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남쪽 하늘에서 홀로 외롭게 빛나고 있는 밝은 별이 있다. 남쪽물고기자리의 가장 밝은 별, 포말하우트다. 눈부시게 빛나는 이 별의 사진을 보자. 곁에 숨어 있는 무언가가 보이는가?
별빛을 싹 지워보면 밝은 별빛에 가려져 있던 주변의 먼지 원반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마치 ‘반지의 제왕’에 나온 ‘사우론’의 눈처럼 느껴진다. 태양계 외곽 카이퍼 벨트처럼 중심의 포말하우트 별을 감싸고 있는 거대한 부스러기 원반의 모습이다. 허블 망원경의 끈질긴 관측을 통해 천문학자들은 2004년에서 2006년 사이에 이 먼지 원반 속에서 작은 반점 하나가 천천히 이동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포말하우트 곁을 도는 외계행성을 직접 촬영해서 확인한 것이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최근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으로 이 별을 다시 바라봤다. 그런데 앞서 발견된 포말하우트 주변 외계행성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외계행성이 사라진 것이다. 게다가 이전 관측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반점이 나타났다. 포말하우트 주변에 숨어 있던 외계행성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이 별 주변에선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포말하우트 주변에 숨어 있는 외계행성의 존재는 2008년 논문을 통해 처음 알려졌다. 당시 천문학자들은 외계행성 포말하우트 b가 목성의 2~3배 조금 안 되는 질량을 가진 가스 행성이라고 추정했다. 행성의 공전주기는 무려 1700년. 정말 거대한 궤도를 천천히 돌고 있는 행성이다. 2015년 국제천문연맹은 공모를 통해 남쪽물고기자리에서 발견된 이 외계행성에, 메소포타미아 신화의 반인반어 신 다곤(Dagon)의 이름을 붙였다. 가시광 관측으로 직접 촬영에 성공한 역사적인 외계행성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천문학자들은 이 외계행성의 존재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2004년에서 2012년까지 더 오래 추가 관측을 해보니 다곤 행성은 별 곁을 둥근 원 궤도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별 주변 부스러기 원반을 안팎으로 통과하는 아주 크게 찌그러진 타원 궤도(이심률=약 0.8)를 그렸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일부 천문학자들은 다곤이 안정적인 궤도를 유지할 수 없는, 곧 파괴될 먼지 구름일 수 있다고 추정했다. 하지만 연이은 추가 관측을 통해 계속 존재가 확인되면서 죽지 않고 계속 버티는 ‘좀비 행성’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2020년 다곤이 사실 외계행성이 아니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더 자세히 관측해 보니 이 반점은 크기가 점점 펑퍼짐해지고 더 흐릿하게 변하고 있었다. 이것은 하나로 뭉쳐 있는 행성이 아니라 점차 흩어지는 먼지 구름 덩어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기껏해야 200~300km 크기로 소행성 두 개가 충돌하면서 생긴 파편 구름으로 보였다. 결국 NASA는 한동안 외계행성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포말하우트 b의 이름을 공식적으로 삭제했다. 그렇게 다시 포말하우트는 외계행성이 없는 외로운 별이 되었다.
제임스 웹은 이 논란의 포말하우트를 다시 관측했다. 그리고 앞선 관측에선 보지 못했던 놀라운 차이를 또 다시 포착했다.
우선 기존 관측에선 포말하우트 별 주변 부스러기 원반이 하나만 관측되었다. 그런데 제임스 웹은 더 선명하게 안팎에 숨어 있던 또 다른 부스러기 원반 세 개를 발견했다. 중심 별에서 겨우 0.1AU 거리에 있는 가장 안쪽 고리, 별에서 1AU 정도 거리를 둔 중간 고리, 중심 별에서 130AU 이상 먼 거리까지 뻗어 있는 카이퍼 벨트 수준의 가장 바깥 고리. 게다가 각각의 고리 사이 부스러기 입자가 적어서, 뚜렷하게 틈이 벌어져 있었다.
제임스 웹은 앞서 발견됐가 명단에서 지워진 포말하우트 b 외계행성이 정말 존재하는지도 최종 검증했다. 정말 외계행성이 맞다면 지금쯤 놓여야 할 자리를 봤는데, 그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포말하우트 b는 정말 외계행성이 아니라 먼지 구름이었던 것. 그 사이 모두 흩어져 사라진 것이다.
