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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비법] 전세 사기, 공인중개사는 과연 책임이 없을까

임대차 계약서는 임대인과 공인중개사에게 유리하게 작성…방조했다면 민·형사상 책임 따져야

2023.05.22(Mon) 11:35:40

[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비즈니스 법률’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와 시민사회대책위원회가 사각지대 없는 전세사기·깡통전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빌라왕’ 사건으로 알려진 전세 사기 이슈로 전국이 시끄럽다. 하지만 현재 언론이 보도하는 내용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필자는 전세 사기 사건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전부터 유사 사건을 수임해 왔다. 필자가 전세 사기 사건을 담당하며 관찰한 것과 수행 경험으로 느낀 점은 다음과 같다.

 

먼저 피해자 중 상당수는 20~30대 사회초년생으로 학생, 구직자, 신혼부부 등이 많았다. 취업이나 학업을 위해 본가를 떠나 거처를 마련해야 하는데, 월세는 부담스러워 전세를 먼저 구한 것이다. 이전 정권에서는 특별한 소득이 없어도 전세 자금 대출을 쉽게 내어줘 전세금을 대출로 마련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두 번째 특징은 모든 사건에서 임차인이 소액임차인으로서 보호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임대차 법령에는 ‘소액임차인의 최우선변제권’이라고 해서 보증금이 일정 금액 이하인 임차인에게 보증금 중 일부를 다른 채권자에 앞서 우선변제 해주는 제도가 마련돼 있다. 예를 들어 서울 내 건물인 경우 보증금이 1억 6500만 원 이하라면 최대 5500만 원을 우선변제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필자가 수행한 모든 사건은 공교롭게도 보증금 액수가 1억 6500만 원을 초과해 임대차 법령에 따른 보호를 받지 못했다. 당시에도 지금처럼 ‘전세제도의 소멸’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전세가 월세로 바뀌는 추세였다. 이런 상황에서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월세를 안 받는 대신 보증금을 증액한다고 하면 임차인은 보증금이 소액임차인으로서 우선변제 받을 수 있는 보증금 액수를 초과해도 임대인의 제안이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여겨, 덥석 제안을 받아들여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부동산 등기부등본에 찜찜한 구석이 있는 경우도 있었다. 한 사건에서 등기부에 선순위 근저당권자가 기재된 경우가 있었다. 필자가 의뢰인에게 그런데도 왜 임대차계약을 체결했는지 묻자 의뢰인은 임대차계약 체결 당시 공인중개사(이하 공인중개사와 보조원을 묶어 ‘공인중개사 등’으로 명시)가 “임대인(집주인)이 건물 매수 과정에서 대출을 받은 것인데, 임대인은 재력가이고 건물 가액이 채권최고액을 초과하니 설령 문제가 되더라도 보증금을 다 돌려받을 수 있다”라며 안심시켰다고 한다.

 

등기부에 신탁등기가 있는 사례도 있었다. 신탁등기는 소유자가 신탁회사에 건물 처분 등을 위탁해 소유자에게는 임대할 권한이 없다는 의미다. 따라서 임차인이 그 소유자와 임대차계약을 체결하더라도 보호를 받을 수 없다. 

 

하지만 이런 내용이 등기부에 구체적으로 적혀 있진 않다. ‘신탁’이라는 문구만 기재돼 일반인이 그 의미와 위험성을 알기는 어렵다. 필자가 의뢰인에게 신탁 부동산을 임차해 위험을 자초한 이유를 물으니 의뢰인은 “공인중개사가 신탁은 채무가 아니어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안심시켰다”라고 말했다. 이 같은 건물들은 소액임차인으로서 보호받을 수 없고 등기부상 찜찜한 구석이 있어 지인이라면 임대차계약을 권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반면 임대차계약서를 보면 임대인과 공인중개사 등의 책임을 부정하는 문구가 매우 꼼꼼히 기재돼 있다. 예를 들어 “임차인은 현재 본 건물의 권리관계에 대해 모두 확인하고 설명을 들었으며, 인지 및 동의 후 임차인 본인 의사에 의해 계약을 진행한다. 또한 이 계약으로 인한 민형사상 어떠한 책임도 중개사무소에 묻지 않는다” “등기부등본의 근저당권 설정(또는 신탁등기 설정)을 임차인에게 사전 고지함” 등이다. 

