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난 글에서는 천문학자들이 어떻게 암흑 물질이란 미지의 존재를 추정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역사를 소개했다. 오늘은 암흑 물질을 대체하고자 등장한 아주 신박한 이론, 수정 뉴턴 역학(MOND, Modified Newtonian Dynamics) 가설을 낱낱이 파헤쳐본다.
암흑 물질의 대체 이론으로 한때 각광 받았던 MOND 가설을 소개한다.
MOND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대부분의 중력은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을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으로 표현되는 중력 법칙에서 중력이 아주 약한 세계에서 적용되는 근사치일 뿐이다. 지구에선 워낙 상대성 이론의 효과가 미미하기 때문에 단순한 뉴턴의 방식만으로도 충분히 물체의 운동을 묘사할 수 있다. 그러나 블랙홀 바로 옆처럼 중력이 훨씬 강하게 작용하는 곳에선 상대성 이론의 효과도 두드러지기 때문에 더 이상 뉴턴의 방식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그렇다면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지 않을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지구의 중력보다 훨씬 강한 중력이 작용하는 곳까지를 아우르는 보편적인 원리라면, 반대로 지구보다 중력이 훨씬 더 약한 세계를 아우르는 반대 방향의 보편적인 중력 원리도 있는 건 아닐까?
다시 말하자면 지구에서 경험하는 뉴턴 방식의 만유인력 법칙은 더 보편적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에서 중력의 세기가 약할 때에 해당하는 근사치다. 그렇다면 반대로 지구의 뉴턴 법칙은 훨씬 약한 스케일의 중력까지 아우르는 또 다른 보편적인 원리에서 비교적 중력의 세기가 강할 때에 해당하는 근사치일 수 있지 않을까?
이를테면 태양계를 벗어나 우리 은하 가장자리처럼 아주 먼 거리라면 중력은 단순히 거리 제곱에 반비례해서 빠르게 약해질 것이다. 그런데 만약 태양계 스케일 정도까지는 거리 제곱에 반비례해서 중력이 약해지다가, 계속 멀리 벗어나다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거리 제곱이 아니라 거리에 반비례해서 중력이 약해지는 식으로 변할 수도 있지 않을까?
만약 이런 식의 변화가 가능하다면, 암흑 물질의 가장 유력한 관측 증거 중 하나인 은하 외곽을 빠르게 맴도는 별들의 움직임이 쉽게 설명된다. 대부분 은하 속 빛의 분포는 은하 중심에 밀집되어 있다. 따라서 은하의 별 질량 역시 대부분 은하 중심부에 몰려 있을 것이다. 은하 외곽으로 벗어나면 별을 붙잡고 있는 은하의 전체 중력은 은하 중심으로부터의 거리 제곱에 반비례해서 빠르게 약해져야 할 것이다.
천문학자들은 이 단순한 예측을 통해 은하 외곽의 별들은 은하 중심부 별들에 비해 은하 전체로부터 받는 중력이 약하기 때문에 더 느린 속도로 돌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 관측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은하 외곽의 별도 은하 중심부 별 못지않게 빠르게 움직였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은하 외곽까지 겉보기보다 훨씬 많은 질량이 고르게 퍼져 있어야 한다고 추정했고, 이 질량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암흑 물질을 가정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은하 외곽에서 중력이 작용하는 효율이 생각보다 더 강하다면? 즉 은하 중심부처럼 중력이 강한 곳에서는 거리 제곱에 반비례해서 중력의 효과가 빠르게 약해지지만, 은하 외곽처럼 중력이 더 약한 곳에서는 거리 제곱이 아니라 거리에 반비례해서 좀 더 천천히 중력이 약해진다면 어떨까? 그럴 경우 은하 외곽의 별들은 기존에 예상한 것보다 은하 전체가 가하는 중력에 더 강하게 붙잡혀 있을 것이다. 별들이 은하 외곽에서 빠른 속도로 도는 것을 암흑 물질 없이도 설명이 가능해진다. 중력이 훨씬 약한 세계에서는 중력이 작용하는 효율이 달라질 수 있고 뉴턴 방식만으로 예상했던 것보다는 중력의 효과가 좀 더 강할 수 있다는, 이 내용이 수정 뉴턴 역학(MOND)의 본질이다.
