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거, 여직원은 서비스잖아”
사적인 자리에서 임원 하나가 실언을 했다. 등산 동호회에 여직원 수가 적으니, 가입과 참여를 독려해 보자는 취지에서 여직원 비율이 가장 높은 서비스 부문 직원에게 건넨 말이었다. ‘여직원은 서비스 부문에 제일 많이 있으니 신경 써 봐라.’ 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말이 헛나왔던 모양이다.
본인이 뱉어놓고도 아차 싶었는지 당황한 눈치였는데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A 팀장이 “요즘 어디 가서 그런 말씀 하시면 큰일 납니다”라고, 정색하며 말한다. 옆에 있던 B 팀장 역시 “무슨 의도인지는 알겠는데 휴일에 동호회 참여 권유하시면 위계질서를 이용한 사적 업무지시로 괴롭힘에 걸릴 수 있습니다”고 덧붙였다.
이 얼마나 훌륭한 직원들인가. 충신이 따로 없다. 임원도 말실수한 것에 불과했고 팀장들의 대답 또한 반쯤은 농담이었다고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바로 브레이크를 거는 반응이 연거푸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꽤 고무적이었다. A, B 팀장이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해서 간언한 것인지, 주말 산행에 끌려 나온 자신의 처지를 빗대어 말한 것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모두 그간의 교육을 통해 학습한 효과가 아닐까 싶어 혼자 속으로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하반기로 접어들면서 법정의무교육이 한창이다. 모든 사업장은 각종 법에서 정한 의무교육을 이수하고 교육결과(참석자 명단, 일지, 사진자료 등)를 보관하게 되어있다. 흔히 5대 법정의무교육이라고 하는 ‘산업안전보건교육,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 개인정보보호교육,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교육, 퇴직연금교육’이 그것이다. 이중 퇴직연금은 실제 운용하는 사업장에 한하고 있고, 개인정보보호 교육은 개인정보 처리자가 교육대상이다. 때문에 ‘성희롱예방, 장애인 인식개선, 산업안전보건’ 3가지만 잘 챙기면 사실 과태료를 낼 일도 회사에 큰 문제가 생길 일도 없다.
그렇다 보니 1~2시간짜리 온라인 교육으로 대신하거나, 적당히 모여서 교육자료 보는 척하며 사진을 찍고 일지에 서명만 하고 끝내는 수박 겉핥기 교육을 진행하는 경우도 많다. 대부분의 교육이 그럴 테지만 법정의무교육은 재미가 없다는 인식이 강하다. 매년 똑같은 내용이니 들어봐야 별거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특히 직급이 높을수록, 나이가 많을수록 더욱 그렇다.
하지만 매년 같은 내용을 교육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귀에 듣고 또 들어 스스로 체화하고 내재화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무심코 타인의 존엄을 해치는 차별적인 발언이나 부적절한 행동을 하게 되면 즉시 부끄러움을 느끼고 사과하거나, 옆에서 다른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을 목격하면 제재를 가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라고 느껴야 한다. 그렇게 일상생활에서 항상 언행을 주의하고 실천하는 것이 성희롱 예방 교육의 가장 큰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관리자들을 대상으로 성희롱이나 괴롭힘 교육할 때는 반드시 외부 전문 강사를 초청해서 ‘대면교육’으로, ‘사례 중심’으로, 그리고 ‘참여형 워크숍’ 형태로 교육을 진행한다. 필요하다면 회사에서 있었던 이런저런 사례들을 각색해서 강사에게 자료를 넘기고 역할극도 시켜달라고 부탁한다. 소속 직원이 하면 불편할 이야기들도 외부에서 온 전문가가 얘기하면 적당히 수긍하고 넘어가기 때문이다. 행여 기분이 나빴다며 한소리를 들어도 ‘그렇게까지 할 줄 몰랐다. 그게 다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반증 아니겠냐’며 너스레를 떨면 될 일이다.
어디 성희롱 예방 교육뿐이겠는가. 인건비 절감, 효율 중시라는 경영 논리로 위험작업장 2인 1조 규정을 지키지 않는다든지, 대체인력이 없다는 이유로 적절한 휴게시간이나 휴가를 부여하지 않는 것도 장소가 마땅치 않다며 휴게공간을 마련해주지 않는 것도 결국은 사업주나 경영챙임자들이다. ‘근로자가 스스로 자기 안전을 지키면서 근무해야지’가 아니라, 사업주가 스스로 문제의식을 느끼고 안전하고 건강한 근무환경과 조직문화를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접근해야 마땅하다.
한 HRD 워크숍에서 ‘배달의 민족’ 전사교육팀장이 ‘우리는 임원부터 신입사원까지 전 직원이 반드시 들어야 하는 이 법정교육을 ‘기본기 교육’이라고 칭한다. 그리고 기본기 교육에 모든 사활을 걸고 매년 새로운 콘텐츠를 직접 만들고 있다.’고 했을 때 그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회사가 크든 작든 인사와 교육을 담당하는 사람으로서 그런 생각을 갖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시간이 없어서, 예산이나 비용문제로, 어차피 다 아는 내용이니까 등한시되는 것이 바로 이 ‘기본’이다. 하지만 견디기 어려운 반복, 지속적인 노력이 있어야만 비로소 기본에 충실한, 기본이 탄탄한 조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않았으면 한다.
필자 김진은? 정규직, 비정규직, 파견직을 합쳐 3000명에 달하는 기업의 인사팀장을 맡고 있다. 6년간 각종 인사 실무를 수행하면서 얻은 깨달음과 비법을 ‘알아두면 쓸데있는 인사 잡학사전’을 통해 직장인들에게 알려주고자 한다.
김진 HR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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