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2011년 서울시 노원구 월계동 아스팔트 도로 방사선에 피폭된 주민 100여 명에 대한 추적 조사가 없었다는 사실이 알려진 가운데, 방사선 안전을 관리해야 하는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의 역할이 부재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원자력안전법에선 방사선 안전관리를 원안위에서 관리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생활 방사선 피폭에 대해 원안위의 조치가 없었다는 것이다. 2011년 당시 원안위는 아스팔트 콘크리트(아스콘)에 방사성물질이 혼입된 원인을 규명하겠다고 밝혔지만, 원인을 밝히지 못했다(관련기사 ‘노원구 아스팔트 방사능’, 50년 추적한다더니 추가조사조차 안 했다).
#아스콘 방사능 혼입 원인, 결국 못 밝혀…원안위 소극적 태도도 도마에
원안위는 월계동 도로에 방사선이 측정됐다는 신고를 받은 지 2일이 지난 2011년 11월 3일, 해당 도로를 사용하는 데 안전상 지장이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1m 높이에서 정밀 측정한 결과 최고 방사선준위는 1.4μSv/h였고, 이는 매일 하루 1시간씩 1년간 서 있어도 일반인의 연간 허용선량 1mSv의 50%에 불과해 원자력안전법의 허용기준을 넘지 않는 범위라는 것이다.
이후 KINS(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주관으로 8개 유관 기관이 현장 측정한 이후에도 원안위의 입장에는 변화가 없었다. 다만 원안위는 아스팔트에 방사성 물질이 혼입된 경로를 파악해달라고 서울시에 요청하고, 국내 모든 정유사, 철강회사, 아스콘 제조업체에 대한 총체적인 실태 조사를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결국 기준 수치 이상의 방사선이 검출된 아스콘은 모두 철거됐지만, 혼입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다. 해당 아스콘은 2001년도에 포장된 도로인데, 업체가 폐업하는 등 경로 추적에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이지언 환경운동연합 국장은 “원자력안전위원회도 막 생겼을 시기였는데, 서울시 한복판에 방사선이, 그것도 세슘이 나왔다고 하니까 전례가 없던 일이었고, 사회적 반향도 컸다. 인공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물질이었다. 서울시와 노원구에서는 적극 대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원인 규명을 위해 나름 노력했지만, 당시 업체가 폐업하는 등 명확한 경로를 밝혀내지 못했다. 원인에 대한 몇 가지 추정은 있었다. 다만 원안위의 후속 조치가 약했다. 전수조사하겠다고 하기는 했는데, 결과에 대해선 발표하지 않았다. 철거한 아스콘이 노원구청 인근에 방치됐고, 이후 경주에 있는 폐기물장으로 보내질 때도 논란이 일었다”고 말했다.
원안위는 원인 규명은커녕 주민 조사 등의 후속 조치도 진행하지 않았다. 서울시의 역학조사가 나온 이후에도 서울시 조사 결론에 대해 반박만 할 뿐 별도 조사는 하지 않았다. 2012년 9월 서울시에서 주민 100여 명이 연간 선량한도(1mSv)를 초과해 피폭됐다고 발표하자, 원안위는 이 조사가 보수적인 조건으로 계산했다며 검증이 필요하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도 주민 건강 조사나 역학조사는 추진하지 않았다. 원안위 관계자는 “확인해 보니 당시 조사하겠다고 했던 (아스콘 업계 전수 조사) 부분은 조사했고, 문제 없음을 확인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 공개하지는 않았다. 건축물에 대한 공기질 등 대기환경에 대한 지침들은 현재 환경부에서 관리하고 있다. 건강검진 같은 부분들은 지자체 역할이기 때문에 원안위에서 조치한 건 없다”고 설명했다.
#생활 방사선에 대한 원안위 대책 부재
원안위가 지자체에 책임을 떠넘기면서 방사선 노출에 대한 후속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비판도 있다. 사건 당시에도 서울시만 역학조사 등 후속 조치를 진행하면서, 국가 기관의 주민 조사가 부재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조사에 참여했던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당시 원안위가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지적한다. 원안위가 생활 방사선에 대한 책임을 회피했다는 것이다.
