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난 5월 22일 함부르크상공회의소에는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푸드 스타트업의 축제가 열렸다. 음식에 관한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모인 푸드 이노베이션 캠프(FIC, Food Innovation Camp)다. 100개의 음식 관련 스타트업이 모인 이 자리에서 음식의 미래와 방향성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동물성 재료를 넘어 ‘채식, 자연주의, 지속 가능성’이 화두였고, 이 세 가지 키워드에 벗어난 스타트업은 거의 없었다. 특히 FIC는 일반인보다 셰프, 도소매상 등 업계 전문가들이 방문하는 전문 산업박람회인 만큼 이것이 업계 트렌드임을 알 수 있다.
FIC는 시작된 지 5년 남짓한 신생 박람회다. 독일에는 쾰른의 아누가(Anuga)나 베를린의 그린 위크(Green Week)처럼 전통 있는 초대형 음식 관련 박람회들이 있지만 함부르크의 FIC는 차별화를 표방한다. 단순히 음식 재료를 소개하는 무역 박람회를 넘어서서 음식 산업의 혁신을 가져다주는 스타트업의 솔루션을 소개하는 스타트업을 위한 자리다.
#스타트업에 ‘잠재 고객사’를 연결해준다
FIC는 상대적으로 소규모 박람회이지만 참여하는 스타트업의 규모가 점점 늘고, 밀도도 더욱 높아지고 있다. FIC 주최 측은 단순히 기업이 돈을 들여 PR만을 하는 장소가 아니라 스타트업에 가장 필요한 ‘고객사와의 연결’을 통해 실제로 매출을 발생시켜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부스를 설치해 전시하고, 컨퍼런스를 통해 업계 전문가의 통찰력을 얻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기본적으로 구성돼 있다. 그 밖에 스타트업과 고객사를 직접 연결해주는 매치메이킹 프로그램과 스피드 데이팅 프로그램을 통해 비즈니스 기회를 최대한 많이 만들 수 있도록 구성했다. 스타트업들은 이 프로그램에 만족도가 가장 높다. 독일 최대 슈퍼마켓 체인 레베(REWE), 요리사들에게 식재료를 공급하는 셰프스 쿨리나(Chefs Culinar) 같은 평소 만나기 힘든 대기업의 담당자를 직접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FIC의 파트너로 참여하는 음식 관련 주요 기업들은 행사의 든든한 후원자로서 그리고 혁신을 가장 선두에서 발견하고 시장에 내놓는 선구자로 이 자리에 함께한다. 주로 비건 식품을 만드는 기업 카트예스 그린푸드(Katjes Greenfood), 유기농 스낵 전문 기업 볼스너 뮐레(Bohlsener Mühler) 등이 FIC의 중요한 파트너다. 음식 관련 스타트업은 이곳에서 시간과 비용과 에너지를 투자한 만큼의 성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아몬드유로 만든 치즈, 맥주 찌꺼기로 만든 그래놀라
2021년 이탈리아인 피에로 브루네티(Piero Brunetti)가 베를린에 설립한 스타트업 몬다렐라(Mondarella)는 비건 치즈를 만드는 스타트업이다. 모짜렐라, 까망베르, 파마산 등 다양한 지즈를 일반 우유가 아닌 아몬드유, 세몰리나(Semolina) 등을 활용해서 만든다. 독일인은 1인당 연평균 25kg의 치즈를 먹는데, 축산은 농업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 총량의 4분의 3을 차지할 정도로 그 비중이 크다. 따라서 고기뿐만 아니라 유제품도 대안을 모색해야 하는 영역이다.
몬다렐라는 직원이 아직 15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팀이지만, FIC를 통해서 독일의 대형 소매 체인과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2022년 설립된 스위스 스타트업 그레인메이드(Grainmade)도 흥미롭다. 보통 식품을 생산하고 남는 찌꺼기는 대부분 버려지는데, 이 같은 ‘쓰레기’를 가지고 새로운 식품을 만들어 낸다. 예를 들어 맥주를 만들고 남은 찌꺼기를 영양학적으로 분석했더니 단백질과 식이섬유가 풍부했다. 이에 그레인메이드는 지역 양조장과 협력해 맥주 찌꺼기를 무상으로 수거한 뒤 이것을 플레이크처럼 만들어 다진 고기 대용 제품을 만들었다. 그래놀라나 뮤즐리 같은 간단 식사 대용 제품도 생산한다. 그야말로 창조경제의 본보기다.
