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비즈니스 법률’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지식재산권법은 ‘표현’을 보호하는 법이지 아이디어를 보호하는 법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과거에는 누군가 “아이디어를 빼앗겨 억울하다”라고 호소해도 법을 공부했다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다”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당시에도 영업 방법(BM) 특허, 영업비밀 조항 등으로 권리의 외연을 확장하거나 새로운 개념을 도입해 아이디어를 보호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대부분 원칙에 대한 예외로서 의미를 갖거나, 성립요건이 너무 까다로워 권리주장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사람들의 권리의식이 높아지면서 경쟁력의 원천은 부동산 등 자산이 아니라 지식 자체로 여겨진다. 요즘 아이디어-표현 이분법을 되풀이하거나, 법이 없으니 어찌할 방도가 없다고 답하면 매우 무성의한 태도로 비칠 수 있다. 그만큼 아이디어 침탈에 관한 분쟁도 증가했다. 필자가 상담이나 사건 수임 등을 통해 겪은 사례를 분석해보자.
사례 1. 스타트업은 아이디어는 있으나 이를 실현할 수단이 부족하다. 어느 스타트업은 대기업과 제휴를 맺고 협업하기 위해 A 대기업에 프레젠테이션했는데, A 대기업은 이를 탈취해 동일한 내용의 서비스를 독자적으로 출시했다.
사례 2. 국내 중소기업은 대부분 대기업의 하청업체다. 대기업은 공정개선, AS 등의 명목으로 도면 등 기술 자료를 요구하는데, 하청업체에 불과한 중소기업이 그런 요구를 거절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B 중소기업으로부터 기술 자료를 입수한 C 대기업은 이를 D 업체에 제공(유용)해 더 저렴한 가격으로 부품을 제작·납품하도록 주문(발주)했다.
사례 3. 의류 온라인 쇼핑몰의 경우 쇼핑몰에 게시된 모델의 사진과 코디·스타일링이 매우 중요하다. 소비자가 제품을 눈으로 확인해 구매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쇼핑몰에 게시한 사진을 보고 구매 여부를 결정하므로, 사진 자체가 온라인 쇼핑몰의 경쟁력이 된다.
E 온라인 쇼핑몰은 F 온라인 쇼핑몰의 코디와 스타일링 등 콘셉트를 그대로 따라 했다. 대신 저작권 침해 시비를 피하고자 옷의 배치나 색상에는 차이를 뒀다. 그러나 일반 소비자가 봤을 때 E 쇼핑몰과 F 쇼핑몰의 콘셉트가 동일해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사례 4. 보통 가구는 저작권, 디자인권 등의 보호를 받기 어려운 품목으로 여겨져 왔다. 예를 들어 책상은 3~4개의 다리가 있고, 다리 위에 놓인 평평한 판으로 구성돼 있다. 이처럼 가구는 개념적으로 유형화가 이뤄져 있기 때문에 특정 가구만이 갖는 독특한 차별성, 창작성을 주장하기가 쉽지 않다. 정책적으로도 창작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특정 가구 디자인에 대한 독점권을 부여한다면 가구 산업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G 사는 이 같은 주장을 하면서 H 사의 책장을 그대로 똑같이 따라 만들었다. 두 제품은 외관상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이에 H 사는 G 사에 카피 제품 출시를 항의했지만, G 사는 가구에 독자적인 창작성이 인정될 여지가 없으므로 제품 출시는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앞선 사례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특별히 문제가 되지 않을 사안이었다. 사례 모두 분쟁의 대상인 프레젠테이션·도면 등 기술자료, 쇼핑몰의 콘셉트, 가구 외형 등을 외부에 표현된 형식이라기보다 아이디어로 여겨졌고, 표현 형식이라고 해도 독자적인 창작성·개성을 인정받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고양된 권리의식, 무형의 아이디어를 경쟁력의 원천으로 인정하는 대중, 대중의 인식에 기초한 법 개정, 법원의 판결 사례 등의 변화 때문이다. 대놓고 앞선 사례와 같은 행위를 할 경우 대중의 비난이나 법적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법적으로 보면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사례 1을 따져보자.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차목은 “사업 제안·입찰·공모 등의 거래 교섭 또는 거래 과정에서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타인의 기술적 또는 영업상의 아이디어가 포함된 정보를 그 제공목적에 위반해 자신 또는 제삼자의 영업상 이익을 위해 부정하게 사용하거나 타인에게 제공해 사용하게 하는 행위. 다만 아이디어를 제공받은 자가 제공받을 당시 그 아이디어를 알고 있었거나, 아이디어가 동종 업계에서 널리 알려진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대기업 A가 중소기업 B로부터 전달받은 기술 프레젠테이션 내용을 B 사의 동의 없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부정하게 사용할 경우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으로 민형사상 책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사례 2는 어떨까. 하도급법 제12조의 3 제4항은 원사업자는 취득한 수급사업자의 기술 자료를 부당하게 자기 또는 제삼자를 위해 사용하거나 제삼자에게 제공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고, 하도급법은 이를 위반한 원사업자에 대해 시정명령·과징금 등의 행정제재와 형사처벌 등을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대기업 A가 협력업체를 통제하거나 단가 인하의 방편으로 삼기 위해 협력업체의 기술 자료를 함부로 사용할 경우 하도급법 위반 문제가 발생한다.
사례 3에 대한 판결은 이렇다. 대법원 2020. 2. 13. 선고 2015다225967 판결에 따르면 원고는 자신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사용할 이미지를 제작하면서 해외 유명인의 사진을 선정하고, 그와 유사한 신체적 특징을 가진 모델을 고용해 자신의 의류를 입혀 사진을 찍고 이를 다시 해외 유명인의 사진에 합성하는 등의 작업을 해왔다. 피고는 1년 반 이상 원고가 제작한 이미지를 복제하거나 모방했다. 법원은 이 사안에서 피고의 이미지 복제와 모방으로 원고의 보호 가치 있는 영업상 이익을 침해했다고 보아, 피고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위 판결에 비춰 보면 E 쇼핑몰이 F 쇼핑몰의 사진을 따라 하면서 옷의 배치나 색상에 약간의 차이를 줬다고 하더라도, 콘셉트 모방으로 소비자가 쇼핑몰의 영업 주체를 혼동할 정도라면 E 사의 모방은 민법상 불법행위에 해당하고, 더 나아가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파목에 위반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사례 4에 대한 판결은 다음과 같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21카합21798 결정은 채무자 제품(책장)이 채권자 제품의 형태를 모방해 실질적으로 동일한 형태로 만들었음이 소명되므로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자목에 근거한 피보전권리가 인정된다는 이유로 채권자의 판매금지 가처분을 인용한 바가 있다.
이에 따르면 공산품 가구라고 해도 G 사가 H 사의 제품을 동일하게 모방해 제작(데드카피)했다면, 제품 내 창작성 유무와 무관하게 G 사는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의 책임을 질 수 있다.
분쟁은 사실관계나 입증 여부 등에 따라 천차만별로 결론이 나므로, 어떤 행위가 반드시 법적 책임을 질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위와 같은 내용을 보면 아이디어 차용에 불과하니 법적 분쟁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주장은 이제 틀린 말이 됐다. 이는 최근에 나타난 현상인데, 불과 수년 만에 급변하는 모습이 신기하기만 하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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