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해 많은 사람이 갖고 있는 편견이 있다. 가해자는 무조건 나이 많은 꼰대에 성별은 남성, 그리고 처음부터 작정하고 성희롱을 일삼는 인성이 아주 글러 먹은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런데 의외로 가해자의 연령은 신입사원에서부터 팀부장급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이 넓고 여성이 가해자인 경우나 동성 간에도 종종 나타나고 있으며 성희롱 가해자들은 피해자들이 신고하기 전까지 그 심각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다루기 애매하고 안타까운 성희롱 사건은 바로 미혼인 동료간에 있었던 ‘사내연애, 혹은 썸’에서 비롯되는 경우다. A는 옆 부서에 근무하는 2살 연상의 신입사원 B와 업무상 교류가 잦아지면서 전화나 사내메신저를 자주 주고받게 되었다. 나이는 어리지만 입사 연도나 근무 경력으로 따지면 본인이 더 선배인지라 처음에는 업무에 유용한 팁을 주거나 참고가 될 만한 보고서를 공유하곤 했는데, B가 이에 대한 보답이라며 점심을 함께하자고 권하거나 책상 위에 커피나 간식을 두고 가는 등의 행위를 하면서 점차 친밀한 사이가 되었다.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고 둘 다 사회초년생이다 보니 각자의 피땀 어린 회사생활 적응담, 마음에 들지 않는 상사나 선배의 뒷담화 등을 수시로 주고받으면서 메신저상의 대화 내용은 공과 사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연차가 비슷한 동료들과 몇 번, 그리고 단둘이서도 두세 번쯤 퇴근 후 술자리를 한 이후에는 사내 메신저뿐 아니라 개인 카톡을 할 정도로 관계가 급속히 가까워졌다.
그런데 어느 날 A가 B를 피신고인으로 하는 직장 내 성희롱 및 성추행 신고서를 들고 인사팀을 찾아왔다. 술자리에서 B가 자신에게 어깨동무를 하거나 손을 잡고, 더 나아가 포옹을 하는 등 과한 스킨십을 했고 이에 대해 상당한 불쾌감을 느꼈다는 것이었다. 또한 그동안 B가 개인톡으로 밤늦은 시간에 연락하며 ‘주말인데 내일 뭐 하냐, 여친이 없으니 외롭다’는 등 듣기 거북한 성희롱적인 발언을 일삼았다며 이에 대한 증빙자료로 B와 주고받은 대화 내용을 제출했다. A가 제출한 자료 속의 B는 실제로 직장 동료 사이에 주고받기에는 과한 내용의 톡을 지속적으로 보내고 있었다.
조사를 위해 면담을 진행하는 내내 B의 얼굴은 그야말로 사색이 되었다. A가 성추행이라고 신고한 행위는 단둘이 있던 자리에서 벌어졌던 일이기에 목격자가 없어 사실확인이 어려울 것이라 예상했던 바와 달리 B는 처음부터 행위를 전부 인정했다. 다만 자신은 지난 몇 개월 동안 A와 썸을 타는 관계였고 그날 또한 서로 간에 마음이 있음을 확인하고 상호 동의하에 했던 행위이기 때문에 절대로 성추행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B는 면담 직후 A에게 ‘갑자기 무슨 일이냐, 내가 잘못한 게 있으면 만나서 따로 이야기하자’며 톡을 보냈는데 A는 이 또한 자신에 대한 2차 가해라며 B와의 분리와 유급휴가를 추가로 청구해 왔다.
B는 노무대리인까지 선임하며 A와 주고받았던 모든 대화를 갈무리하여 제출하고 두 사람 사이에 쌍방간의 감정이 분명히 존재했다며 적극 소명했으나, 친한 동료 사이였을 뿐이라는 A와의 입장차이만 명확해질 뿐이었다. 실제 고용노동부에서 발행한 직장 내 성희롱 지침서에도 ‘상호 간의 우정이나 이끌림을 기반으로 한 교제’의 경우에는 직장 내 성희롱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나온다. 그러나 애매모호한 ‘썸’ 상태의 남녀가 어느 일방의 주장만으로 실제 교제하는 사이였음을 입증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다.
두 사람 사이에 실제 스파크가 있었는데 어떤 일을 계기로 A가 갑자기 마음을 돌렸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A 또한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기보단 썸타는 관계를 내심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여 B가 착각하게끔 행동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친한 직장 동료 사이에 퇴근 후 몇 번 사적인 만남을 가졌다고 해서, 혹은 친밀하게 카톡을 주고받는다고 해서 함부로 스킨십을 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나 성적인 언동이나 가벼운 플러팅을 넘어서 의사에 반하는 신체접촉 행위로 상대방이 성적 수치심이나 모멸감을 느꼈다면 남녀고용평등법상의 ‘직장 내 성희롱’ 뿐 아니라 형법상 ‘강제추행’에도 해당할 수 있으므로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가벼운 포옹이나 터치 한 번으로도 신고인 의사에 따라 사내 징계위원회에 회부될 수 있으며 성희롱을 넘어서 신체접촉이 포함된 성추행은 대부분의 회사에서 최소 정직 이상의 중징계 감이다. (회사에서는 중징계로 끝날지 모르나 행여 경찰서까지 간다면 합의금이 수천만 원 깨질 수도 있다) 아무리 남성 입장에서 ‘나는 진심이었다’ 고 호소할지라도 행위의 면죄부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니 제발 직장동료의 사소한 호의나 친절함을 나에 대한 호감이나 썸으로 착각하지 않길 바란다.
김진 HR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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