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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약방문'이라도…가상자산보호법, 무법시장 바로 세울까

시세 조종 시 집단소송 가능, 불공정 거래행위 처벌 조항 마련…상장 규정은 부대 의견으로 명시

2023.05.05(Fri) 08:00:00

[비즈한국] 무법지대에서 크던 가상자산 시장이 법망 안으로 들어올 날이 머지않았다. 최근 국회가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를 골자로 한 법안을 의결했다. 가상자산 범죄로 인한 피해가 5조 원에 달하는 가운데, 이 법안이 과연 시장 질서를 바로잡을지 관심이 모인다.

 

​2022년 12월 가상자산 ‘​위믹스’​ 상장폐지 결정에 반발하고 시위에 나선 투자자들.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 제1소위원회가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를 골자로 하는 법안을 의결했다. 사진=연합뉴스

 

#가상자산 관련법 19건 통합해 1단계 입법 나서

 

수년째 표류하던 가상자산법이 드디어 국회 문턱을 넘었다.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 제1소위원회는 4월 25일 열린 임시회에서 ‘가상자산 불공정거래 규제 및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안(가상자산법)’을 의결했다. 

 

정무위 법안소위는 19건의 가상자산 관련 법률안을 통합해 가상자산법 대안을 의결했다. 가상자산법은 단계적 입법을 거치는데, △가상자산 정의 △이용자 보호 △불공정거래 금지 등을 목적으로 하는 1단계와 △산업 진흥책 △발행·공시 규율 등을 담은 2단계로 나뉜다. 투자자 보호책이 시급한 만큼 1단계 입법을 먼저 추진하고 이후 실질적인 업권법인 2단계를 진행하는 식이다. 의결한 법률안은 향후 정무위원회 전체 회의와 법제사법위의 심사를 거쳐 국회 본회의에서 최종 의결한다.

 

그동안 가상자산은 업권법 없이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전자금융거래법(전금법)’ 등이 적용됐다. 2021년 시행한 특금법 개정안엔 가상자산과 사업자의 범위, 실명 확인 입출금 계좌 발급 등을 규정했지만 투자자 보호보다는 자금세탁 방지에 초점을 맞췄다. 

 

이번에 의결한 1단계 가상자산법에선 가상자산을 ‘분산원장 기술 또는 유사한 기술에 기반해 전자적으로 저장 및 이전될 수 있는 가치 또는 권리를 표시하는 증표’로 정의했다. 가상자산 정의에 ‘한국은행이 발행하는 전자적 형태의 화폐(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와 그와 관련된 서비스’도 포함됐지만 △화폐인 CBDC는 가상자산과 다르다는 점 △CBDC 관련 사업자가 가상자산 규제를 받으면 혼란을 겪는 점 등을 감안해 명시적으로 제외했다. 

 

법안은 투자자 보호를 위해 가상자산 사업자, 즉 거래소의 책임을 강화했다. 법안에 따르면 가상자산 사업자는 이용자의 가상자산 입출금을 정당한 사유 없이 차단할 수 없다. 입출금을 차단하는 경우 사유를 미리 통지해야 하며, 임의로 입출금을 차단했을 때 손해가 생기면 배상해야 한다. 또 해킹, 전산장애 등 사고에 따른 책임을 지기 위해 보험·공제에 가입하거나 준비금을 적립해야 한다. 

 

투자자가 불공정행위로 피해를 본 경우 집단소송을 제기할 근거도 생겼다. 가상자산 매매·거래 과정에서 불공정 거래행위로 인해 다수에게 피해가 발생하면 증권관련 집단소송법과 동일한 요건과 절차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이 가능하다. 

 

가상자산 사업자가 이용자의 가상자산 중 일정 비율 이상을 온라인과 분리해 보관하는 규정도 주목할 만하다. USB 등 온라인에 연결하지 않는 지갑인 ‘콜드월렛’은 해킹이 어려워 보안성이 높은 수단으로 꼽힌다. 설령 해킹으로 자산을 잃더라도 일부는 보호할 수 있는 셈이다. 사업자는 또 예치금을 은행 등에 별도로 예치·신탁해야 한다. 만일 이용자의 예치금과 가상자산을 적법하게 관리하지 않을 경우 최대 1억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가상자산 거래에서 불공정행위를 규정하고 처벌하는 조항도 마련돼 테라·루나 사태와 같은 시세 조작으로 인한 피해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법안은 미공개 중요정보 이용행위, 시세 조종 행위, 부정거래 행위 등을 불공정 거래행위로 명시했다. 불공정행위 적발 시에는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위반 행위로 얻은 이익이나 손실액의 3~5배에 달하는 벌금을 부과한다. 부당이익의 몰수와 추징도 진행한다.

