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롯데헬스케어가 스타트업 아이디어 도용 의혹을 받은 알약 디스펜서(정량 공급기) 사업을 접는다. 정부와 정치권의 압박이 커지고 여론도 악화하자 관련 사업을 철수키로 결정한 것이다. 핵심 사업인 플랫폼 ‘캐즐(CAZZLE)’과 논란이 불거진 디스펜서 ‘필키(Fillkey)’를 분리하고 신사업 정식 론칭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스타트업과의 분쟁은 막을 내렸지만 롯데헬스케어 앞에는 여러 과제가 남았다. 알약 공급 기기를 통한 영양제, 건강식품 판매 연계 효과를 기대할 수 없게 됐고, 서비스 개시 전부터 얻은 부정적인 이미지 개선도 시급하다. 양측 합의와는 별개로 계속되는 기술 도용 관련 조사에서 아이디어 도용은 사실이 아니라는 점도 입증해야 한다.
#5개월 공방 ‘봉합’…상생 합의 맺고 기기 사업 접는다
최근 롯데헬스케어와 알고케어의 기술 탈취 공방이 일단락됐다. 7일 국회에서 열린 ‘스타트업 기술 탈취 피해근절 민당정 협의회’에 참여한 정지원 알고케어 대표는 롯데헬스케어와 기술탈취 분쟁과 관련한 논쟁을 중단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정 대표는 “양 사의 합의가 앞으로 기술 탈취와 아이디어 도용 문제를 겪을 스타트업에게 좋은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합의 시 대기업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일부 협업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알고케어와 롯데헬스케어는 알약 디스펜서 기술을 두고 1월부터 공방을 지속했다. 알고케어는 2021년부터 롯데와 사업 협력을 논의한 만큼 롯데헬스케어가 자사 제품에 사용된 아이디어를 탈취했다고 주장했고, 롯데헬스케어는 알약 디스펜서가 해외에서 널리 사용하는 제품으로 아이디어 도용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롯데헬스케어의 기술 탈취 여부를 가리는 조사는 계속해서 진행된다. 정부 판단을 받아 기술 분쟁과 관련한 위법 시비는 가리되, 양측의 불신과 소모적 논쟁은 일단 멈추기로 한 것.
이번 합의를 통해 양 사는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기금을 공동 명의로 기탁하기로 하는 등 분위기 전환에 나섰다. 특히 롯데헬스케어는 논란을 끝내고 핵심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영양제 디스펜서 판매 사업에서 아예 손을 뗀다. 롯데헬스케어 관계자는 “핵심사업인 개인 맞춤형 건강관리 플랫폼 캐즐의 경쟁력 강화에 더 집중할 방침”이라며 “디스펜서가 없어도 모바일에 앱을 설치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플랫폼-기기 시너지 기대 어려워…도용 의혹 소명도 과제
롯데헬스케어에 따르면 플랫폼은 계획대로 8월에 공식 오픈한다. 영업비밀 도용 여부를 두고 양 사가 첨예하게 대립했던 때보다는 상황이 나아졌지만 롯데헬스케어로서는 사업 전략 수정이 불가피하다. 1차적으로는 전문몰을 지향한다. 인테리어 분야의 ‘오늘의집’, 패션 플랫폼 ‘무신사’처럼 건강관리 서비스를 집약한 플랫폼을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핵심 사업은 건강기능식품, 일반식품, 운동용품, 뷰티 분야 등의 라인업을 갖춘 ‘캐즐’이다. 건강 진단부터 개인별 추천을 통해 구매까지 연결해 건강-의료-유통 등 그룹 사업과 시너지를 낼 것으로 전망한다.
캐즐의 성공적인 안착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됐던 게 바로 디스펜서 필키다. 롯데헬스케어는 논란이 시작된 CES 2023에서 플랫폼과 필키의 연계 체험을 선보였고 아직까지도 공식 홈페이지에 필키를 캐즐과 함께 주요 상품으로 소개하고 있다. 롯데는 기기에 다양한 업체의 알약을 장착할 수 있게 해 범용성과 확장성을 높이려 했다. 하지만 디스펜서 사업 철수를 결정한 상황에서 이 같은 연계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롯데헬스케어는 캐즐 공식 론칭을 2개월 앞둔 상황에서 디스펜서 사업 철수가 핵심사업 무산으로 비칠까 경계하고 있다. 롯데헬스케어 관계자는 “아쉬움은 남지만 디스펜서 출시 목적은 일반 영양제의 섭취 편의를 증진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타격은 크지 않다”며 “필키는 오프라인 디바이스로 고려했던 것이고, 디스펜서 없이도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하는 데에 크게 지장이 없도록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디스펜서를 통해 영양제를 추천하는 방식에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 유전자 검사 분석 업체에 투자해 건강 검진 데이터 외에 유전자 데이터까지 연동하는 등 플랫폼 경쟁력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술 탈취 오명을 벗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합의와 별개로 진행되는 기술 탈취 관련 조사에서 의혹을 완전히 털어낼 필요가 있다. 롯데헬스케어는 중소벤처기업부와 공정거래위원회, 특허청으로부터 기술분쟁 관련 조사를 받아왔다. 중기부 기술분쟁조정 건은 알고케어의 취하로 취소됐지만 공정위와 특허청의 분쟁조사는 최종 결론까지 나올 예정이다.
롯데헬스케어는 이번 합의에서 조사 결과와 관계없이 판단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재계 관계자는 “이미 스타트업 기술 도용이라는 부정적인 꼬리표가 달린 만큼 신사업을 운영하는 법인을 떠나 그룹에도 부담이 있을 수밖에 없다. 기기 출시는 최종 불발됐지만 영업 비밀을 탈취하지 않았다는 공식적인 결론을 얻어야 이미지 쇄신 기회를 엿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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