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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와이너리] 한 장의 사진도 없는 서울 혜화문 '석굴암'의 기억

방공호를 주점으로 개조해 90년대 초반까지 영업…동소문로 확장 및 혜화문 복원 공사로 폐업 짐작

2023.06.08(Thu) 10:34:32

[비즈한국] 조선시대 수도를 둘러싼 한양도성의 출입문은 4개의 큰 문과 4개의 작은 문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대문에 비하면 크기가 작아 동소문이라고도 하는 혜화문은 북쪽 대문인 숙정문과 동쪽 대문인 흥인지문 사이에 있던 문이다. 인근 지명인 동소문동과 혜화동이 여기서 유래했다.

 

예나 지금이나 혜화문 부근은 서울 북부로 가는 중요한 관문 구실을 한다. 그리하여 필연적으로 교통을 막게 되는 혜화문의 운명도 순탄치 못했다. 혜화문은 1939년 일제의 도시계획으로 완전히 헐리고 그 자리엔 도로와 전차 선로가 놓였다. 나중에 문을 복원하려고 보니 원위치는 이미 중요한 간선도로가 되어 있어 건드리지 못하고 10여 미터 떨어진 곳에 복원공사를 시작하여 1994년 완공을 보았다.

 

동대문 보다는 크기가 작아 동소문이라고도 불리는 혜화문. 사진=한동훈 제공

 

복원된 혜화문을 올려다보면 안 그래도 지대가 높은데 원위치가 도로 공사로 인해 낮아져서 더욱 높아 보인다. 그래도 문 입장에서 보자면 양옆으로 중요 건축물이 빼곡히 들어차 복원을 시작조차 하기 어려운 돈의문에 비하면 그나마 나은 셈이다. 한자로 된 현판은 처음엔 완공 당시 서울특별시장이었던 이원종 씨가 썼지만, 원본과 쓰기 방향도 다르고 필체가 좋지 못해 2019년 원본 글씨를 살린 현판으로 교체됐다. 두껍고 역동적인 필체에서 힘이 느껴지는 원본이 엄연히 존재했는데도 모든 면에서 뒤떨어지는 조잡한 글씨를 달아 놓은 점은 의문이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바로잡혀 다행이다.

 

헤르만 산더가 촬영한 1900년대 초 혜화문. 사진=국립민속박물관 제공

 

그런데 혜화문이 사람들 사이에서 검색되는 전혀 다른 이유가 있다. 혜화문 터 옆에 있었던 주점 '석굴암' 때문이다. 석굴암이 경주 아닌 서울에? 그렇다. 1970년대만 해도 혜화동 로터리와 삼선교를 잇는 고갯길은 지금보다 좁았고 정상 부근엔 시멘트로 된 축대가 있었다. 그런데 그 축대에 태평양전쟁 말기인지, 한국전쟁 시기 만들어졌는지 모를 방공호가 파여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 쓸모가 사라진 방공호를 주점으로 개조한 것이 혜화 석굴암이다. 경험자의 글을 읽어 보면 좁다란 길을 따라 들어가 개미집처럼 곳곳에 만들어진 어두운 방 안에서 막걸리를 마시던 집이라고 한다. 대학 시절 미팅을 했다는 경험담도 있다.

 

안타까운 것은 자료의 부재이다. 갔다는 사람은 많은데 신기하게도 그 입구나 내부를 담은 사진은 단 한 장도 전해지지 않는다. 석굴암은 현재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언제 사라졌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1980년대 중반에서 90년대 초반까지 동소문로 확장공사와 혜화문 복원공사가 있었는데 그 언저리에 완전히 헐렸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사진=성북구청 제공

 

인구 대부분이 디지털카메라를 지니고 SNS 활동이 활발한 지금이라면 석굴암은 색다른 콘셉트의 주점으로 인기를 끌었을 것이다. ‘석굴암'이 하나의 브랜드가 되어 ‘굴’에서 그래픽 모티브를 얻은 브랜딩 작업이 이뤄지고 체인점이 퍼지는 상상도 해 본다. 막상 시간 여행으로 석굴암 문을 열고 들어서면 현대 기준으로는 웬만한 노포보다도 못한 허름한 시설에 실망하게 될 수도 있다. 기대한 분위기가 아니라는 생각에 사발을 입에 대는 둥 마는 둥 하고 자리를 옮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곳에 가고 싶다'. 오랫동안 상상 속에만 존재했던 장면이 눈앞에 나타난 순간, 기대와 다를지라도 그런 실망감에 맥 빠질 기회를 가져 보고픈 사람이 비단 필자만은 아닐 것이다.

 

​필자 한동훈은? 서체 디자이너. 글을 쓰고, 글씨를 쓰고, 글자를 설계하고 가르치는 등 글자와 관련된 모든 분야에 관심이 있다. 현재 서체 스튜디오 얼라인타입에서 다양한 기업 전용폰트와 일반 판매용 폰트를 디자인한다. ‘월간 디자인’​, 계간 ‘디자인 평론’​​등에 기고했으며 온·오프라인 플랫폼에서 서체 디자인 강의를 진행한다. 2021년 에세이집 ‘글자 속의 우주’​를 출간했다. 

한동훈 서체 디자이너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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