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비즈니스 법률’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퀄컴은 미국 샌디에이고에 본사를 둔 이동통신 연구·개발, 반도체 제조회사다. CDMA 등 이동통신 기술 분야에서 다수의 원천기술 특허를 보유하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삼성·엘지·팬택 등 국내 휴대전화 제조회사로부터 거액의 라이선스 비용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동통신이 2G(CDMA), 3G(WCDMA), 4G(LTE), 5G 등으로 발전하는 동안 퀄컴 기술의 비중이 점점 낮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후방 호환성(Backward Compatibility·향하고 있는 방향과 반대되는 방향에 기능이나 적합성을 유지하면서, 장치나 기계의 부품 따위를 다른 부품과 바꾸어 쓸 수 있는 성질)이 중요한 이동통신 기술의 특성상 퀄컴의 기술을 무시할 수 없다. 이동통신 기술이 진화한다고 통신표준이 한 번에 바뀌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구 표준 기술도 중요해서다. 예를 들어 4G로 데이터 통신을 하다가 음영지역으로 이동하면 3G 데이터를 이용해야 하므로, 모뎀 칩셋과 휴대전화는 신 표준뿐만 아니라 구 표준을 함께 지원해야 한다.
퀄컴은 모뎀 칩셋 시장에서도 독보적인 지위에 있다. 모뎀 칩셋이란 이동통신 표준에 따라 정보를 가공하고, 다시 원래의 정보를 복원하는 이동통신의 핵심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부품을 말한다. 휴대전화 스펙을 유심히 관찰하면 프리미엄 휴대전화일수록 퀄컴의 ‘스냅드래곤’ 모뎀 칩셋을 탑재하는 경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측면에서 퀄컴은 이동통신 SEP 라이선스 시장과 모뎀 칩셋 시장에서 독점력을 갖고 있다고 평가된다. 이동통신 SEP 라이선스 시장이란 이동통신 분야에서 표준 필수특허(SEP)의 라이선스를 주는 시장을 말한다. 여기서 SEP란 표준 필수특허(Standard Essential Patent)의 영문 약자로, 특정 제품을 생산하거나 서비스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라이선스를 받아야 하는 특허를 의미한다.
이러한 SEP는 표준화 기구에서 선정하는데, 표준화 기구는 부당한 독점력 행사를 방지하기 위해 특허 보유자로부터 공정하고(Fair), 합리적이며(Reasonable), 비차별적인(Non-Discriminatory) 조건으로 라이선스를 제공하겠다는 ‘FRAND’ 확약을 받은 후 표준 필수특허를 선정한다.
모뎀 칩셋 시장이란 휴대전화 부품인 모뎀 칩셋의 제조 시장을 뜻하며 이를 제조·납품하기 위해서는 이동통신 SEP 라이선스를 받는 것이 필수적이다. 모뎀 칩셋 시장은 경쟁이 치열한 시장으로 과거에는 NXP, TI, 프리스케일, ST마이크로, NEC, 브로드컴, 에릭슨, 엔비디아, 마벨 등 다수의 시장이 있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러한 사업자들은 시장에서 철수했고 퀄컴의 독점적 지위는 더욱 강화됐다.
이동통신 업계에서 퀄컴의 기술 비중은 2G, 3G, 4G 등 세대를 거듭할수록 감소했지만 퀄컴이 휴대전화 제조사에 징수하는 라이선스 비용은 줄지 않았다. 오히려 휴대전화 단가의 x %로 산정하는 라이선스 계산 방식으로 인해 스마트폰 출시 후 단가가 인상하면 퀄컴의 라이선스 비용도 오르는 경향도 있었다.
