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쾌속 질주하던 이차전지주가 금융감독원장의 말 한마디에 멈춰섰다. 이복현 금감원장의 과열 경고에 관련주들이 급락한 것. 이 원장은 지난 25일 임원회의에서 “올해 들어 코스닥을 중심으로 이차전지 등 미래성장 신사업 테마주 투자열풍으로 신용거래가 급증하는 등 주식시장이 이상 과열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하며 “불공정거래 혐의 개연성이 있는 종목들에 대해 조사에 착수해 엄단하는 등 투자자 보호에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이 원장의 발언으로 주가가 급락해 오히려 피해를 봤다는 불만이 새 나왔다. SG(소시에테제네랄)증권발 무더기 하한가 사태로 가뜩이나 투심이 위축된 가운데, 이 원장이 특정 섹터를 언급하면서 시장에 파장을 일으켰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25일 코스닥 이차전지 대장주 에코프로비엠은 전일 대비 6.46% 급락했다. 같은 날 엘앤에프와 금양은 각각 5.4%, 7.39% 내려앉았다.
일각에서는 이 원장의 이번 발언이 정부의 이차전지 지원 약속과 엇박자를 낸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지난 20일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이차전지 국가전략회의’에서 국내 배터리기업과 함께 최첨단 이차전지 기술개발에 오는 2030년까지 20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국가전략을 발표한 바 있다. 이에 개인투자자들은 종목토론방 등을 통해 “금감원장이 경솔한 발언으로 시장을 교란했다”, “주가조작 세력과 악질 공매세력은 잡지 않고 빚투(빚내서 투자)만 지적한다”며 불만을 쏟아냈다.
금융당국은 지난 2021년 하반기부터 ‘과도한 빚투’와 ‘테마주’ 등에 대해 경고해왔으나, 특정 섹터를 언급하며 경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업계에서는 ‘배터리 아저씨’ 박순혁 금양 홍보이사가 주목을 받으면서 뒤늦게 옥석 가리기가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증권가와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 언급되던 인물과 종목이 이차전지 국가전략회의 등 공식석상에서 언급되면서 금융당국의 시선이 이차전지주로 향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시장에서는 손바뀜이 잦았거나 그간 재무상태가 부실했던 기업들을 상대로 금감원이 조사에 착수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이에 최대주주 혹은 재무적투자자를 둘러싸고 의구심이 제기되는 이차전지 관련주들이 언급되며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키웠다. 일례로 지난해 말 기준 1만 8024명의 소액주주(비율 66.64%)가 투자한 지엔원에너지는 당초 지열냉난방시스템 사업을 영위했으나, 지난해 12월 사업목적에 ‘이차전지 소재의 제조 및 판매업’을 추가하고 이차전지 핵심 원료 광물인 리튬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전환사채(CB)를 인수한 투자조합이 초록뱀그룹 등과 함께 무자본 M&A가 의심되는 다수 상장사의 전환사채를 인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았다.
이차전지 관련주로 부각돼 하루 만에 주가가 29.89% 급등했으나, 다음날 공지를 통해 관련 사업을 중단하겠다고 밝힌 곳도 있다. 초록뱀이엔앰은 지난 18일 이차전지 소재 물질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는 풍문에 의해 이차전지 관련주로 분류되며 주가가 급등했다. 그러나 초록뱀이엔엠은 이차전지 관련 생산시설 대부분을 매각한 데다, 지난해 말 기준 화학사업부문에서만 5억 1526만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초록뱀이엔앰은 지난 19일 홈페이지 공지를 통해 “지속적인 화학사업 종료를 위한 정리 과정에 있으므로, 당사의 화학사업은 1~2개월 내로 중단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엔터사업과 외식사업으로의 사업전환을 위해 기존 화학사업은 축소되어 왔다”며 “기존사업인 화학사업에서는 기존 거래처와의 최소한의 화학재료 유통을 위주로 해 매출도 전지 전체 매출액의 2% 미만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공지 다음 날인 지난 20일 초록뱀이엔앰 주가는 전일 대비 15.38% 하락했다.
시장의 혼란과 개인투자자들의 불안감이 지속되자 금감원은 27일 이차전지와 더불어 인공지능, 로봇 관련주를 언급하며 미래성장 신규사업 공시심사와 불공정거래 조사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테마주 열기를 이용해 불공정거래 세력이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높은 만큼, 신규사업을 사업목적으로 추가한 상장사가 진행경과를 정기보고서에 의무 기재하도록 하겠다는 방침이다.
더불어 허위 신규사업 추진 관련 불공정거래 조사 대상을 더욱 구체화했다. 기존 주력사업과 무관한 신규사업을 사업 목적에 추가한 종목 가운데 주가 이상급등, 대주주 등의 보유주식 매도, 실제 사업 진행 여부 등을 분석해 불공정거래 혐의가 있는 종목에 대해 조사에 착수하겠다는 것.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올 3월까지 이차전지를 사업목적에 추가한 상장사는 총 54곳(유가증권시장 8곳‧코스닥 46곳)이다.
금감원은 불공정거래 혐의 종목에 대한 조사 착수보다는 공시를 통해 신규사업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를 우선 점검할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 관계자는 “미래성장사업을 사업목적에 추가한 회사들에 대해 신규사업과 기존 주력사업의 연관성 등을 조사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며 “사업목적으로 미래성장사업을 추가했을 경우 이후 진행 상황을 제대로 공시하고 있는지 우선 점검할 것”이라고 전했다.
여다정 기자
yeopo@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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