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우주에 있는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다. 우리 지구도, 태양도 결국 사라진다. 얼핏보면 태양은 영원히 지금의 모습 그대로 계속 빛날 것 같지만 서서히 연료가 고갈되고 있다. 더 이상 빛을 낼 수 없을 정도로 연료가 모두 떨어지고 나면 결국 태양은 비대하게 부풀어오르면서 태양계 가장 안쪽부터 순서대로 수성, 금성, 지구까지 집어삼킬 것이다. 그런 뒤 외곽 가스 껍질 층을 밝게 토해내며 어둠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물론 지금 당장 최후의 날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앞으로 약 50억 년 뒤에나 찾아올 미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천문학자들이 그 현장을 발견했다. 태양과 비슷한 또 다른 별이 죽음을 앞두고 곁을 도는 행성을 실제로 집어삼키는 장면을 관측했다. 지구의 50억 년 뒤 모습이 우주 어딘가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다.
50억 년 뒤 지구에게 찾아올 최후의 날을 소개한다.
#태양이 죽기 직전 적색 거성으로 부푸는 이유는?
모든 별은 중심의 가벼운 원자핵을 융합해 무거운 원자핵을 만드는 핵융합 반응을 통해 막대한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그 에너지로 별은 오랜 세월 빛난다. 태양의 지름은 지구의 100배. 그 질량만 약 2×10^30kg에 달한다. 어마어마한 크기지만 어쨌든 별도 유한한 재료를 갖고 있다. 결국 수억, 수십억 년의 긴 시간이 흐르면 별이 품고 있던 핵융합 재료도 서서히 소진된다.
엔진이 멈추면 별이 차갑게 식으면서 맥없이 쪼그라들어야 하는 게 아닐까? 오히려 별들은 진화 막바지에 크기가 서서히 부풀어오른다. 왜 태양과 같은 별들은 나이를 먹으면서 더 크게 팽창하는 걸까?
우주의 모든 별에선 크게 두 가지 힘의 겨루기가 벌어진다. 별 자체의 육중한 중력으로 별을 중심으로 붕괴시키려고 하는 중력이 있다. 반대로 별 내부의 핵융합 엔진이 만들어내는 뜨거운 온도로 인해 별을 바깥으로 팽창시키려고 하는 열에 의한 압력이 있다. 이 두 가지 힘이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면서, 별은 더 수축하지도 팽창하지도 않고 일정한 크기를 유지하는 정역학 평형 상태를 유지한다. 얼핏 보면 태양은 아주 평화롭게 그 크기를 계속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신의 중력과 뜨거운 열 압력, 두 힘이 서로 끈질기게 힘 겨루기를 하는 아주 치열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원자핵은 모두 +의 전하를 띠는 양성자로 이루어져 있다. 같은 +를 띠는 양성자, 원자핵끼리는 원래 서로 밀어내기만 한다. 그래서 단순히 원자핵 여러 개를 모아놓으면 융합되지 않고 그대로 튕겨 날아간다. 하지만 별의 중심으로 가면 상황이 달라진다. 천만 도를 넘는 뜨거운 온도에 원자핵들이 아주 높은 밀도로 바글바글 채워져 있다. 뜨겁게 달궈진 원자핵들이 아주 빠르게 움직이며, 높은 밀도로 인해 수시로 부딪히는 일이 잦아진다(흡사 9호선 지옥철과 같은 상황). 그래서 평소라면 서로 융합하지 않았을 원자핵들이 빠르게 맞부딪히면서 전기적 척력의 벽을 뚫고 더 큰 원자핵으로 융합하는 마법이 벌어진다.
특히 태양과 같은 별은 대부분 수소로 이루어져 있다. 태양의 중심은 온도가 1500만 도 수준에 이른다. 이런 엄청난 온도와 높은 밀도 덕분에 태양 중심 핵에서는 가벼운 수소 원자핵 4개가 반죽되어 더 큰 헬륨 원자핵으로 융합하는 수소 핵융합이 활발하게 벌어진다. 다만 재밌게도 따로 노는 수소 원자핵 4개의 질량을 합한 것에 비해, 이들을 모아 하나로 뭉친 헬륨 원자핵 하나의 질량은 아주 살짝 가벼워진다. 이 가벼워진 질량 손실이 에너지로 전환되는데, 이때 바로 그 유명한 아인슈타인의 공식 E=mc^2이 적용된다. 광속 c는 30만 km/s다. 이 엄청나게 큰 값을 줄어든 질량 차이에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제곱한 만큼이 별을 빛나게 하는 에너지로 전환된다. 그렇기에 별은 오랜 세월 엄청난 에너지로 밝게 빛나게 된다.
