 민간개발 백지화 후 공영개발이 추진됐으나 토지주·거주민 간 이견으로 수차례 부침을 겪은 곳이다. 지난해 여름 수재가 덮친 데 이어 올해 초 설 연휴를 앞두고는 대형 화재가 발생해 개발 필요성이 더 높아졌지만, 3개월 만에 격렬한 반대에 부딪히면서 앞으로 사업 진행에 난항이 예상된다.
#보상 계획 공개되자마자 시청 앞 집회
구룡마을 토지주들은 6월 26일 서울시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SH 보상금 상향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토지주들은 “SH공사의 개포구룡마을 개발 관련 고시 내용은 불공정하고 비합리적이다. 토지주로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며 토지 보상금 산출 방식에 반발했다. 관련 집회는 시청과 시의회 등에서 계속되고 있다.
SH가 5월 1일 공고한 보상계획을 보면 토지 보상액은 감정평가법인 3인이 산정한 감정평가액의 산출평균치를 기준으로 한다. 서울시와 사업시행자 SH, 토지소유자가 각각 1인을 추천하는 형태다. 사업구역 내 보상 대상 토지는 485필지(소유자 등 이해관계인 546명), 거주시설 등 지장물은 2224건(거주민 1107가구)으로, 서울시는 감정평가와 보상금 산정을 마무리 짓고 올해 10월 협의계약·이주대책 공고 등의 후속 절차를 밟는다는 계획이다.
아직 보상절차와 보상액 산정방법 등 계획만 나온 상황이지만 토지주들은 산출 방식부터 잘못됐다며 반기를 들었다. 토지주 측은 서울시가 SH공사를 100% 출자했기 때문에 사실상 두 기관의 입장이 같아 감정평가법인 구성이 토지주에게 불리하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탄원서를 통해 “(공공과 토지주가) 일 대 일의 감평사 구조가 되어도 SH공사의 엄청난 수익이 예상되는 지역”이라며 “공익사업이라 하더라도 정당하고 정상적인 방법으로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시위에 참여한 토지주 양승만 씨는 “단순하게 보면 개인이 소유한 땅을 매매하는 것 아닌가. 사실상 2 대 1로 책정 과정에 참여해 가격을 낮추는 셈”이라며 “다들 사연이 있는 땅이다. 토지 수용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값이라도 제대로 쳐줘야 한다”고 말했다.
#‘부촌 옆 판자촌’ 피해 보상 동상이몽
구룡마을은 1980년대 아시안게임과 서울올림픽 개최를 전후로 도시 미화를 위해 내몰린 철거민들이 농지 위에 자리를 잡은 무허가 판자촌이다. 여러 집이 전봇대 하나에서 전기를 끌어다 쓰거나 배수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는 등 거주 환경이 열악해 화재와 수해가 반복됐다. 1990년대에 민간개발에 실패하고 12년 전 정비계획이 수립됐으나 서울시와 강남구, 토지주와 거주 세입자가 개방 방식, 보상 내용 등 견해 차이를 좁히지 못해 여태껏 챗바퀴만 돌았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새 임기를 시작하면서 SH공사 토지 수용 방식의 재개발 사업이 다시 시동을 걸었다. 지난 설 연휴 직전 화재가 재발하자 오 시장이 “안전을 위한 근본 대책은 도시개발사업의 조속한 추진”이라고 밝히며 속도가 붙었다. 당초 공동주택 2838가구(임대 1107가구·분양 1731가구)를 공급하려던 계획에서 용적률을 높여 고밀개발을 통해 3600가구가 넘는 대단지를 공급하는 방안이 추진 중이다.
구룡마을은 지난해 8월 폭우로 침수 피해(위)를 입은 데 이어 올해 설 연휴를 앞두고는 대형 화재를 겪었다. 사진=연합뉴스
보상 협의가 고비가 될 것이라는 우려는 서울시가 지난 3월 말 보상 계획 공고를 예고한 후 현실이 됐다. 토지주들은 인근 아파트 땅값 시세에 준하는 보상을 원하는데 SH는 감정평가에 따른 공시지가 기준으로 보상한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어서다. 이곳은 개포동 초고가 아파트 단지와 맞닿아 있다. 도로 건너편에 위치한 래미안 블레스티지는 2016년 분양가 기준 3.3㎡당 3769만 원, 래미안 포레스트는 2017년 분양가 기준 3.3㎡당 4160만 원을 기록했다.
보상금은 마을이 개발계획구역으로 지정된 2016년의 공시지가를 토대로 감정평가해 보정한 수치로 제시된다. 수용 금액에 대한 불만이 있다면 소송을 통해 조정할 수 있지만 사업 자체를 번복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구룡마을보다 앞서 진행되고 있는 서초구 방배동 판자촌 성뒤마을도 비슷한 갈등을 겪었지만 토지보상금 확정 후 수용재결을 거쳐 처음보다 다소 인상된 수준에서 토지 보상이 마무리됐다.
토지주들의 반대가 극심한 만큼 사업 지체 가능성을 무시하기는 어렵다. 토지주 측은 “GH(경기주택도시공사)는 토지 소유자와 공사가 한 곳씩 추천해 법인 2곳에 감정평가를 맡긴다”며 “감평사 구성을 변경할 수 있는데도 서울시는 이의제기에 묵묵부답”이라고 전했다.
서울시는 보상 책정 방식이 불공정하다는 주장에 선을 그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토지보상법에 따라 진행하고 있는 사안”이라며 “서울시와 SH는 별개의 기관”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시 스스로 감정평가사 추천 권한을 배제하는 것을 두고도 해석을 달리했다. 공익사업의 토지 보상액 산정 절차에 지자체장 추천 권한이 포함된 것은 오히려 공정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였다는 것. 서울시는 2012년 관련 법률 개정에 따라 사업시행자가 가진 2인에 대한 추천권을 사업시행자와 지자체장이 나눠 갖도록 지침을 바꿨다.
SH도 법이 정한 절차대로 보상 절차를 밟고 있다는 설명이다. SH 관계자는 “법이 정한 보상 절차를 임의적으로 변경할 수 없다. 사업시행자로서 감정평가사 1인을 선정했다”며 “평가사들이 법률에 따라 적절한 기준을 가지고 평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까지는 기존 계획대로 일정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세입 거주민들이 임대주택이 아닌 분양권을 요구하고 있는 등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변수 역시 많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 소장은 “감정평가액은 보통 시세의 80% 정도로 책정된다. 업체마다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는다. 토지주는 최소한 시세 정도는 받기를 원하겠지만 서울시 입장에선 보상금이 커질수록 사업성이 나빠진다”며 “보상안은 누구도 물러날 수가 없는 문제다. 실제 사업 추진까지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강은경
기자
g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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