이처럼 두 시장에서 퀄컴의 독점력이 강화하니, 퀄컴의 SEP 라이선스 및 모뎀 칩셋 판매 정책이 경쟁법적으로 정당한지에 대한 의문이 지속해서 제기됐다. 그러자 공정거래위원회는 두 차례에 걸쳐 퀄컴이 시장 지배적 지위를 남용했다고 보고 시정명령, 과징금 등을 부과했다. 위 2개 사건 모두에서 법원은 공정위 제재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퀄컴의 청구를 대부분 기각하고, 위 제재 처분이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이번 글에서는 공정위의 퀄컴에 대한 2건의 제재조치 사건, 이른바 퀄컴 사건의 결과를 풀어보려고 한다. 퀄컴 사건은 주요 쟁점이 권리 보유자에게 독점력을 보유하는 지적재산권 법리와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행위를 규제하는 경쟁법 법리가 서로 대립·교차하는 영역에 있고, 이동통신 분야의 기술 용어가 반복돼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공정위 보도 자료와 삽입된 도표를 찬찬히 살펴보면 어떤 의식으로 문제점을 포착해 제재했는지 이해하기 쉽다. 우선 1차 사건에서 공정위는 아래와 같은 퀄컴의 행위가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고 2009년 시정명령과 함께 약 270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첫 번째 행위는 로열티 차별 부과다. 퀄컴은 CDMA 이동통신 기술의 라이선싱 계약을 맺은 휴대전화 제조사가 경쟁사의 모뎀칩을 사용하는 경우, 높은 로열티를 부과했다. 두 번째는 조건부 리베이트 지급이다. 휴대전화 제조사에 CDMA 모뎀칩과 RF칩을 판매하면서 수요량의 대부분을 퀄컴에서 구매하는 조건으로 리베이트를 제공한 행위다. 세 번째는 지속적인 로열티 부과다. CDMA 이동통신 기술을 휴대전화 제조사에게 라이선싱하면서, 해당 특허권이 소멸하거나 효력이 없게 된 이후에도 종전 기술 로열티의 50%를 계속 받을 수 있도록 약정했다.
퀄컴의 행위를 도표로 구성하면 아래와 같은데, 공정거래위원회는 퀄컴이 라이선싱과 모뎀 칩셋 판매 정책을 결부시켜 모뎀 칩셋 경쟁사의 사업 철수를 야기했고, 이를 통해 퀄컴의 모뎀칩 시장 내 독점적 지위를 강화했다고 봤다.
2차 사건에서 공정위는 다음과 같은 퀄컴의 행위를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행위로 보고 2017년 약 1조 300억 원의 시정명령 및 과징금을 부과했다. 첫째는 경쟁 모뎀 칩셋 제조사의 요청에도 모뎀 칩셋 제조·판매에 필수적인 이동통신 표준 필수특허(SEP)에 관한 라이선스 제공을 거절하거나 제한한 행위다.
둘째는 모뎀 칩셋 공급과 특허 라이선스 계약을 연계해, 휴대전화 제조사에 모뎀 칩셋 공급을 볼모로 FRAND 확약을 우회한 부당한 라이선스 계약을 강제한 행위다. 셋째는 휴대전화 제조사에 포괄적 라이선스만을 제공하면서 정당한 대가 산정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조건을 내거는 한편, 휴대전화 제조사 특허를 자사에 무상으로 제공하도록 요구한 행위다.
이처럼 행위 내용을 풀어서 보면 복잡해 보이지만, 모뎀 칩셋 시장에서의 판매 정책과 이동통신 SEP 기술시장에서의 라이선스 정책을 서로 결부시켜 각각의 독점력을 유지·강화하는 순환구조를 형성한다는 점에선 목적은 같다.
예를 들어, 퀄컴이 모뎀 칩셋 구매자에게 라이선스 비용을 할인해 주면서 휴대전화 제조사의 모뎀 칩셋 구매가 퀄컴에 쏠리게 됐고(1차 사건 중 로열티 차별 부과), FRAND 확약을 위반해 모뎀 칩셋 제조와 판매에 필수적인 SEP 라이선스를 거절·제한하다 보니 모뎀 칩셋 제조사들의 시장 철수가 가속화됐다(2차 사건 중 라이선스 거절·제한).
퀄컴 정책에 대한 평가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공정위의 처분과 법원의 판결은 SEP 보유자의 독점적 지위 남용이나, SEP 시장에서의 독점적 지위를 다른 시장에 전이하는 행위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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