 

가상자산 시장에서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의 권한도 명시했다. 금융위는 가상자산 사업자를 감독하고 업무·재산 상황을 검사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사업자 등이 법을 위반했을 때 시정명령, 경고, 영업 정지, 고발 등의 처분을 할 수 있다. 법을 위반한 임직원의 해임 권고나 정직 요구도 가능하다. 한국은행은 통화 신용 정책, 지급결제제도 운영 등에 필요할 때 가상자산 사업자에게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

 

지난 4월 가상자산 거래소 코인원의 일부 직원이 뒷돈을 받고 국산 코인을 상장시켜준 혐의로 구속됐다. 사진=최준필 기자

 

#범죄 예방 효과 기대…상장 규정은 법제화 못 해

 

이번 가상자산법이 다방면으로 투자자 보호책을 제시했지만, 그동안 법망 밖에서 각종 사고가 발생한 만큼 '사후약방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가상자산 시장은 2017년 비트코인 투자 열풍을 거쳐 2021년 가상자산 투자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관련 범죄와 사고가 급증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7~2021년 사이 발생한 가상자산 범죄의 피해액만 4조 7423억 원에 달했다. 같은 기간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4곳(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에서 발생한 사고는 100여 건에 이르렀다. 가상자산 관련 사고는 최근까지 이어졌다. 지난 4월 강남에서 일어난 납치·살인사건도 ‘퓨리에버 코인(P 코인)’의 자전 거래와 시세 조종으로 인한 투자 실패가 발단이 됐다. 

 

이번 법안에서는 가상자산 사업자에게 자기 발행 가상자산의 거래를 제한하고, 이상 거래 감시와 조치 의무를 부여했다. 시세 조종 제재뿐만 아니라 피해자가 법적으로 구제 받을 길이 열린 것.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가상자산법이 범죄를 예방하는 데 큰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피해자 구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지금까지 가상자산 관련법이 없었기 때문에 ‘깜깜이 매도’가 횡행하지 않았나. 거래소의 이상 감시 보고 의무가 시장 감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법안이 ‘깜깜이 상장’을 규제하는 데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상장에 관한 규정은 공식 의결이 아닌 부대의견에 포함됐기 때문. 가상자산의 상장 기준과 절차는 거래소마다 달라, 사기 코인이나 부실 코인의 상장을 막기 어렵다. 한 거래소에서 상장 폐지한 부실 코인이 다른 거래소에서 단독 상장하는 경우도 흔하다. 실제로 지난 4월 가상자산 거래소 코인원에서 일부 직원이 뒷돈을 받고 부실 코인을 상장했다가 구속돼 자율규제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법안에는 당초 ‘가상자산 사업자가 상장심사 기준과 내부규정을 직접 마련하라’고 명시했으나, 부대의견으로 넘어가며 ‘자율협의기구(DAXA)를 통해 내부통제 방안과 투명한 절차를 마련하는 것’으로 축소됐다. 상장 규정을 법제화하지 못한 건 국내에서 가상화폐공개(ICO)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4월 25일 정무위 법안소위 회의록에 따르면 이 법안을 발의한 김종민 소위원장이 “상장이라는 용어를 법에 도입하는 데 부담이 있다는 점을 수긍한다”라고 하자, 이용우 위원이 “DAXA 내부 자율 통제 등으로 교육한다는 내용의 부대의견을 달자”라고 정리했다. 

 

증권시장에서 한국거래소가 상장 기준을 정하는 만큼, 가상자산 상장도 거래소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갑래 선임연구위원은 “상장 규정은 정부 법령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시장에서 사업자(거래소)의 역할이 중요하다”라며 “차후 2차 입법 단계에서 상장 규정을 정교화할 필요는 있다. 공통 기관이 만들어지면 상장과 관련한 통합 지침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답했다.

심지영 기자

jyshim@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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