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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 작성자만 처벌…요청한 SK에코플랜트 자회사와 원청 천안시는 모르쇠

EMC "요청한 적 없다" 부인했지만 법원은 인정…환경노조 "천안시가 열악한 환경 개선해야"

2023.06.16(Fri) 17:02:44

[비즈한국] 천안시 하수슬러지자원화처리시설에서 일하는 직원의 개인 성향과 평가 등을 담은 이른바 ‘블랙리스트’ 논란이 작성자의 벌금형으로 일단락됐다. 이 문건을 작성해 SK에코플랜트 자회사인 환경시설관리주식회사(EMC)에 제공한 전 소장이 최근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정작 문건 작성을 요구한 EMC와 관리·감독 의무가 있는 천안시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 또다른 논란이 예상된다.

 

EMC 요청으로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던 천안시 자원화처리시설 전 소장 A 씨가 벌금형을 선고 받았다. 사진은 EMC의 모회사인 SK에코플랜트. 사진=임준선 기자

 

#천안시 하수슬러지자원화처리시설 ‘블랙리스트’ 사건은…

 

지난 5월 11일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형사4단독) 재판부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약식기소된 전 관리소장 A 씨에게 벌금 50만 원을 선고했다. 법원은 직원 성향 문건을 작성하고 이를 EMC에 제공한 행위가 개인정보보법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사건의 발단은 2021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천안시 하수슬러지자원화처리시설(자원화처리시설)은 민간에 위탁 운영된다. 단독 도급으로 운영되던 것이 ​2021년 7월 1일부터 5개사 공동 도급으로 바뀌었​고, 공동 도급사 가운데 SK에코플랜트 자회사인 EMC가 주관사가 됐다. 이에 이전 단독 도급사에서 관리소장으로 일한 A 씨가 직원 성향이 담긴 문건을 작성해 EMC에 제공했다. 이것이 바로 문제의 블랙리스트다.

 

이 문건에는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지 능력이 떨어지고 주위 동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직원임’​,  ‘​노조활동을 했던 부분을 늘 강조’​,  ‘​천안시 공무원 중 친구가 있음’​ 등의 개인 성향과 주관적인 평가 등이 담겼다. 이 문건은 고용승계 면접자료로 활용됐다. 부정적인 평가가 담긴 직원 일부는 실제로 면접에서 탈락했다. 공동 도급사인 B 사 면접을 보던 한 직원이 이 문건을 발견하면서 블랙리스트의 존재가 알려졌다.​

 

이에 전국환경시설노동조합(환경노조)은 “EMC는 공동도급 회원사들과 ‘​다루기 힘든 직원’​을 사전에 공모해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활용했다. 지난 11년간 악취 속에서 근무한 현장노동자들에게는 제대로 된 사무공간도 없었고 변변한 휴게시설과 식당도 없었다. 천안시는 이런 시설에서 묵묵히 일해온 현장노동자들에게 따뜻한 위로보다는 ‘블랙리스트’로 차별당하는 것을 묵인했다”고 비난했다. 

 

#작성자 개인만 처벌, EMC와 천안시는 ‘모르는 일’

 

문건을 작성한 A 씨는 억울해한다. EMC 요청에 의해서 문건을 작성​했는데 자신만 처벌을 받기 때문이다. A 씨는 비즈한국에 “판결문에 나온 것처럼 EMC 요청에 의해서 문건을 작성했다. 이걸 면접에 사용해서 누구를 골라내라고 준 게 아니다”고 항변했다. 그는 “당시 업체 선정이 늦어져 20일 내로 운영을 시작해야 했다. 안정적으로 시설을 가동하기 위해 새 도급사에서 직원들의 기술능력 등을 빨리 파악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EMC에서 ‘운영 안정화 차원에서만 참고할 테니 그런 부분을 작성해달라’고 요청하기에 고용승계를 희망한 사람들의 명단과 성향 등을 적어 제공했다. 개인정보가 담겨 있으니 주의를 요한다고도 명시했다. 그런데도 EMC가 공동 도급사들과 문건을 공유하고 고용승계 면접에 사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A 씨는 “이 일로 2021년부터 계속 재판을 하고 있다. 민원, 고소 등이 이어져 너무 힘들다. SK에코플랜트에 협조 요청을 했지만 본인들과는 관계없다고 한다. 요청이 없었으면 내가 뭐 하러 그걸 자발적으로 작성해서 EMC에 줬겠나. 설령 EMC 주장대로 요청을 안 한 거면 대체 왜 그 문건을 공동 도급사와 공유해 면접에 사용했나. 너무 억울한 상황이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EMC 측은 문건 작성을 요청한 적도 없다고 밝혔다. EMC 관계자는 “타 업체 직원의 개인적인 사건으로 당사와 관련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블랙리스트) 문건은 EMC에서 작성한 문서가 아니다. 작성해달라고 요청한 사실도 없다. 면접 과정에서 이 문건을 활용하지도 않았다”고 답했다. 

