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온 나라가 마약으로 난리다. 우리나라는 더 이상 마약 청정 국가가 아니라는 말까지 나온다. 지난해 검거된 마약 사범은 무려 1만 8395명. 정부가 대대적으로 마약 수사를 벌인 영향도 있지만, 그만큼 마약이 우리 일상 깊숙이 침투되었음을 부인하긴 어렵다.
‘마약과의 전쟁’으로 직격탄을 맞은 곳도 있다. 지난 정부에서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의료용 대마 연구다. 대마 주요 성분인 칸타비디올(CBD)은 통증 완화 및 염증 조절 효과가 입증돼 이를 활용한 의료용 대마 산업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 받고 있다.
현재 국내 의료용 대마 연구는 걸음마 단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마 재배 자체가 극도로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2020년 국내 최초로 경상북도 안동에 ‘경북산업용헴프 규제자유특구’가 지정됐다. 허가받은 기업이 이곳에서 대마를 직접 재배하고 성분을 활용할 수 있다. 특구 지정 기간은 2024년 11월 30일까지이나, 정부에서 재정을 투입하는 것은 오는 5월 31일로 종료된다. 재정 지원 종료를 앞둔 규제자유특구를 다녀왔다.
#밀폐 공간에서 자동화 재배
서울에서 KTX를 타고 2시간 정도 달리면 도착하는 안동역. ‘헴프 규제자유특구’는 거기에서 차로 20분은 더 들어가야 하는 ‘안동포 전시관’ 옆에 조성됐다. 특구 주위에 철제 울타리가 쳐 있지만 걱정했던 것과 달리 출입 통제가 특별히 엄격하진 않았다. 이곳에서 헴프 재배를 연구 중인 ‘농부심보’ 관계자의 안내를 받아 입장했다.
특구에서 대마 재배를 연구 중인 업체는 총 9곳. 저마다 큰 트레이너와 비닐하우스 등으로 꽁꽁 닫혀있고 곳곳에서 CCTV를 쉽게 볼 수 있었다. 운영이 되고 있나 싶을 정도로 인적이 드문 특구 외부와 달리, 내부는 삼엄한 통제 속에 대마가 한창 자라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노수향 농부심보 대표는 국민대학교 대학원에서 마약과 관련된 행동 연구를 진행하다가 본격적으로 헴프 산업에 관심을 가지고 스타트업을 창업했다.
“대마는 크게 헴프와 마리화나로 나뉘어요. 건조중량 기준 환각성분인 테트라하이드로칸나비놀(THC) 성분이 0.3% 이하인 경우에는 헴프, 그 이상이면 마리화나가 되죠. 여기에서는 헴프 종자 중에서도 CBD 성분이 높은 종자를 미국에서 들여와 재배하고 있습니다.”
이 구분은 미국 기준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성분 함량과 상관없이 법적으로 모두 대마로 규정해 관리한다.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 50개국에서 헴프와 마리화나를 구분해 제도를 운용 중이다. 심지어 미국에서 헴프는 농산물로 분류될 정도라는 게 노 대표의 말이다.
사무실을 지나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대마가 한창 자라고 있다. 알싸한 향이 코를 찌른다. 대마 특유의 향이란다. ‘농부심보’는 대마를 완전 수경으로 재배하며, 온도와 습도 등도 모두 자동화 설비로 조절한다. 특구에 입주한 업체마다 재배 방식은 제각각이지만, 공통점은 노지 재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굳이 안동이 아니라 서울 한복판에서도 충분히 재배가 가능해 보였다.
“지금은 미국에서 들여온 종자로 재배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종자는 CBD 함유량이 낮아서 원료의약품으로 만들기에는 상품성이 크게 떨어져요. 그렇다고 무작정 CBD가 높은 품종을 들여오지도 못해요. 보통 CBD 성분이 높으면 THC 성분도 같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는데, 수확 시기에 성분 분석을 해서 THC 성분이 0.3% 이상 되면 무조건 전량 폐기해야 합니다.”
