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여름은 야외활동의 계절이다. 서울 종로3가나 을지로3가, 청계천 일대 등 전국 곳곳의 포장마차는 고된 하루를 마치고 삼삼오오 모여 휴식을 즐기려는 손님들로 붐빈다. 그런데 이들의 열기 못지않은 것이 이들의 선택을 받는 주류업계의 치열한 물밑 판촉 활동이다. ‘주류 시장의 대결’하면 떠오르는 인상적인 3가지 장면을 돌아본다. 술이 존재하고 이를 누리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대결은 계속될 것이다.
하이트(1993): 과거 크라운맥주를 생산했던 조선맥주는 점유율에서 크게 차이가 났던 부동의 1위 OB를 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당대 톱스타 조용필을 전속모델로 기용했고 1986년에는 왕관 모양의 심벌이 특징적인 아이덴티티 리뉴얼을 단행했다. 그러나 이미 고착된 구도를 깨지 못하자 새로운 브랜드 ‘하이트’를 1993년 선보였다. ‘깨끗한 물’ 마케팅을 등에 업고 출시 3년 만인 1996년 드디어 숙원인 맥주 시장 1위를 달성하고 후에 사명까지 하이트맥주로 바꿨다. 1위와 2위의 구도가 바뀐 것은 40년 만이었다.
카스(1994): 효자 품목인 소주를 바탕으로 사업다각화를 노린 진로는 美 쿠어스와 합작하여 진로쿠어스를 설립하고 카스를 출시했다. 카스는 OB와 하이트라는 양대 산맥 속에서 15% 전후 점유율로 나름 선전했다. 그런데 외환위기를 맞아 진로그룹이 부도가 났고, 카스는 OB맥주 산하 브랜드가 되었다. 그 사이 하이트는 진로와 합병하여 하이트진로로 변신했다. 칼자루를 바꿔 잡은 OB는 2012년 카스로 왕좌를 다시 탈환했다. 진로에서 만든 카스가 오히려 원래 모기업을 위협하는 창끝으로 변한 것이다. 하이트진로는 테라와 켈리 등의 지속적인 신제품 출시를 통해 재탈환을 노리고 있다.
처음처럼 새로(2022): 소주 시장은 하이트진로 참이슬과 롯데칠성음료 처음처럼의 2강 체제로 오랫동안 유지돼 왔다. 여기에 균열을 낸 것이 ‘제로슈가 소주’라는 개념을 정착시킨 처음처럼 새로(이하 새로)다. 새로는 제로슈가가 주는 산뜻한 맛과 전용 캐릭터 새로구미를 등장시키는 신선한 광고 전략으로 출시 7개월 만에 누적 1억 병 판매를 달성하며 같은 기간 롯데칠성음료의 실적을 견인했다.
이름에 ‘처음처럼’을 단 새로는 어떻게 보면 과거 과일소주처럼 정규가 아닌 부속 라인업으로 취급될 여지도 있다. 그러나 그런 시선도 잠시, 일선 주점에선 정규 라인업으로 자리를 잡아 가는 듯하다. ‘새로 있어요?’ 질문이 무의미한 경우가 점점 많아진다는 뜻이다. 라이벌인 하이트진로도 새로 돌풍에 주목하여 기존 진로이즈백에서 과당 성분을 제거한 진로이즈백 제로슈거를 내놓았지만, 차별화에 실패하여 반응은 신통치 않다. 오히려 라벨 갈이로 영업정지처분을 받는 원인이 되어 남이 깔아놓은 판 위에서 길을 잃은 모양새다.
신제품의 포인트는 물론 맛이지만 새 이미지를 위한 디자인의 역할도 크다. 초창기 하이트는 100% 암반 천연수로 만든다는 특징 강조를 위해 연한 미색 바탕 위에 녹색 로고 타입을 얹어 기존 크라운맥주와 차별화했다. 카스는 이에 맞서 차갑고 시원한 분위기를 위해 푸른색을 내세웠고 새로는 병 디자인과 컬러까지 바꿨다. 도자기의 곡선미에서 모티브를 얻은 새로의 투명한 병은 참신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이트진로 켈리가 국내 레귤러 맥주 최초로 오묘한 빛이 도는 호박색 병을 개발해 선보이는 등 향후 주류 시장의 디자인 경쟁 역시 가속화될 전망이다.
필자 한동훈은? 서체 디자이너. 글을 쓰고, 글씨를 쓰고, 글자를 설계하고 가르치는 등 글자와 관련된 모든 분야에 관심이 있다. 현재 서체 스튜디오 얼라인타입에서 다양한 기업 전용폰트와 일반 판매용 폰트를 디자인한다. ‘월간 디자인’, 계간 ‘디자인 평론’등에 기고했으며 온·오프라인 플랫폼에서 서체 디자인 강의를 진행한다. 2021년 에세이집 ‘글자 속의 우주’를 출간했다.
한동훈 서체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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