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요즘 신작 드라마 풍년이다. ‘이번 생도 잘 부탁해’(tvN)와 ‘킹더랜드’(JTBC)가 나란히 지난 6월 17일 시작했고, 이후 월화 드라마 ‘마당이 있는 집’(ENA), 금토드라마 ‘넘버스: 빌딩숲의 감시자’(MBC)와 ‘악귀’(SBS), 또 다른 주말 드라마 ‘아씨두리안’(TV조선) 등이 방영을 시작했다. 하나하나 보고 있는 중이지만 먼저 시작한 ‘이번 생도 잘 부탁해’(이하 ‘이생잘’)와 ‘킹더랜드’가 뇌리에 남는다. 좋거나 나쁘거나 둘 다의 의미로.
처음 테이프를 끊은 ‘이생잘’은 이혜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작품. 환생할 때마다 전생을 기억하는 인물이 주인공으로, 19회차 인생을 시작한 반지음(신혜선)이 18회차 인생 때 인연을 맺었던 문서하(안보현)를 찾아가며 펼쳐지는 저돌적인 환생 로맨스다. ‘철인왕후’에 이어 또 다시 판타지물을 선택한 신혜선의 능청스러운 연기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오후 9시 20분에 시작하는 ‘이생잘’이 끝나자마자 황급히 채널을 돌리면 ‘킹더랜드’가 시작해 있다. ‘킹더랜드’는 어릴 적 상처로 웃음을 경멸하는 남자 구원(이준호)과 웃어야만 하는 스마일 퀸 천사랑(임윤아)이 호텔리어들의 꿈인 킹호텔 VVIP 라운지 킹더랜드에서 진짜 환하게 웃을 수 있는 날을 만들어가는 이야기라고 되어 있다. 이준호가 연기하는 구원이 킹호텔 후계자로 점쳐지는 재벌 3세이고, 천사랑은 2년제 출신으로 천신만고 끝에 킹호텔에 입사해 친절사원으로 뽑힌 인물이다. 설명만 들어도 짐작이 가는,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물이라 할 수 있겠다.
‘이생잘’과 ‘킹더랜드’에는 비슷한 설정이 꽤나 많이 보인다. 특히 두 작품 모두 특급호텔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이 같다. 비록 ‘이생잘’의 MI호텔은 MI그룹 계열사 중에서도 망해가는 공간으로 설정돼 있지만, 남자 주인공 문서하가 어릴 적 잃은 엄마와의 추억이 깃든 호텔이라 중요하다. ‘킹더랜드’의 킹호텔도 마찬가지. 자신을 견제하는 이복누나와의 싸움을 피해 밖으로 나돌던 구원이 킹호텔에 입사한 건 어릴 적 사라져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를 엄마 때문이다. 킹호텔의 오픈 멤버였던 엄마의 입사기록 카드를 누군가 그에게 보내왔기 때문.
10대나 20대도 아닌 우리나라 재벌 3세 30대 남성이 후계자 경쟁을 위해서가 아니라 엄마와의 기억을 찾아 호텔에 입사한다는 설정은, 좀 갸우뚱하지만 그럴 수 있다. 우리나라 로맨스물의 남자 주인공은 자고로 능력은 있어도 과한 권력욕과 무관한 인물로 그려지는 게 불문율이니까. 엄마에 대한 이야기만 나와도 파르르 떠는 구원이나 호텔에서 엄마의 자취를 보며 싱그럽게 웃는 문서하의 모습, 모두 ‘난 권력욕에 사로잡힌 그저 그런 재벌 3세가 아니에요!’라고 외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위치와 상황은 다르지만 남녀 주인공이 모두 호텔이라는 공간에서 상하 관계로 만난다는 공통점도 들 수 있다. 남녀 주인공이 한 직장에서 상사와 직원으로 만나는 설정은 숱하게 보아온 것이라 익숙하디 익숙하다. 백화점 이사와 백화점 매장 직원으로 사랑을 꽃피웠던 90년대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안에’부터 레스토랑에서 사장과 파티셰 또는 셰프와 막내 요리사로 만났던 ‘내 이름은 김삼순’이나 ‘파스타’도 있고, 최근에도 사장과 연구원으로 만난 ‘사내맞선’이 있었다. 다만 ‘이생잘’에서 반지음은 19회차 인생답게 쌓이고 쌓인 초특급 능력으로 MI모비티 선임연구원에서 원하는 MI호텔 전략기획팀으로 척척 이직하는 능력자인 반면, 천사랑은 전형적인 캔디형 신데렐라인지라 자신의 능력과는 별개로 2년제 대학 출신이라는 핸디캡이 두고두고 발목을 잡는다.
이외에도 남자 주인공이 재벌인 부모와 반목하는 모습, 남자 주인공이 호텔을 두고 경쟁을 벌이게 되는 존재가 여성이라는 점, 남자 주인공 곁의 친구처럼 친근하면서도 충직한 비서의 존재 등이 얼핏 보면 두 드라마가 닮은 점이 많다고 여기게 한다.
드라마를 보기 시작하면 두 드라마가 무척이나 다른 작품이란 걸 여실히 느끼게 된다. 무엇보다 매력의 요소가 다르다. ‘킹더랜드’는 제작진과 배우 모두 입모아 말했듯 ‘아는 맛이 진국’인 요소가 매력이다. 비슷한 장르의 과거 레전드 작품들에서 나왔던 명대사나 명장면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ex: “애기야, 가자!”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나, 너 좋아하냐?” 등등), 아직까진 이준호와 임윤아의 케미로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고(특히 비주얼), 무난하게 드라마의 흐름을 쫓을 수 있는 안정감을 선보인다. 고공행진하는 시청률이 이를 반증한다.
‘옷소매 붉은 끝동’으로 까칠하면서도 매력적인 왕세손을 연기하며 스타의 반열에 오른 이준호는, 이 드라마로 시선을 돌리게 하는 견인차 역할을 한다. 드라마의 어처구니없는 개연성에 혀를 차다가도, 매력적인 목소리 톤에 묘하게 섹시한 구석이 있는 이준호가 짝사랑에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보면 ‘에휴, 그래, 귀엽네’ 하게 되는 것. 꾸준히 연기활동을 하며 연기력을 차곡차곡 다져온 임윤아도 나쁘지 않다.
‘이생잘’은 신혜선이 그야말로 ‘하드캐리’한다. 전생을 기억하는 환생인의 로맨스라는 판타지는, 초반에 시청자와 공감이 이뤄져야만 끝까지 시청이 가능한 법인데, 반지음의 아역을 연기한 박소이의 또랑또랑한 만능소녀 연기부터 공감을 확 일으킨다. 자신과 문서하를 귀찮게 하는 이지석(류재준)을 플라멩코(!)로 쫓아내는 구혜선의 능청스러운 연기를 보면 그 어처구니없는 만화 같은 장면에 놀라면서도 물개박수를 보내게 된다니까.
주말이 다가온다. 오후 9시 20분에 ‘이생잘’을 시작하고 끝나자마자 ‘킹더랜드’로 돌리면 된다. 이건 마치 작년 봄, ‘우리들의 블루스’ 보고 바로 ‘나의 해방일지’로 채널을 돌리던 그때의 데자뷰 같네. 개인적으로는 ‘우리들의 블루스’는 뒤로 갈수록 흥미를 잃었었고, ‘나의 해방일지’는 끝까지 나름 환호하며 지켜봤다. ‘이생잘’과 ‘킹더랜드’는 어떻게 될지 자못 기대되는 마음이다.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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