재배지에는 거의 1미터 간격으로 촘촘히 CCTV가 설치되고, 헴프 줄기마다 식별번호가 매겨진 태그가 부착되는 등 매우 엄격히 관리하고 있다. 대마 재배장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방진복까지 착용해야 한다. 대마를 보호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대마 성분이 옷에 붙어 외부에 반출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헴프 이원화 규제 관리’ 마약류관리법 개정 선행돼야
이렇게 삼엄한 감시 속에 재배된 헴프는 외부에 그냥 팔 수 없다. 한국콜마, 유한건강생활 등 원료품을 받아 가공하는 곳에 전량 납품해야 한다. 물론 이들 역시 원료를 사들이는 것이 아니라 납품 받은 헴프를 원료화 혹은 상품화하는 연구를 진행한다. 결국 재배와 추출, 가공 정도의 실증 단계에 머물러 있다. 총사업비는 388억 원 규모로 국비 229억 원, 지방비 124억 원, 민자 35억 원이다.
이렇게 힘들게 재배해도 외부에 판매하거나 자체적으로 상업화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규제다. THC 함유량과 상관없이 대마는 무조건 마약류로 분류되기 때문에 CBD 성분이 집중된 꽃을 수확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여기에서 CBD 성분을 추출해 누군가와 거래할 수도 없다.
농부심보는 수년간 쌓은 재배 및 추출 노하우를 바탕으로 여러 기업과 업무협약을 맺었다. 2022년 6월 NHN클라우드와 AI 기반 스마트팜 사업을 협력하는 협약을, 지난 4월에는 코스메틱 브랜드 뷰티시그널과 함께 헴프 관련 신제품을 출시하는 협약을 맺었다. 그러나 이렇게 협약을 맺더라도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대마관리법 개정이 선행돼야 한다.
실제로 개정 움직임도 있었다. 2021년 김형동 국민의힘 의원이 THC 0.3% 이하 대마를 마약류에서 제외하는 마약류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오히려 대마에 대한 규제는 더 강화됐다. 지난 2월 통과된 마약류관리법 개정안에는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대마를 제공하거나 흡연, 섭취하게 한 사람의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물론 마약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자는 취지는 당연하다. 그러나 최근 대마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매우 부정적인 상황이라 마리화나와 헴프의 이원화 규제·관리가 요원해 보인다는 것이 의료용 대마 업계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전 세계 의료용 대마 시장은 급성장하고 있다. 2024년 시장 규모가 최대 50조 원로 전망되며 매년 20% 이상 성장하고 있다. 그래서 안동 등 지자체는 물론 규제자유특구를 운영하는 중소벤처기업부, 헴프를 새로운 고부가가치 작물로 보는 농림축산식품부 같은 진흥 기관도 관심이 지대하다. 한의학계에서도 헴프 연구를 활발히 진행 중이다.
그러나 최근 ‘마약과의 전쟁’ 분위기로 인해 그 어느 곳에서도 ‘의료용 대마’의 규제 완화나 관리 이원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제대로 내기 어렵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우려다.
노수향 농부심보 대표는 “의료용 대마를 연구하는 어떤 곳에서도 대마를 합법화하자고 주장하지는 않는다”며 “다른 나라처럼 철저한 이력 관리와 보안·감시 시스템만 구축된다면 의료용 대마 사업이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미국 일부 주나 캐나다, 태국 등에서는 대마를 아예 합법화했다. 대마가 과연 위험한 마약이냐 아니냐에 대한 논란도 여전하다. 대마 흡입 후 환각 증세로 인해 타인을 폭행·살해한다거나, 지나치게 많은 양을 흡입해 질병에 걸리거나 사망에 이르렀다는 보고는 아직 없다. 물론 그런 ‘마약’도 있다. 술이나 담배가 대표적이다.
경북 안동=봉성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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