전혀 다른 자리에서 새로운 반점도 발견했다. 이번엔 포말하우트 주변 가장 바깥 고리다. 주변의 다른 먼지 원반에 비해 유독 조금 더 뚜렷하게 무언가 뭉쳐 있는 것처럼 보이는 반점 ‘거대 먼지 구름(Great Dust Cloud)’이 하나 보인다. 한때 외계행성이라 생각했지만 결국 먼지 구름으로 밝혀진 포말하우트 b처럼, 천문학자들은 이곳 역시 오래전 거대한 행성체가 충돌하면서 만들어진 먼지 파편 구름일 것으로 추정한다. 다만 그 크기가 포말하우트 b보다 약 10배 더 크기 때문에, 훨씬 더 큰 행성체끼리 부딪쳤을 거라 생각된다. 포말하우트 별 주변 부스러기 원반 속에서는 지금도 쉬지 않고 크고 작은 소행성들의 충돌이 한창 벌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포말하우트 주변에는 지금 그 어떤 외계행성도 없는 걸까? 모두 다 서로 부딪히고 깨지면서 사라졌을까?
놀랍게도 이번 제임스 웹 관측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또 다른 외계행성의 존재 가능성을 보여준다. 우선 사진 속 중간 고리를 보면 유독 위쪽 부분이 더 옅고 흐릿하게 보인다. 어쩌면 이것은 바로 고리가 끊긴 것처럼 보이는 자리에서 거대한 외계행성이 새로 빚어져서일 수 있다. 주변에 있는 먼지 입자를 끌어모아 행성이 만들어지면 그 주변의 부스러기 원반은 깔끔하게 청소가 될 수 있다.
가장 안쪽부터 바깥쪽 고리 사이사이 벌어진 뚜렷한 간극 역시 그 사이에서 궤도를 도는 외계행성의 존재를 암시한다. 우리 태양 주변에서도 목성의 강한 중력 덕분에, 화성과 목성 사이 소행성들이 안정적으로 거대한 소행성 벨트를 유지하며 모여 있다. 다만 포말하우트의 경우 그 부스러기 벨트의 규모가 정말 어마어마하다. 태양계 소행성 벨트는 그 두께가 기껏해야 1AU 규모다. 그런데 포말하우트 주변 부스러기 벨트의 두께는 무려 70~80AU 수준이다. 특히 이번에 새로 발견한 중간 고리는 가장 바깥 고리에 대해 약 23도 수준으로 크게 기울어져 있다. 이 역시 부스러기 원반 안팎에 육중한 외계행성들이 숨어 각 원반의 기울기에 영향을 주기 때문으로 추정할 수 있다.
사실 포말하우트는 태양에 비해 훨씬 어린 별이다. 현재 나이는 약 4억 년밖에 되지 않는다. 거의 50억 년 가까운 세월을 산 태양에 비하면 10분의 1밖에 안 되는 어린 별이다. 그만큼 포말하우트 항성계는 별 주변 부스러기 원반 속에서 새로운 아기 행성들이 막 태어나고 또 서로 부딪히면서 박살 나는 혼돈의 시기를 한창 겪고 있을 것이다. 아직 교통정리가 되지 않은 부스러기 원반이 아기 별을 둘러싼 현장이다. 포말하우트는 우리 태양계가 한참 전에 경험했을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그리 멀지 않은 아기 항성계 중 하나다. 아쉽게도 이번 관측에서는 부스러기 원반 사이에 숨어 있을지 모르는 외계행성의 모습을 관측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앞으로 추가 관측을 통해 외계행성의 존재를 최종 검증할 계획이다.
한때 천문학자들은 남쪽물고기자리 포말하우트 곁에서 다곤이라는 대어를 낚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곤은 구름처럼 사라졌고, 천문학자들의 어망은 텅 비었다. 그런데 10여 년 만에 제임스 웹 관측을 통해 아직 발견되지 않고 숨어있을지 모르는 또 다른 대어의 입질을 느꼈다. 앞으로 추가 관측을 통해 새로운 외계행성을 잡아낼 수 있을까? 어쩌면 포말하우트는 아직 그 곁에서 잘 반죽된 외계행성을 기대하기에는 너무 어린, 이제 막 태어난 아기 항성계인지도 모른다.
참고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50-023-01962-6
https://www.science.org/doi/10.1126/science.1166609
https://hubblesite.org/contents/media/images/2023/011/01GYSXWJ23N918WTPEP871ZRFY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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