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아파트, 도로, 터널, 교량에 쓰이는 콘크리트는 사회 인프라를 만드는 핵심이다. 그 콘크리트의 주재료는 시멘트이고, 시멘트의 원료는 석회석이다. 석회석은 강원도와 충청북도 등지에서 1950년대부터 60년 넘게 채굴됐다. 지표면의 흙을 걷어내고 계단식으로 산을 깎아낸 채석장들은 반세기 만에 한계에 도달해 하나둘 문을 닫고 있다. 수명이 다한 이 폐광지들이 최근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어 그 현장을 다녀왔다.
강원도 동해시 삼화역 인근에서 인적이 드문 길을 따라 차로 7분쯤 달리면 옛 쌍용양회(쌍용C&E)의 석회석 폐광지였던 무릉3지구가 나온다. 잿빛 공장의 높은 굴뚝을 지나는 도로는 맑은 날에도 을씨년스럽지만, 목적지에 도착하면 아이나 연인, 친구와 함께 방문한 관광객들의 즐거운 대화 소리가 들린다. 티켓을 끊고 공원에 입장하자 요새를 닮은 ‘별세계’가 펼쳐진다. 층층이 둘러 깎인 여러 산과 짙은 빛의 호수가 이질적인 풍경을 만들어낸다. ‘무릉별유천지’라는 이름의 테마파크다. 넓은 부지와 언덕을 활용한 야외 액티비티 체험시설이 조성돼 있다.
하지만 무릉도원을 연상시키는 이름과 달리 마냥 즐겁고 아름답기만 한 낙원은 아니다. 낯선 풍경을 만들어내는 산의 표면은 자세히 보면 나무를 베어내고 계단식으로 절개한 흔적이다. 국내 최대 채석장이었던 이곳은 채석장의 상처를 드러낸 채 방문객을 맞이한다.
#50년 채굴 후 문닫은 채석장을 관광단지로 조성
지난 7일 오락가락하는 4월 초 날씨와 바람 탓에 롤러코스터형 짚라인이나 스카이글라이더는 운행하지 않아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교적 친숙한 루지를 택했다. 무릉별유천지 복합체험관광지구의 전체 부지는 93만 4890㎡(약 28만 평). 멀리 떨어져 있는 거점들을 도보로 훑어보려면 2~3시간은 걸릴 정도로 광활하다. 매표소가 있는 쇄석장에서부터 5만 평 규모의 청옥호를 넘어야 도착하는 루지 탑승장에는 왕복 운행 열차를 타고 가는 게 편리하다.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거친 자갈길을 내달리다 보면 도착 지점에 닿는다. 근처 정거장에서 다시 왕복 열차를 타고 산 위 절벽에 마련된 전망대나 쇄석장 등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무릉3지구는 1968년부터 시멘트 생산을 위해 석회석 채굴이 이뤄지다가 2017년 말 작업이 최종 종료된 곳이다. 국내 최대 규모의 노천 채석장이 폐광 이후 거대한 흉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하자 같은 해 1월 동해시와 쌍용E&C가 일대를 관광단지로 조성하기 위해 상생협력 협약을 체결했다. 특화시설을 도입하고 관광 휴양시설을 조성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국비 50억 원을 포함해 총 사업비 1025억여 원으로 계획됐다.
1984년 당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던 동해 삼화동 쌍용양회 시멘트 공장 부지(위)와 현재 부지 전경. 사진=연합뉴스, 동해시 제공
이곳은 시민들이 선정한 무릉별유천지라는 이름을 달고 2021년 11월 공개됐다. 전체 사업 중 현재 1단계만 완료된 상태다. 야외 체험시설 등의 즐길거리가 조성됐고, 석회석 원석을 잘게 부수던 쇄석장 건물이 내부 단장을 거쳐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났다. 개발 사업이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은 데다 시설 규모에 비하면 홍보가 많이 이뤄지지 않아 아직은 아는 사람만 찾는 정도다. 20대 방문객 류 아무개 씨는 “친구 제안으로 루지 체험을 하러 왔는데 도착해서야 시멘트 공장 부지인 걸 알게 됐다. 건물도 멋지고 루지 외에 다른 액티비티도 있어 다시 한번 방문하고 싶다”고 말했다.