 

이 같은 해명과 달리 법원은 EMC의 문건 작성 요청 사실을 인정했다. 판결문에는 ‘고용승계와 관련하여 승계회사인 환경시설관리주식회사(승계회사)의 요청을 받고 정보주체인 B 씨 등 소속 직원들의 동의를 받지 않고 소속 직원 21명에 대한 이름, 품행, 성격 등이 기재된 ’성향 조사서‘를 작성하여 제3자인 승계회사에 제공하였다’고 명시됐다. 

 

EMC 요청으로 문건이 작성됐다는 사실은 고용노동부 조사에서도 드러난다. 2022년 4월 고용노동부가 용혜인 의원(기본소득당)에게 제출한 ‘취업방해 관련 사건 조사’ 내용에 따르면 ‘근무자 성향 조사를 취업을 방해할 목적으로 작성을 요구하거나 사용하였다고 보기 어려워’라고 명시했다. EMC의 작성 요구와 사용은 인정하되, 취업 방해 목적은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결국 EMC의 요청으로 A 씨가 문건을 작성하고 이 문건이 고용승계 면접자료로 사용됐지만, 처벌을 받는 건 A 씨뿐이다. 

 

천안시도 이 사건과 관련 없다고 발을 뺐다. 2022년 4월 천안시는 용혜인 의원실의 질의에 “천안시 하수슬러지자원화처리시설 관리대행용역 계약 건의 과업지시서에는 근로자 성향조사서를 작성해야 하는 내용은 포함하지 않았으며, 해당 건은 관리대행사에 속한 근로자가 임의로 작성해 사인 간의 진정, 고소 고발 건으로 추측하고, 천안시는 근로자 사인 간의 진정, 고소 건에 대한 자료를 요구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서로가 책임을 떠넘기는 가운데 재발 방지 대책도 나오지 않았다. 천안시 관계자는 비즈한국에 “채용 부분에서 도급사 자체적으로 진행됐다. 천안시도 나중에 알게 된 상황이다. 도급사도 안 될 일을 한 건데 이 부분을 시에서 어떻게 하는 건 좀 어려운 부분이다. 블랙리스트 관련해 시에서 한 조치는 없는 걸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승현 기본소득당 노동안전특별위원장은 고용노동부의 소극적 대응을 꼬집었다. 최 위원장은 “근로기준법 주해 취업방해 금지의 부분에는 ‘​반드시 적극적으로 취업을 방해할 의사를 요하지 않고 그 행위가 취업을 방해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을 알고 있으면 족하다’​고 본다. 그런데 고용노동부는 직원 성향 문건 작성 사실과 이로 인해 면접에 탈락한 사람이 있었음에도 ‘취업을 방해할 목적’이 확인되지 않았다며 자의적으로 내사를 종결했다. 이에 반해 경찰, 검찰, 법원에서는 법 위반 사항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집행하는 공무원에 따라서 ​노동법이 ​다른 법보다 노동자를 더 보호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일어났다​”​고 비판했다. 또 “​A 씨는 서류만 넘겨줬으니, 이 서류를 사용한 EMC 담당자를 조사해 처벌했어야 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환경노조 “원청 천안시가 책임져야”

 

환경노조는 원청인 천안시에도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 14일 환경노조는 기자회견을 열어 “박상돈 ​천안시장은 천안시 소속 시설물에서 벌어지고 있는 극단적 노동탄압을 더는 방치하지 말라”며 천안시에 노동환경 개선과 직영 운영을 촉구했다. 

 

천안시 자원화처리시설 노동자들은 지난 300일 동안 천안시청 앞에서 노동 환경개선을 촉구해왔다. 사진=전다현 기자

 

환경노조는 “공동 도급사의 갑질 문제, 열악한 근무환경 개선을 위해 300일 동안 천안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지만, 천안시 자원화처리시설은 여전히 휴게 공간과 식당이 없다. EMC의 요구로 블랙리스트가 만들어졌지만, 천안시는 천안시와 무관하다는 입장만 고수한다. 단독 도급하던 시설을 5개 회사가 공동 도급해 운영하면서 수많은 문제가 생겨도 책임지는 주체는 없다”고 비판했다. 천안시 자원화처리시설의 원청은 천안시지만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앞서 천안시 관계자는 “노조에서 요구한 휴게실 설치 등 근무환경 개선이 진행 중이다. 휴게실과 사무실 증축 공사를 12월까지 완료할 예정이다. 공동 도급도 노조에서 이야기한 것과 같은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관련 부서와 검토할 것이다”고 밝혔다. 

전다현 기자

allhyeon@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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