다양한 글로벌 스타트업 사이에서 유일하게 참여한 한국의 푸드 스타트업 쿠엔즈버킷(Queensbucket)도 눈에 띄었다. 쿠엔즈버킷은 2012년 설립됐으며 저온 압착 방식으로 프리미엄 참기름과 들기름을 생산한다. 미국과 베를린, 오스트리아 등 세계 각지의 미슐랭 셰프들이 사용하는 오일로 입소문이 난 쿠엔즈버킷은 시장의 필요를 파악하고, 유럽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해 이번 FIC에 참여했다.
박정용 쿠엔즈버킷 대표는 “단순히 참기름, 들기름을 생산하는 아이디어를 넘어서 지역 기반 방앗간 설립 모델을 고민하고 있다”고 포부를 밝혔다. “지역 농부들이 생산한 씨앗으로 지역의 소규모 제조시설에서 생산하고, 소비자에게는 가장 품질 좋은 오일을 공급하는 환경과 생산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 혁신의 핵심”이라며 “참기름을 짜고 난 참깨 박을 가공해 새로운 제품으로 확장할 수 있기에 지속 가능성 차원에서도 쿠엔즈버킷의 사업모델을 고민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정육기업의 식물성 버거, 수산업체의 비건 참치 등 전통기업 변신 ‘눈길’
막 시작한 작은 스타트업의 혁신적인 아이디어도 흥미로웠지만, 전통기업의 변신도 곳곳에서 눈에 띄어 매우 흥미로웠다. 4대째 이어오는 오스트리아의 정육 식품 가공업체 헤르만 비오(Hermann Bio)는 자회사 노이버거 플라이시로스(Neuburger Fleischlos)를 설립해 새송이버섯으로 만든 고기 대체품을 선보였다. 자회사 이름을 독일어로 ‘고기가 없는 새로운 버거’라고 지은 것도 흥미롭다.
6대째 수산업을 하는 슈테크 씨푸드(Sterk Seafood) 집안의 로렌스 슈테크(Laurens Sterk)의 아이디어도 흥미롭다. 로렌스 슈테크는 공식적으로는 슈테크 씨푸드의 해외 영업 매니저를 맡고 있다. 7년 넘게 그 일을 하다가 2022년 1월 슈테크 플랜트 베이스드 푸드(Sterk Plant based food)라는 프로젝트를 생각했다. 본인의 가족회사가 하는 것과 정반대로 식물성 재료를 이용한 연어, 참치를 만들고 식물성 비건 새우를 만든 것. 비건 제스타(Vegan Zeasta)라고 이름 지은 이 제품은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생선의 식감뿐만 아니라 맛도 완벽하게 재연했기 때문이다.
로렌스는 4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글로벌 씨푸드 마켓플레이스 행사에도 출품한다. 반(反)씨푸드 제품이 당당하게 씨푸드 마켓 행사에 출품한 것이 당돌하다.
우리의 눈과 귀와 입을 즐겁게 하는 혁신은 때로는 전통의 기업에서, 때로는 시장에 새로 진입한 새내기에게서 발견된다. 누구에게서 시작된 혁신이건 지속 가능한 미래를 꿈꾼다는 측면에서는 모두의 고민이 같다는 것이 흥미롭다. FIC는 스타트업 생태계를 이루는 것이 단지 스타트업만이 아님을 잘 보여주는 행사였다.
필자 이은서는 한국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베를린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예술의 도시이자 유럽 스타트업 허브인 베를린에 자리 잡고, 도시와 함께 성장하며 한국과 독일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잇는 123factory를 이끌고 있다.
이은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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