2010년~2018년 노원구청장이었던 김성환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월계동 아스팔트 방사선 검출 사건을 이렇게 회상했다. “당시 원안위는 소극적이었고, 문제를 지자체에 떠넘기려 했다. 지방 도로에서 방사능이 검출됐기 때문에 지자체 책임이라는 것이다. 다행히 법제처의 유권해석으로 방사능이 검출된 아스콘 처리 비용은 국가가 부담했지만, 보관될 곳이 없어 노원구에서 오랜 기간 별도 장소에 보관했다. 나중에 기준치 이상으로 오염된 아스콘은 경주 방폐장으로, 기준치 이하로 오염된 건 개인 사설 폐기물장에서 처리됐다. 또 인근 주민의 건강과 관련된 검진도 국가 책임인데, 이런 부분은 서울시에서만 진행했다. 직접적인 피해 구제나 치료도 없었다. 그 당시에도 원안위가 원자력으로부터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기관인지 원자력을 보호하는 기관인지 헷갈렸다. 원안위에서 매우 소극적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원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자, 재발 방지를 위한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현재도 아스팔트 도로를 포장한 후 방사능 검사를 별도로 진행하지 않는다. 하미나 단국대 의과대학 교수는 “당시 원안위는 보수적이었다. 직접 책임을 지는 기관이었는데, 2011년에는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된 시기였다. 당시 후쿠시마 사고가 나면서 급격하게 관련법이 제정되고 원안위가 구성됐는데, 대부분 과기부에서 일하던 사람들이었다”고 말했다.
하 교수는 “아스팔트에 방사능 물질이 혼입된 원인을 알아낼 수는 없었지만, 당시 일본에서 수입한 폐기물이 아스팔트에 혼입되면서 들어갔을 가능성이나, 도로 강도를 시험하는 검사 기기에 세슘이 포함돼 있는데, 이때 기기가 파손돼 세슘이 들어갔다는 가능성, 노원구 근처에 있는 원자력연구소에서 나온 폐기물이 들어갔다는 가능성 등이 제기됐다. 첫 번째 가능성이 가장 유력했는데, 명확하게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이후 서울시는 도로를 전수 조사했는데 추가로 몇 군데를 더 발견해 처리했다. 이후 별다른 조치는 없었다. 원안위는 이런 조치들이 경제적이지 않다고 봤다. 저선량 방사능은 안전하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익중 전 동국대 의과대학 교수 역시 “원안위에서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 주로 서울시와 노원구청에서 대응했던 걸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생활 방사선에 대한 원안위의 역할이 부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원안위의 소극적인 기조는 지금도 유지된다고 말한다. 앞서 이지언 국장은 “생활 방사능 유출에 대한 부분은 항상 사각지대에 있었기 때문에 (월계동 아스팔트 방사능 사건은) 그런 부분에 대한 경각심을 주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당시로는 대응 체계가 확실하지 않았다. 나중에 라돈 침대 등 생활 방사선 문제가 나왔지만, 초창기에만 조사하겠다고 한 후 나중에는 흐지부지 끝났다”고 지적했다.
최경숙 시민방사능감시센터 활동가는 “아스팔트에 방사능이 검출된 이후에도 수입을 안 하지는 않는다. 방사능 검사를 할 수 있는 기계를 도입했지만, 모든 항만에 설치된 건 아니다. 속도도 느리다. 아스팔트를 설치한 후 방사능 수치를 검사한다는 등의 조치도 없다”고 말했다.
이정윤 원자력 안전과 미래 대표는 “법적으로는 원안위의 책임이지만, 현재 원안위의 생활 방사선 감시 업무가 빠진 상황이다. 부처 간 업무조정이 일어나면서 벌어진 일이다. 이후 일어난 라돈 침대 등 사건도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았고 규제도 없었다. 지금도 원안위에서는 환경부에게 책임을 떠넘긴다. 그러다 보니 방사선에 대한 안전과 규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시민들의 불안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전다현 기자
allhyeon@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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