올해는 호수 주변으로 경관을 정비하고 아이들이 놀 공간을 추가로 확보하는 2단계 사업을 진행한다는 게 동해시의 설명이다. 2027년까지 민간 투자를 유치해 종합관광단지를 조성한다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 동해시 관광개발과 관계자는 “공원화 사업은 꾸준히 진행 중이다. 호수를 중심으로 야간 경관을 정비하고 아이들을 위한 체험 시설물이나 호수 주변을 건널 수 있는 교량, 모노레일 등을 도입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며 “민자로는 숙박과 편의시설이 들어올 수 있도록 제안자들과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복구 의무’ 쌍용C&E, 동해시에 기부 채납
무릉3지구는 단순 산림복원에 그쳤던 폐광지를 지자체와 기업이 협력해 창조적으로 복구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지난해 국토부 지역개발사업 최우수 사례로 선정됐다. 석회석 폐광지를 활용해 관광단지를 조성한 국내 첫 사례이기도 하다.
쌍용C&E는 영월 쌍용리의 지명을 딴 향토기업이지만 시멘트 제조업을 영위하며 환경파괴, 산림훼손 등으로 평판이 좋지 않았다. 물론 사업권자는 석회석 채굴 과정에서 훼손된 산림을 개발 전 상태로 복구해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다. 동해시는 2017년 당시 쌍용양회와의 협약을 통해 무릉3지구의 부지와 사업비를 확보했다. 원래는 토지 40년 무상사용 협약으로 시작했지만 현재는 완전히 동해시 소관이 되도록 기부채납 절차를 밟고 있다.
동해시 관광개발과 관계자는 “필지 수가 많고 기업 본사가 서울에 있어 진행에 시간이 걸리지만 지상권 설정까지 끝낸 상태로 기부채납을 진행 중”이라며 “쌍용이 근대화 산업에 이바지했지만 한편으로는 소음이나 환경문제를 일으켰다. 이제는 지역사회에 도움을 줘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공유해 폐광지를 복구, 지역 관광자원으로 활용에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탄광 이어 채석장·시멘트 공장 ‘재생’ 나선 지자체들
지금까지 1차 산업을 관광, 서비스 산업으로 바꾸는 대체 산업 개발은 석탄 광산을 중심으로 이뤄졌지만 무릉3지구를 필두로 시멘트 산업 분야에서도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경상북도 문경시 신기동에 있는 옛 쌍용양회 문경공장 역시 시설 노후와 생산성 저하, 수요 감소 등으로 폐업했는데, 경북도와 문경시는 이곳을 경제기반형 도시재생사업 거점으로 활용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공장 부지와 건물을 재해석해 새로운 복합 문화 공간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기업의 산림훼손 복구비용에 대해 이행보증을 서는 한국광해관리공단이 문경컬쳐팩토리와 도시재생 사업의 총괄 코디네이터 역할을 맡았다. 한국광해관리공단 관계자는 “전후 복구 사업으로 만들어진 시설이라 건축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의미가 있는 대규모 시설이다. 단순한 관광단지 조성 사업과는 구분되고 산업 유산을 재생하는 개념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수명이 다한 채석장이나 산업시설을 관광특화단지로 조성하는 것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전문가들은 복구와 지역경제 재생의 선후 관계를 잘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본 등 해외 사례와 같이 시청 공무원부터 환경·관광·도시계획 전문가 그룹, 지역활동가, 사업자가 협의체를 구성해 어떤 방향으로 개발할 것인지 로드맵을 꾸려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노백호 계명대 지구환경학 교수는 “원칙적으로는 개발 후 복구를 하는 게 옳은 방향이다. 바람길, 물길 등 훼손된 자연 생태계를 기능적으로 돌려놓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자연 순환 시스템을 회복하는 게 우선이고 그 토대 위에서 관광, 문화 산업 등 대체 산업이 마련되는 게 적절하다”고 짚었다.
동해시 관광개발과 관계자는 “산림 복구에 더해 그 과정에서 관광자원화 하는 취지의 계획이다. 오랫동안 공장 부지로 활용돼 낙후한 삼화동 지역이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도록 힘쓸 것”이라고 밝혔다.
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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