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올해로 도입 10년 차를 맞은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이 다시 주목 받고 있다. 단말기 유통점이 지급하는 추가 지원금 상향 등의 개정 논의가 나오면서다. 아예 “단통법을 폐지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등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현실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단통법은 이동통신 단말기 구매 과정에서 불투명한 보조금 지급으로 소비자 간에 차별이 발생하자 이를 줄이기 위해 2014년 10월 도입됐다. 지원금을 공시하고 소비자가 지원금과 요금할인(선택약정)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 등의 여러 규제가 포함됐다.
이동통신 시장의 질서를 확립하고 소비자의 단말기 대금 부담을 낮추기 위해 만든 단통법은 10년째 논란의 중심에 있다. 단통법이 효과가 없어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과 단통법 도입 이후 과도한 보조금 경쟁이 줄고 소비자가 혜택이 늘어 긍정적이라는 주장이 맞선다.
최근 정부가 단통법을 폐지하는 대신 개정하는 쪽으로 논의하면서 단통법이 재조명받았다. 현행법에 따르면 단말기 유통점은 이동통신사가 공시한 지원금의 15%까지만 추가 지원금을 지급할 수 있다. 개정안은 이를 30%까지 확대하는 것이 골자다. 단말기 유통점에는 특정 이통사와 직접 거래하는 대리점과, 대리점과 계약을 맺고 이통 3사(SKT·KT·LG유플러스) 제품을 모두 취급하는 판매점이 포함된다.
하지만 지난 14일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는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단통법 폐지 시위를 열었다. 협회는 “단통법은 이동통신 산업의 건전한 발전과 이용자 권익 보호를 목적으로 시행했지만, 산업의 핵심축인 소상공인 유통점은 붕괴하고 있다”라며 “소비자가 스마트폰을 구매하면 장기간 사용하지만 통신비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단통법이 실효성이 없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협회는 단통법이 오히려 불법 판매점을 키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협회 관계자는 “단통법이 생기면서 이를 준수하는 소상공인 유통점은 소비자에게 바가지 씌우는 ‘폰팔이’ 취급을 받는다”라며 “일명 ‘휴대폰 성지’에서 단통법을 어기고 불법 지원금을 주니 정작 법에 따라 파는 곳은 고객을 잃고, 성지를 모르는 소비자는 ‘호갱(호구 고객)’이 된다”라고 주장했다.
이른바 휴대폰 성지는 일반 유통점보다 훨씬 저렴하게 단말기를 판매한다. 대신 9만 원이 넘는 고가의 요금제를 6개월 이상 쓰는 조건을 붙인다. 성지는 비공개 온라인 채널을 기반으로 영업하며 매장 위치도 공개하지 않는다. 불시에 특가 정책을 내 정보를 아는 발 빠른 소비자가 구매할 수 있다. 최근에는 지난 2월 출시된 삼성전자의 갤럭시 S23이 무제한 요금제로 개통 시 ‘0원’에 팔리기도 했다.
단통법이 소비자 간의 정보 비대칭으로 인한 차별을 줄이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점을 생각하면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한 셈이다. 협회는 성지가 횡행하는 이유로 이통사가 대량 판매처 등 특정 유통점에 장려금을 차별적으로 지급하는 것을 꼽았다. 여기에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가 특판이나 휴대폰 성지를 제대로 감시하지 못해 불법적인 시장이 커진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가계 통신비 추이를 보면 단통법의 효과는 미미하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통신장비(단말기) 구매비용은 단통법 시행 후 크게 늘었다. 단말기 구매비용은 2013년 8172원에서 단통법 첫해인 2014년 1만 9679원으로 증가한 뒤, 감소세를 보였다. 그러다 2017년 3만 1943원, 2018년 3만 5223원을 기록하며 급증했다.
단말기 구매비용은 2019년 2만 8313원으로 줄어들면서 이듬해 2만 7189원, 2만 6676원으로 감소하다가 지난 2022년 2만 8527원을 기록하며 다시 3만 원대를 향하고 있다.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지만 2013년과 2022년을 비교하면 3배 이상 늘었다.
정부도 이 같은 상황을 인지하고 있다. 이번 추가 지원금 확대안은 2021년 방송통신위원회가 마련한 개정안에 따른 것이다. 당시 방통위는 “단통법 제정 이후 가계 통신비는 인하하는 추세지만 단말기 비용은 늘어나 통신비 인하 효과를 반감시킨다”라며 “이통사 간의 공시지원금 경쟁을 활성화하기 위해 추가 지원금 한도를 상향한다”라고 개정 취지를 밝혔다.
방통위는 추가 지원금 한도를 높이면 특정 유통점에 집중된 이통사의 장려금이 일반 유통점으로 흘러간다는 가정을 세웠다. 그에 따라 중소 유통점의 가격 경쟁력이 커지고 소비자가 받을 수 있는 할인은 늘어난다는 논리지만, 현장에선 실효성이 없다는 시각이 많다.
이렇다 보니 단통법을 폐지하지 않더라도 합리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진다. 단말기 유통업계 관계자는 “이통사와 제조사는 손해를 본 게 없다. 단말기 비용은 늘고 중소형 판매점은 고사하는 등 소비자와 유통사만 영향을 받았다. 고객이 줄어든 유통사는 비싼 요금제를 계약하도록 유도하고 소비자는 통신비가 늘어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며 “추가 지원금 30% 대상을 출시한 지 6~9개월이 지난 제품으로 정하거나, 입학 등 구매가 늘어나는 특수 시기에만 지원금을 높이는 식의 현실적인 법안 개선이 필요하다”라고 역설했다.
소비자 후생을 확보하는 방향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나온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단통법의 등장 배경에는 소비자 차별 문제가 있있고, 제정 후에 일정 부분은 역할을 했다고 본다”라면서도 “취지는 좋았지만 반쪽짜리 법안이 됐다”라고 짚었다.
정 사무총장은 “만약 단통법을 폐지한다면 선택약정 할인 등 법안에 담긴 내용을 어느 법에 포함할지 확실하게 정리하는 것이 먼저다. 휴대폰 사용 주기가 길어지고 있는 만큼 장기 고객이 받는 혜택도 고려해야 한다”라며 “불법 판매의 단속과 처벌도 강화해야 한다. 암암리에 불법 보조금으로 마케팅해서 가입자를 뺏어오는 게 유리하기 때문에 관행이 없어지지 않는 것이다. 확실한 적발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심지영 기자
jyshim@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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