MOND 가설은 지금까지 관측된 다양한 은하 속 별들의 움직임을 꽤 잘 설명했다. 한동안 암흑 물질을 대체할 새로운 중력 이론으로 주목 받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천문학자들이 수정 뉴턴 역학은 단순히 파라미터 끼워 맞추기에 불과하다는 반론을 제기한다. 실제로 MOND 가설은 우주에 있는 모든 은하 속 빠른 별들의 움직임을 단 하나의 통일된 파라미터(매개변수)만으로 설명하는 게 아니라, 은하마다 조금씩 다른 파라미터를 요구한다는 결과도 있다. 이런 한계로 인해 강한 중력의 세계로 확장되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이어 약한 중력의 세계로도 확장되는 또 다른 보편적인 중력 원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MOND 가설을 더 확실하게 입증할 새로운 관측 증거는 없을까? MOND 가설의 핵심은 아주 먼 거리에 떨어진 두 물체가 주고받는 아주 약한 중력의 스케일에서, 기존 뉴턴 법칙으로 예상한 것보다 조금 더 강한 중력이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주 멀리 떨어진 주변 은하들에 의한 중력의 효과 역시 생각보다 조금 더 강할 수 있다.
만약 어떤 은하가 이웃 은하가 하나도 없이 텅 빈 공간에 홀로 있다면 이 은하 속의 별들은 오직 그 은하 자체의 중력에만 붙잡힌 채 궤도를 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 은하 주변에 멀찍이 이웃한 은하들이 몇 개 있다면, 이 은하 속 별은 자신을 안쪽으로 끌어당기는 은하 자체의 중력뿐 아니라 바깥에서 잡아당기는 외부 은하들의 중력 효과까지 함께 받을 것이다. 이는 별들의 속도에도 영향을 준다. 이렇게 외부 은하들의 중력 효과가 생각보다 더 강하게 작용하는 현상을 ‘외부 장 효과(External Field Effect, EFE)’라고 부른다.
은하 중심 쪽으로 당기는 강한 중력에만 오롯이 붙잡혀 있다면 그 별은 이를 구심력 삼아 빠른 속도로 은하 가장자리를 맴돌 수 있다. 그런데 외부 은하들이 바깥쪽으로 잡아당기는 효과가 더해진다면, 그만큼 은하 중심부를 향한 별의 구심력은 약해지고 속도도 느려지게 된다. 결국 주변에 은하가 없는 텅 빈 공간의 은하에 있는 별들은 은하 외곽까지 빠른 속도를 유지하며 돌게 되지만, 이웃한 은하가 많아 밀도 높은 환경에 있는 은하 속의 별들은 은하 외곽에서 좀 더 느린 속도로 돌아야 한다. 따라서 이웃 은하가 거의 없는 텅 빈 환경과, 이웃 은하가 바글바글한 환경에 놓인 은하의 별들의 속도 분포만 통계적으로 비교해본다면 정말 MOND 가설이 주장하는 EFE가 벌어지는지를 검증할 수 있다.
최근 실제 관측 데이터를 통해 EFE로 의심되는 차이를 입증한 흥미로운 연구가 있다. 천문학자들은 회전하고 있는 은하 153개를 비교했다. 이 중에는 이웃한 은하가 거의 없는 독립된 은하들도 있고, 주변에 은하가 많은 은하들도 있다. 비교 결과 독립된 은하들은 은하 중심부터 외곽으로 가도 별들이 계속 빠른 속도를 유지하는 평평한 속도 분포를 보인 반면 주변에 은하가 많은 은하들에선 은하 외곽으로 가면서 별들의 속도가 더 빠르게 느려지는 분포를 보였다. 천문학자들은 이것이 아주 멀리 떨어진 외부 은하들의 중력 효과가 기존 뉴턴 법칙으로 예상한 것보다 훨씬 강하게 작용한다는 EFE의 증거, 즉 MOND 가설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된다고 주장했다.
그간 단순한 수학적 유희 수준에 머무르던 MOND 가설을 실제 관측적 증거로 입증한 아주 놀라운 시도다. 하지만 이것으로 암흑 물질 이론이 부정되었다고 해석하는 건 아직은 무리다. 지난 수십 년간 암흑 물질의 존재를 보여주는 증거들이 켜켜이 쌓였다. 수천만 개가 넘는 멀고 가까운 다양한 은하들이 모두 일관되게 암흑 물질 이론의 손을 들어준다. 이번 발견은 아주 흥미로운 결과를 품고 있지만 아직은 153개 은하만으로 분석한 작은 증거의 파편이다. 물론 이 파편이 더 거대한 새로운 빙산의 일각일 가능성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MOND주의자들의 노력에도 아직은 주류 천문학계에서 MOND가 크게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21세기가 되면서 MOND 가설이 넘지 못한 새로운 벽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암흑 물질을 지지하는 또 다른 견고한 증거들, 즉 은하단의 중력 렌즈, 빅뱅이 남긴 흔적, 우주 배경 복사가 관측되기 시작한 것. MOND 가설로 쉽게 종지부를 찍을 줄 알았던 암흑 물질 전쟁은 또 다시 새로운 더 긴 싸움으로 흘러가게 됐다.
참고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3847/1538-4357/abbb96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3847/1538-4357/ac93fc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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