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국내 스타트업 업계가 사법 리스크, 기존 사업자와의 충돌, 불확실한 환경 등으로 신음하고 있다. 정부는 올 초 “3고 위기에도 유니콘이 최다 탄생했다”라고 강조했지만, 정작 유니콘이 성장하기에는 불확실성이 강한 환경이다.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의 정부 의존도가 높다는 문제의식이 있는 만큼, 정부의 실질적인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27일 중소벤처기업부가 ‘예비 유니콘 특별보증’ 사업의 지원 대상으로 선정한 15개 기업을 발표했다. 예비 유니콘이란 기업가치가 1000억 원 이상 1조 원 미만의 기업으로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 원 이상의 비상장사)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기업을 뜻한다.
중기부는 올해 글로벌 유니콘 기업 육성을 목표로 예비 유니콘 선정 기업을 일반 부문과 글로벌 부문으로 나눠 선정했다. 2019년부터 현재까지 선정한 예비 유니콘은 111개다. 정부의 예비 유니콘으로 선정되면 최대 200억 원의 기술보증기금 특별보증, 기술특례 상장 자문 서비스 등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정부는 유니콘 기업 발굴을 위해 단계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예비 유니콘 이전에는 기업가치 1000억 원 미만의 ‘아기유니콘’ 기업을 대상으로 ‘아기유니콘 200 육성사업’을 실시한다. 성장성이 있는 아기유니콘 기업을 예비 유니콘으로 키우는 것을 목표로, 창업진흥원에서 시장 개척자금 3억 원과 후속 투자유치를 위한 IR 등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유니콘 키우기에 나선 덕에 2022년 말 기준 중기부가 집계한 국내 유니콘 기업의 수는 22개 사(CB 인사이트 등재 기업+중기부 발굴 기업)로, 연도 말 기준으로 가장 많은 숫자를 기록했다. 중기부는 지난 2월 “2022년 글로벌 유니콘 탄생이 절반 이하로 줄어든 것과 달리, 국내에선 7개 사가 유니콘에 진입했다”라며 “고금리·고물가·고환율 복합 위기에도 신생 유니콘 기업과 졸업 기업이 최다”라고 자축했다.
하지만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유니콘이 순탄한 길을 걷는 것만은 아니다. 기존 업계와의 갈등, 규제 충돌, 사법 리스크, 불안한 투자환경 등으로 꺾이는 스타트업이 많아 정부가 유니콘 수를 늘리는 데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2020년 10월 국내 13번째 유니콘 기업으로 등극한 차량 공유 업체 쏘카는 스타트업 업계에서 상징적인 존재다. 쏘카는 2018년 자회사인 VCNC를 통해 ‘타다’라는 차량 호출 서비스를 시작했다. 11인승 승합차는 기사를 소개할 수 있다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여객자동차법)에 근거한 렌터카 겸 기사 중개 서비스였다.
타다는 출시 9개월 만에 이용자 100만 명을 확보해 모빌리티 업계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그러나 택시 업계가 “타다는 불법 콜택시”라고 강하게 반발하면서 타다는 약 1년 만에 사법 리스크를 맞았다. 검찰이 2019년 10월 이재웅 전 쏘카 대표와 박재욱 전 VCNC 대표를 불구속기소 하면서다.
4년 가까이 이어진 법정 공방 끝에 지난 1일 대법원은 이재웅 전 대표와 박재욱 전 대표에게 무죄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앞선 1심과 2심에서도 두 대표는 무죄를 받았다. 이로써 타다 서비스는 불법 혐의를 완전히 벗었지만, 그 사이 쏘카와 VCNC가 입은 타격은 컸다. 2020년 국회가 단거리 이동 시 기사 알선을 금지하는 내용의 이른바 ‘타다 금지법(여객자동차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타다는 서비스를 접어야 했다. 적자로 고전하던 쏘카는 2021년 10월 비바리퍼블리카(토스)에 VCNC를 매각했다. 주인이 바뀐 후에도 VCNC의 적자는 이어졌고, VCNC는 최근 희망퇴직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판결 이후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은 “현재도 많은 스타트업의 혁신 노력이 낡은 규제와 기득권의 반대에 부딪히고 있는 상황”이라며 “타다와 같은 사례가 반복되지 않도록 정부와 국회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을 촉구한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국회 스타트업 연구단체인 ‘유니콘팜’도 “의료, 법률, 세무, 부동산, 숙박, 교육 등 다양한 분야의 스타트업이 기존 사업자와 갈등을 겪는다. 제2의 타다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라고 평했다.
