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전세사기로 인한 보증금 미반환 문제가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원희룡 국토교통부장관이 부동산 시장에 ‘에스크로(ESCROW, 결제대금예치제도)’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전자상거래처럼 부동산 거래대금을 거래 완료 시까지 제3자에게 예치해 안전을 담보하겠다는 발상인데, 과거 운용 사례와 전세 제도의 특성을 반영했을 때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19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전세 제도 전반에 대한 개편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원 장관은 이 자리에서 “일각에서는 전세보증금을 금융에 묶어놓는 에스크로 계좌를 도입하자는 얘기도 나온다. 가능한 모든 방법을 올려놓고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에스크로는 제품 구매자와 판매자가 거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거래대금을 거래 완료 시점까지 금융기관 등 제3자에게 예치하는 제도다. 주로 전자상거래에서 사용된다. 온라인쇼핑몰에서 구매자가 구매대금을 금융기관에 예치하면 금융기관은 상품 배송 등 거래 완료 내역을 확인해 결제 대금을 판매자에게 지급하는 식이다.
에스크로는 일찍이 부동산 시장에 도입됐다. 2000년 개정된 공인중개사법(당시 부동산중개업법)에 따라 개업 공인중개사는 거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거래 계약 이행이 완료될 때까지 계약금, 중도금, 잔금을 금융기관이나 신탁업자, 공제사업자, 개업공인중개사 등에게 예치할 수 있다.
하지만 국토부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에서 부동산 에스크로를 운용하는 회사는 없다. 법 개정 이후 2004년 하나자산신탁(당시 다올부동산신탁) 등에서 부동산 에스크로 상용화에 나섰지만 시장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이후 2016년 퍼스트아메리칸권원보험(FA)와 직방, 우리은행과 각각 업무협약을 맺고 부동산 에스크로 제도 부흥을 위한 시범 상품을 출시했지만, 우리은행은 최근 이 상품 취급을 중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에스크로가 부동산 시장에서 사장된 것은 비싼 수수료 탓으로 분석된다. 국토부가 2016년 작성한 연구 자료에 따르면 에스크로 제도 도입 당시 전세 에스크로 예치 수수료율은 0.3% 수준으로 전세보증금 2억 원을 예치했을 때 60만 원 상당을 수수료로 지급해야 했다. 예치 수수료는 이후 2016년 0.05% 수준(우리은행 기준)까지 줄었지만, 매매나 전세처럼 예치 금액이 높아지면 가입자의 수수료 부담이 늘어난다.
국토부 부동산개발산업과 관계자는 “현재 국내에서 부동산 에스크로를 운영하는 금융사는 없다”며 “예치하는 금액에 비례해서 수수료가 커지기 때문에 매매나 전세보다는 월세 계약 위주로 운용됐다. 금융기관 입장에서도 수수료가 줄어들다 보니 힘들었던 상황”이라고 전했다.
부동산 에스크로 활성화가 세입자 보증금을 지키는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부동산 에스크로 예치 기간이 통상 전월세 거래가 완료된 것으로 인식되는 잔금 납입 시점이나 직후로 국한됐기 때문이다. 계약 단계에서 실제 소유주를 확인하거나 이중 계약을 방지할 수는 있지만 보증금 반환까지 담보할 수는 없다. 예치 기간을 임대차 만기 시점까지 늘리는 것 역시 보증금을 운용 자금으로 활용하는 우리나라 전세 제도 특성상 어렵다는 분석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임대인이 전세를 놓은 것은 전세금을 받아서 일종의 무이자 대출처럼 활용하려는 목적이 크다. 만기 시점까지 전세금을 에스크로에 예치하는 것은 우리나라 전세 현실에 맞지 않다”며 “임차인 전세보증금 보호는 기존 전세보증보험 등이 있기 때문에 굳이 추가적인 규제를 만들 필요까진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차형조 기자
cha6919@bizhankook.com[핫클릭]
·
[지금 이 공시] '배터리 아저씨' 떠난 금양의 걱정거리는?
·
애플페이 맞서는 삼성페이가 1020에 공들이는 까닭
·
자영업자들, 울며 겨자 먹기 '배달비 무료' 속사정
·
[알쓸비법] 전세 사기, 공인중개사는 과연 책임이 없을까
·
분양 아파트 실거주 폐지, 정부 추진 의지에도 지지부진한 까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