하지만 태양 중심을 벗어난 바깥 층의 수소들은 처음에는 핵융합에 쓰이지 않는다. 정중앙에서 외곽으로 벗어나면서 태양 내부의 온도가 빠르게 미지근해지기 때문이다. 그만큼 핵융합의 효율도 줄어든다. 재밌게도 사실 태양 중심에서 실제 수소 핵융합에 쓰이는 수소 핵의 부피는 태양 전체 부피에 비하면 1%밖에 안된다. 아주 좁은 부피를 차지한다. 하지만 워낙 중심의 밀도가 높다보니, 이 작은 크기의 핵이 차지하는 질량은 태양 전체 질량의 약 35%까지 커진다.
태양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중심의 높은 밀도로 뭉쳐 있던 수소 땔감들은 빠르게 헬륨 찌꺼기로 대체된다. 그리고 태양 중심에는 서서히 수소 핵이 아닌 헬륨 핵이 쌓이기 시작한다. 그런데 헬륨 원자핵은 더 많은 수의 양성자로 이루어져 있다. 그만큼 헬륨 원자핵끼리 서로 밀어내는 정도는 수소 원자핵보다 훨씬 강하다. 이 붙임성 없는 헬륨 원자핵을 다시 융합하려면 수소 핵융합 때보다 훨씬 뜨거운 온도가 필요하다. 천만 도 수준의 온도로는 부족하다. 결국 한동안 수소 땔감이 고갈되어가는 태양 중심에는 ‘타지 않는 쓰레기’ 헬륨 핵만 차곡차곡 덩치를 키워갈 뿐이다.
그러다가 태양 중심에 헬륨 핵이 너무 지나치게 커지고, 중심에 태울 만한 수소 재료가 모두 고갈되면 태양의 수소 핵융합 엔진의 불씨는 서서히 꺼지기 시작한다. 이전까지는 핵융합 엔진이 만들어낸 뜨거운 열 덕분에 별 자체를 붕괴시키려고 하는 중력에 대항해서 별이 크기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엔진이 꺼지면? 이제 더 이상 중력에 대항해 버틸 압력이 없다. 정역학 평형이 깨진다. 결국 더 강해진 중력에 의해 엔진이 꺼져버린 태양 중심의 헬륨 찌꺼기 핵은 다시 수축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수축은 곧 온도 상승으로 이어진다. 부피가 작아지면서 넓은 공간에 퍼져 있던 열이 좁은 공간에 집중되어 온도가 빠르게 올라간다. 그러면서 중심 헬륨 핵 주변의 온도를 다시 뜨겁게 올린다. 핵융합 엔진이 잠시 꺼지면서 천만 도 아래로 식어버렸던 태양 중심부 온도는 다시 천만 도 이상으로 달궈진다. 이 온도를 넘기면 수소 원자핵들을 모아서 헬륨 원자핵을 만드는 핵융합을 재개할 수 있다.
다만 이번엔 수소 핵융합이 벌어지는 영역이 이전과 다르다. 처음에는 단순히 태양 중심 1% 부피밖에 안 되는 비좁은 정중앙 핵에서만 수소 핵융합이 벌어졌다. 하지만 이젠 그 사이 중심에 더 이상 태울 수 없는 헬륨 찌꺼기 핵이 쌓였다. 대신 이제 태양은 그 헬륨 핵을 감싸고 있는 바깥 수소 껍질 층 속의 수소를 다시 핵융합 엔진의 땔감으로 사용한다.
헬륨 핵을 감싸고 있는 수소 껍질 층은 가장 처음에 있었던 비좁은 수소 핵에 비해 훨씬 부피가 크다. 그만큼 수소 껍질 층이 만들어내는 열은 더 증가한다. 잠시 멈췄던 핵융합 엔진으로 인해, 중력에 의해 태양 중심 핵이 잠시 쭈그러들었지만, 이번엔 원래보다 오히려 더 막대한 열 압력이 바깥으로 별을 밀어내며 별을 팽창시킨다. 그 결과 태양은 원래보다 더 크게 부풀어오른다. 별의 부피가 팽창하면서 동시에 표면 온도는 미지근하게 식게 된다. 그래서 크게 부푼 미래의 태양은 비교적 미지근한 표면온도를 갖는 붉은 빛의 별이 된다.
현재 우리 태양의 질량을 봤을 때 앞으로 약 50억~70억 년 뒤엔 지구와 화성 궤도 사이까지 크게 부풀어오를 것으로 추정된다. 그때가 되면 차례대로 수성, 금성, 지구까지 크게 부푼 태양의 표면 속에 호로록 집어삼켜져 죽기 직전 태양의 일부가 될 것이다.
#지구의 최후와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는 현장
이번에 새로 발견된, 지구의 50억 년 뒤 미래가 똑같이 벌어지고 있는 종말의 현장은 어떻게 발견했을까? 어떤 모습일까?
천문학자들은 미국 캘리포니아 팔로마 천문대에 있는 망원경 ZTF(Zwicky Transient Facility)를 통해 하늘에서 수시간 사이에 빠르게 벌어지는 급격한 현상을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태양과 같은 별이 죽기 직전, 곁에 있는 또 다른 별에게 물질을 빼앗아 먹으면서 잠시 밝아지며 터졌다가 빠르게 어두워지는 신성과 같은 현상을 찾았다. 그러다 독수리자리 방향으로 약 1만 광년 떨어진 별 ZTF SLRN-2020이 갑자기 밝아졌다가 사라지는 것을 포착했다.
