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도심 역세권, 저층 주거지 개발을 위해 3년 한시로 도입된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이 지지부진하다. 도심에 신속하게 신축 아파트를 공급한다는 목표로 2년 전 야심차게 추진됐지만 재산권 침해 문제에 부딪히며 좌초 위기에 놓인 곳이 적지 않다. 주민 반발이 계속되면서 사업 절차를 밟을 때마다 진통을 겪는 구역이 많아 속도를 내지 못하는 모습이다.
현재까지 지구지정을 마친 후보지는 기본 설계를 확정한 서울 지역 선도 지구 6곳을 포함해 총 9곳에 불과하다. 선도 지구 외에는 신속한 사업 진행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이제는 1년 3개월 앞으로 다가온 사업 시한이 문제다. 정부는 최근 관련 법을 고쳐 기한을 연장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기존 후보지에서 동의율 확보를 이끌어내 지구 지정 확대를 꾀하려는 시도다. 하지만 재산권 침해를 이유로 반대하는 목소리가 여전해 실제 공급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신속 공급’ 간 데 없고 더디기만
국토부, 정비 업계 등에 따르면 현재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도심복합사업) 후보지 57곳 중 지구지정을 마친 곳은 9곳이다. ∆은평 증산4구역 ∆영등포 신길2구역 ∆은평 연신내역 ∆도봉 방학역 ∆도봉 쌍문역 동측 ∆도봉 쌍문역 서측 등 서울 지역의 6개 선도 지구와 부천 원미동, 인천 제물포역 인근 등 수도권 2곳, 부산 부암3동 등 비수도권 1곳이 해당한다. 이 중 밑그림이 나온 곳은 선도 지구와 원미동밖에 없다. 그마저도 제물포역과 부암3동은 각각 지난해 2월과 12월 본 지구에 추가 지정돼 진행 상황이 비교적 늦고, 원미동은 선도 지구 지정 2년이 다 되도록 원주민들의 반발 여론에 부딪혀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서울 시내 선도 지구 6곳의 경우 지난 3월 기본현상설계 공모를 거쳐 설계안이 확정했다. 이곳들은 하반기에 순차적으로 사업계획 승인 절차에 들어가 내년부터는 이주와 착공에 들어갈 계획이다.
사업 전체로 보면, 추진 2년 만에 사업 규모도 쪼그라들었다. 국토부는 사업이 시작된 2021년 3월 이후 지난해 1월까지 10개월간 여덟 차례에 걸쳐 76곳 10만 호 규모의 후보지를 선정했는데, 이 가운데 21곳을 주민 동의율이 낮다는 이유로 철회했다.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도심복합사업)은 사업성이 낮거나 주민 의지가 부족해 민간 개발이 어려운 저층 주거지나 역세권 등을 한국토지주택공사(LH) 같은 공공기관이 민간과 공동으로 고밀 개발하는 방식이다. 용적률 상향, 초과이익환수금 면제 등의 ‘당근’을 주고 공공시행으로 절차를 단축해 신속하게 주택을 공급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문재인 정부가 공공 주도 개발을 강조하며 시작한 사업인 만큼 윤석열 정부에서 폐지 수순을 밟을 것이란 예상이 있었지만 제도 일부를 손본 형태로 계속 운영되고 있다. 다만 정권 교체 후 7개월 만에 나온 9차 후보지는 총 3곳으로 이전보다 크게 축소됐고 사업성 확보가 어려운 지역에 한해 제한적으로 적용됐다.
#공공기관에 토지 소유권 넘기는 데 거부감
민간에서 10년이 걸리는 재개발 시간을 줄여 3년이면 분양 절차를 밟도록 하겠다는 구상이 선도 지구 외에 실현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파악된다. 일부 현장에서는 주민들의 불만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어 사업 순항을 장담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이 사업이 공공기관에 토지 소유권을 넘기고 입주권을 받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만큼 토지 수용에 거부감을 느끼는 주민이 많다. 개발 이익 측면에서도 불리하다.
지금은 사업 철회 지역이 된 부산 당감4구역의 경우도 철회 전까지 반대가 거셌다. 당시 비상대책위원회는 “현물 선납 방식으로 소유권이 이전돼 재산권이 침해되며 낮은 보상 가격으로 막대한 추가 분담금만 빚으로 떠안게 될 것”이라며 “국토부가 인센티브와 이익공유제를 제안하지만 재개발 자체가 이 구역 주민들에게는 희생을 강요하고 삶의 근거지를 위협한다”는 내용의 철회 요청서를 국토부에 제출했다.
현재도 강북구 미아역 동측에서는 일부 주민들이 국토부를 상대로 후보지 선정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진행 중이고, 본 지구에 해당하는 증산4구역 반대 측도 서울행정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이 사업은 지자체가 추천한 구역의 주민동의율이 10% 이상이면 예정지구로 지정 가능해 후보지로 선정되는 문턱이 낮다. 이후 3분의 2 이상의 주민 동의율이 나오면 본지구로 지정, 사업이 추진된다.
시장에서는 정부의 무리한 정책이 이 같은 혼선을 불러왔다고 지적한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 소장은 “토지 수용 방식 때문에 불만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며 “공공성을 최대한 확보해야 하는 정부와 재산권이 중요한 토지주의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일반적인 사업의 경우 토지주가 관리처분 단계까지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데, 이 정책은 보상 방식이 거부감을 키웠다. LH 등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가 없는 조건에서 추진된 점도 문제”라고 평가했다.
민간 중심의 주택공급을 표방한 현 정부가 이 사업에만 부여했던 용적률 상향 등 각종 특례를 민간사업자에게도 부여하기로 하면서 혼란이 더 커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형평성 문제까지 불거지면서 개발 방식에 이견이 있던 후보지에서 민간 사업으로 선회하자는 여론이 확대된 것이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최근 공사비와 금융비용이 늘고 집값은 하락하는 등 기대이익은 줄어 리스크가 커진 상황에서 앞선 공공복합 사업 사례가 비전을 보여줬다면 좋았겠지만 토지 소유주들의 우려를 해소하지 못했다”며 “민간 개발 흐름 속에서 역세권 지역을 굳이 공공으로 개발할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3년의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국토부는 특별법 개정을 통한 사업 기한 연장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법 시행 종료 이후 사업이 유지되려면 사업계획 검토, 지구 지정 제안 및 주민 의견 청취를 끝내야 하는데 이 절차를 마치지 못한 지구가 대다수라 기한 연장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국토부는 “기한 연장과 10차 후보지에 대해서는 확정된 바 없다”면서도 “향후 도심복합사업의 진행 상황과 성과 등을 고려해 연장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사업을 통해 최종적으로 공급되는 주택 규모는 기존 목표치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당시 정부는 도심복합사업을 통해 19만 6000채를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선도 지구 7700여 채, 서울 외 3곳 5700여 채 등 현재까지 구체화된 곳은 1만 3000여 채에 불과하다. 김인만 소장은 “기한을 늘린다고 제도적인 한계가 극복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제도 자체가 현실을 충분하게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추진된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강은경 기자
gong@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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