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정부가 분양 아파트에 대한 실거주 의무 폐지를 주요 정책 과제로 내세운 가운데 국회에서 관련 법안 개정 논의가 난항을 겪고 있다. 거주 이전의 자유를 높이고 위축된 신축 임대 주택 공급을 활성화하겠다는 취지인데, 일각에서는 정책 일관성과 집값 상승에 대한 우려가 만만치 않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10일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분양 아파트 실거주 의무 폐지를 골자로 한 주택법 개정안을 심사할 계획이었지만 이를 보류했다. 전세 사기 피해에 대한 우려가 확산하면서 관련 법안 심사 필요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앞서 법안심사소위는 4월 26일 실거주 의무 폐지 관련 논의를 진행했지만 여야가 합의점을 찾지 못해 심사를 한 차례 미뤘다. 이 개정안은 올해 2월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 등 11인이 발의한 이후 3개월째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다.
분양 아파트 실거주 의무 폐지는 올해 초 정부 정책과제로 등장했다. 국토교통부는 1월 주요 정책과제를 발표하는 업무보고 자리에서 수도권 분양가 상한제 주택과 공공재개발 일반분양분에 대한 실거주 의무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주택법 개정을 통해 실거주 의무가 기존에 부과된 경우에도 개정 법률을 소급해 적용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분양 아파트의 실거주 의무 폐지는 전매 제한 완화와 함께 추진됐다. 정부는 4월 주택법 시행령을 개정해 최대 10년까지 적용됐던 수도권 전매제한 기간을 공공택지·규제지역 3년, 과밀억제권역 1년, 기타 6개월 수준으로 완화했다. 비수도권 공공택지·규제지역은 1년, 광역시 도시지역은 6개월로 완화하고, 그 외 지역은 전면 폐지했다. 하지만 전매 제한 완화에도 실거주 의무 때문에 전매를 할 수 없는 단지가 다수 있었다.
국토교통부는 “(분양 아파트 실거주 의무가) 거주 이전을 제약해 국민 불편을 초래하고 수요가 많은 신축 임대 공급을 위축시킨다는 지적 등이 제기됐다”며 실거주 의무 폐지를 추진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실거주 의무 폐지가 논의가 시작된 데에는 부동산 침체 국면도 한몫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전국 미분양주택은 3월 기준 7만 2104호로 전월 대비 4%(3334호) 줄었다. 미분양주택이 감소세로 돌아선 것은 1년 6개월 만이다. 2021년 9월까지 감소세를 보이던 미분양주택 물량은 같은 해 10월 반등해 올해 2월까지 무려 445%(6만 1596호)가량 증가했다.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유경준 의원은 “분양가상한제 주택에 대한 실거주의무 폐지는 현재 분양시장이 위축한 상황을 고려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많은 국민들이 직업이나 교육문제로 실거주가 어려운 경우가 다반사임을 감안할 때 과도한 재산권 침해라고 판단하여 법안을 발의했다"고 전했다.
이현석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분양 아파트 실거주 의무와 전매 제한은 집값이 천정부지로 올랐을 때 규제책 중 하나로 발표됐다. 부동산 시장이 여전히 침체 국면에 있기 때문에 이 같은 규제는 없애야 한다. 취약 계층의 주거 문제는 공공이 상당 부분 책임져야 하지만, 중산층 가구의 집 문제는 시장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반면 실거주 의무 폐지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26일 열린 법안심사소위에서 “지금 부동산시장이 얼어붙어 있지만 완화한 규제가 이후 상승국면에서 또 다른 집값 폭등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은 이런식으로 계속 상승해 왔는데, 이것을 계속 반복할 것이냐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고 지적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신축 아파트 분양 물량은 우리 사회적으로 굉장히 희소한 자원이다. 우리 사회는 이 물량을 실제 거주 목적이 있는 사람에게 배분하도록 합의를 하고 법률을 정했다. 사회적 합의를 숙고의 과정 없이 정부의 정책과제로 내세우고 추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의견을 밝혔다.
차형조 기자
cha6919@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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