처음엔 흔하게 관측되는 평범한 신성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보통 곁에 있는 다른 별에게서 백색왜성이 물질을 빼앗아먹으면서 밝게 터지는 신성은 원래 밝기의 1만~10만 배 이상 아주 밝은 섬광을 남긴다. 그런데 이 신성은 고작 200배 정도만 살짝 밝아졌다 빠르게 어두워졌다. 평범한 신성이라기엔 다소 약한 섬광이었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빠르게 다른 망원경들의 관측 데이터를 뒤졌다. 우선 가장 거대한 지상 망원경 중 하나인 켁 망원경의 관측 데이터를 확인했다. 보통 평범한 밝은 신성의 경우, 곁에 있는 다른 별에게서 빼앗아온 뜨거운 가스 물질이 폭발 후 남은 백색왜성을 감싸고 있다. 따라서 곁에 있는 별에게서 빼앗아온 뜨거운 가스 물질 성분도 함께 확인된다. 그런데 켁 망원경 관측에 따르면, 이 희미한 신성에서는 일반적인 뜨거운 가스 구름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훨씬 미지근한 가스 먼지 구름이 별을 에워싼 것처럼 보였다. 대체 이건 무엇일까?
더 정확히 분석하기 위해 천문학자들은 적외선 우주 망원경 WISE를 활용했다. (2009년에 발사된 이 망원경의 원래 이름은 WISE였으나, 이후 지구를 위협하는 소행성을 감시하는 새로운 미션을 함께 수행하게되면서 NEOWISE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적외선은 비교적 낮은 온도로 미지근하게 달궈진 먼지 구름이 방출하는 빛이다. 실제로 이 별은 유독 적외선 영역에서 조금 더 밝게 빛났다. 별을 에워싼 것이 뜨거운 가스 구름이 아닌 미지근한 먼지 구름이라는 얘기다.
이곳에서 벌어진 일은 다음과 같다. 별 곁에 목성 정도의 덩치 큰 가스 행성이 맴돌고 있었다. 이 행성은 태양에서 수성까지보다 훨씬 짧은 거리에서 별 곁에 바짝 붙어 궤도를 돌았다. 공전 주기는 약 10일로 추정된다. 그런데 중심의 별도 서서히 핵융합 재료가 소진되면서 크기가 부풀었다. 별의 크기는 서서히 그 곁을 도는 행성의 궤도까지 다다랐다. 별 외곽의 가스 입자들이 곁을 도는 행성 궤도를 가로막으면서 마찰로 인해 행성은 조금씩 속도가 느려지고, 행성의 궤도도 별 표면을 향해 안쪽으로 작아졌다. 결국 행성은 빠르게 나선을 그리며 별 표면에 삼켜졌다.
한편 행성은 별 표면 쪽으로 끌려가면서, 동시에 행성의 중력으로 인해 거대하게 부푼 별 표면 외곽의 가스 물질을 별 바깥으로 잡아당기기도 한다. 그렇게 끌려나온 별 표면의 가스 물질들은 우주 공간에서 빠르게 식으면서 더 미지근한 먼지 입자로 굳는다. 행성이 나선을 그리면서 별 표면으로 끌려가는 동안, 행성의 중력에 의해 바깥으로 빨려나온 먼지 입자들의 띠 역시 나선을 그리며 별 곁에 퍼진다. 이렇게 퍼져나온 먼지 입자들은 행성과 마찰을 일으키며 행성의 속도를 더 늦추고, 행성은 더 빠르게 별 표면으로 빨려들어간다. 그렇게 행성은 별 바로 앞에서 막대한 중력으로 인해 으스러지며 별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이 행성이 별에 잡아먹히면서 별 자체의 크기도 네 배 더 부푼 것으로 보인다. 별이 살짝 더 커지면서 동시에 별 자체의 밝기도 약 100~200배 더 밝아졌다. 천문학자들이 바로 그 순간을 포착했던 것이다. 말 그대로 행성이 거대한 별의 뱃속으로 쏙 들어가는 순간이다.
지구로부터 약 1만 광년 떨어진 별 ZTF SLRN-2020. 지금으로부터 약 만 년 전 이곳에서 또 하나의 세상이 사라졌다. 그리고 앞으로 50억 년 뒤 그와 비슷한 순간이 지구에도 찾아올 것이다. 중심 별이 서서히 부풀어오르면서 우리에게 찾아올 최후의 순간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기다릴 수밖에 없는 순간이 올 것이다. 부디 만 년 전의 그 별 곁에 아무도 없었길, 그리고 50억 년 뒤의 인류도 이미 더 아름다운 곳으로 떠나 있길 바랄 뿐이다.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