 

전세 사기 우려와 높은 대출 이자로 인해 월세 선호 현상이 심화했다. 사진=최준필 기자


앞선 사정을 종합하면 공통점이 나온다. 우연이 반복되면 필연이 된다. 인과관계의 필연은 있어도 우연의 병존은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인이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전세 사기 사건에서 임대차계약은 사전에 임대인 및 공인중개사 등이 어떤 손해도 입지 않도록 법적으로 설계된 것이다. 과거 “사회 경험 부족한 퇴직금은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라는 블랙 유머가 있었는데, 전세 사기 사건은 법률 지식이 부족한 사회초년생이 사기의 대상이라는 점에서 영락없이 “사회초년생의 전세 대출금은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다. 

 

그렇다고 피해자에게 법률 지식이 부족하다거나 사회초년생이어서 미숙하다는 비판을 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 피해자는 대부분 소득과 자산이 충분하지 않아 부동산을 소유하는 것은 언감생심이고, 월세도 부담스러운 처치였다. 학업이나 취직을 이유로 정해진 기간 내 도심에 거처를 마련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전세 사기에 걸려든 것이다. 

 

둘째, 임대차계약 체결 과정에서 자칭 ‘전문가’의 권유와 조력이 있었다. 부동산 전문가, 임대인의 지인을 자처하는 공인중개사 등이 “안심해도 된다”라면서 임대차계약을 권유한 것이다. 이들이 공인중개사 사무소의 부산스러운 환경에서 계약체결을 재촉하니 임차인은 계약서나 부동산 등기 내용을 자세히 보지 않고 서둘러 계약을 체결하고 말았다. 

 

우리도 언제 어디서 이동통신 요금제에 가입했는지 기억하지 못하고, 가입 신청서를 제대로 보지 않고 서명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전세 사기에 걸려들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있다고 볼 수 있다.

 

앞선 사례에서 임대차계약은 공인중개사 사무소에서 공인중개사 등의 관여 하에 체결됐다. 피해자가 공인중개사라는 자격증을 신뢰한다는 점을 임대인 등이 악용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휴대전화 대리점에서 신청서 내용을 보지도 않고 서명하는 이유는 대리점이 가진 대형 이동통신사 브랜드와 그동안의 거래 경험을 믿기 때문이다. 또한 시간과 비용 측면에서 합리적인 결정이다. 

 

그런데 공인중개사를 믿고 그의 권유로 체결한 임대차계약은 임차인에게 합리적이지 못했다. 사건이 터진 후 중개사무소에 가서 항의하면 ‘계약을 권유한 보조인은 이미 퇴사했다’라거나 ‘당시에 다 설명했기 때문에 책임이 없다’는 식으로 공인중개사 등이 책임을 회피하는 말만 듣게 된다. 

 

결과적으로 전세 사기에 개입하고 방조한 공인중개사 등에 대해 민·형사상 책임을 묻는 것이 필요하다. 전문 자격증이 존재하는 이유는 거래의 신속성과 안전성을 보장하는 데 일차적인 목적이 있다. 하지만 필자가 옆에서 지켜보니 공인중개사가 개입한 계약임에도 임차인에게 파국적인 결과가 발생했다. 심지어 전세 사기에서 임대차계약의 내용을 결정하고 계약 체결을 권유하는데 공인중개사 등이 가담 및 방조했다고 볼 만한 정황도 있었다.

 

임차인이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해 손해액이 특정된다면 전세 사기에 개입한 공인중개사 등도 책임을 져야 한다. 전문가에게 책임을 묻는 만큼 임차인의 과실을 가정하거나 이를 고려해 감경해서는 안 된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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