실제로 유니콘이나 예비 유니콘 중 타다 같은 어려움을 겪는 곳은 더 있다. 이번 예비 유니콘 특별보증 지원 사업에 선정된 ‘자비스앤빌런즈’는 종합소득세 환급 플랫폼 ‘삼쩜삼’을 운영한다. 삼쩜삼은 개인 등을 대상으로 인공지능(AI) 기반 종소세 환급액 계산과 신고 자동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이다. 자비스앤빌런즈는 혁신성과 성장성을 인정받아 예비 유니콘 사업에 선정됐지만, 기존 사업자(세무사 단체)로부터 수년째 위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 2021년 한국세무사회는 삼쩜삼이 무자격·불법으로 세무 대리를 한다는 혐의로 자비스앤빌런즈 대표를 고발했지만, 경찰은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세무사회가 이에 이의신청하면서 검찰 조사가 진행 중이다. 위법 논란은 업계 밖에서도 터졌다. 2022년 한국소비자연맹은 삼쩜삼이 과도하게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허위 광고를 한다며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그 해 세무사회도 같은 이유로 개인정보위에 삼쩜삼을 신고했다. 이 과정에서 회사는 강도 높은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세무사회 신고에 따른 개인정보위 처분 결과는 28일 나올 예정이다. 회사 관계자는 “삼쩜삼은 세무사를 찾지 않는 프리랜서, 아르바이트생이 주로 이용한다. 기존 업계와 협업할 방안이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법률 관련 스타트업도 기존 사업자와의 충돌로 존폐 위기에 놓였다. 2021년도 예비 유니콘 특별보증 지원 기업으로 선정된 로앤컴퍼니는 온라인 법률서비스 플랫폼 ‘로톡’을 운영하고 있다. 변호사 단체는 로앤컴퍼니가 변호사법, 개인정보보호법 등을 위반했다며 검찰과 공정위 등에 여러 차례 고발했다. 로톡은 모두 무혐의 결과를 받았지만, 로톡에서 활동하는 변호사가 징계받는 등 위험 요소는 남은 상태다.
정부가 선정한 예비 유니콘은 아니지만 또 다른 법률 분야 스타트업인 로앤굿도 로앤컴퍼니와 비슷한 상황이다. 비대면 변호사 선임과 AI 법률 상담봇을 서비스하는 로앤굿은 변호사 단체가 형사고발을 준비한다는 소식이 사업에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로앤굿은 다음 주 변협에 법률 플랫폼이 지켜야 할 가이드라인 마련을 요청할 예정이다. 회사 관계자는 “플랫폼에서 변호사 회원의 활성도가 떨어졌다. 6개월 전에 홍보물을 배포했을 때 많은 변호사가 관심을 보였지만, 변협이 소송금융(플랫폼이 의뢰인에게 변호사비를 사전 지급하고 의뢰인이 승소한 경우 약정금을 받는 방식) 서비스를 변호사법 위반으로 본다는 소식에 위축된 것으로 보인다”라며 “이미 합법 판결을 받은 플랫폼의 사례가 많다. 만약 변협이 고발한다면 대응할 의지도 있다”라고 전했다.
이 같은 상황에 정부의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 관계자는 “올 초 대통령 신년사에서 ‘스타트업 코리아’를 천명하는 등 정부 차원에서 스타트업을 키우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라며 “그동안 갈등이 있으면 해결책을 모색하겠다고 했지만 뚜렷한 대책이 나오지 않았다. 스타트업 코리아를 만들기 위해선 방향성이 확실해야 한다”라고 짚었다.
이 관계자는 “정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기존 업계뿐만 아니라 실제 스타트업 서비스 시장의 수요자와 공급자의 목소리도 반영해야 한다”라며 “예를 들어 비대면 의료 서비스는 지난 3년간 잘 운영하다가 서비스 중단 위기에 놓이지 않았나. 시장에서 스타트업의 혁신 서비스를 향한 수요가 충분히 있는 것으로 안다.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보다 소비자, 참여자의 입장을 고려하길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심지영 기자
jyshim@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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