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스타터(starter)로는 엘더 플라워 폼, 프로마주 블랑 크림, 천혜향 콤포트가 준비되어 있고, 프리(pre)·메인(main)·피니시(finish) 순으로 디저트가 제공됩니다.”
디저트가 네 차례에 걸쳐 제공되는 이곳은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디저트 오마카세 전문점 A 매장. 대로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해 매장을 찾기 쉽지 않았음에도 주말 오후 매장은 손님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오마카세를 예약한 2명 단위의 손님이 들어오고 나가고를 반복하며 매장 내에서는 간신히 발을 딛고 서 있을 수 있었다. 일부 손님들은 식사 후 디저트를 단품으로 구매하고 싶다며 구매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오마카세는 일본어로 ‘맡긴다’는 뜻으로, 주방장이 내주는 대로 먹는 코스 요리를 의미한다. 최근 주점을 중심으로 안주를 주방장 마음대로 제공하는 이모카세(이모+오마카세)가 큰 관심을 불러 모은 데 이어 디저트 업계에서도 ‘디저트 오마카세’ 바람이 불고 있다. 방문객들은 이전에는 레스토랑에 가야만 경험할 수 있었던 플레이팅 디저트를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대에 누릴 수 있다는 점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다. 반면 디저트 업계에서는 이 같은 현상을 두고 국내 디저트 문화의 수준을 높였다는 반응과 함께 무분별하게 오마카세라는 단어가 붙여지는 점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디저트 오마카세로 대중 관심 끌어내는데 성공”
학생들의 추천으로 이곳을 방문했다는 고등학교 교사 B 씨(25)와 C 씨(35)는 “누룽지, 된장 등 한국적인 재료를 활용한 디저트 메뉴들이 코스별로 다양하게 구성돼 있는 점이 가장 인상 깊었다”며 “교육자로서 많이 보고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격도 다른 오마카세에 비해 합리적이어서 좋았고, SNS에 사진을 올리기 좋게 앞에서 연출도 해주셔서 대접받는 느낌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매장을 운영하는 D 셰프는 디저트 분야에 오마카세를 최초로 도입한 인물이다. D 세프는 “생각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디저트에 관심이 없다. 근데 최근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오마카세라는 말이 앞에 함께함으로써 대중에게 디저트 문화를 알리고 이들의 관심을 끌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여름 성수기에는 손님이 일주일에 200분 정도 방문해 주셨다. 요즘은 평균 150~200분 정도 오신다”며 “최근 디저트 오마카세가 유행을 하면서 가격 경쟁이 심화했고, 비교적 저렴한 가격대에서 경쟁하는 가게들이 많아지면서 진입장벽도 낮아졌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디저트 오마카세의 가격은 대부분 3만~4만 원 선에서 책정돼 있다. 네 코스로 구성된 A 매장의 디저트 오마카세 가격은 1인당 3만 원이다. 단품으로 판매되는 일부 메뉴는 1만 5000원 선에서 구매 가능하다. 다섯 코스로 제공되는 E 매장의 봄 시즌 1인당 가격은 4만 원으로, 시즌 별로 가격이 상이할 수 있다. F 매장의 경우 코스별로 2만 8000~3만 6000원 사이에 가격이 형성돼 있다.
호텔 애프터눈티세트 가격과 비교하면 저렴한 편이다. 서울 주요 호텔의 애프터눈티세트 가격은 5만~8만 원(1인 기준)이다. G 호텔 8만 원, H 호텔 5만 원, I 호텔 4만 7500원이다.
고급 디저트를 비교적 저렴한 가격대로 즐길 수 있는 점은 소비자들을 끌어당기는 요인이다. 1주년 기념일을 맞아 A 매장을 방문했다는 한 커플은 “호텔에서 판매하는 애프터눈티세트는 보통 1인당 5만 원 안팎인데, 이곳은 반값 수준인 3만 원 정도 해서 예약할 때 부담이 적었다”고 말했다.
부모님과 함께 나들이를 나온 김소현(28) 씨는 “사회 초년생이라 호텔 파인다이닝 같은 곳을 가기에는 경제적으로도, 심적으로도 조금 부담이 됐다”며 “주변에서 디저트 오마카세를 다녀온 친구들의 반응이 좋아서 와 봤는데, 높은 수준의 음식을 다른 곳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대에 맛볼 수 있어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다양한 분야에 오마카세 등장…우려 목소리도
디저트 분야를 포함해 최근 다양한 분야에서 오마카세를 접목하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이러한 시도가 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D 셰프는 “예전에 유튜브에 출연해 디저트 오마카세에 대해 소개한 적이 있는데, 댓글의 90%가 ‘별개 다 오마카세네’라는 반응이었다”며 “오히려 디저트 역사가 비교적 짧은 한국에서 이런 매장이 하나둘씩 생겨나다 보면 국내 디저트 문화의 수준이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의 오마카세 열풍만 바라보고 사업을 시작해서는 안 된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는 “한국 특성상 하나가 잘 되면 너도나도 다 하려고 한다. 전문적인 부분도 분명히 필요한데 경력자 아닌 분들 가운데 이 분야를 너무 쉽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신다”며 “많은 분들이 이 분야에 도전하는 건 우리나라의 전체적인 디저트 문화 수준이 올라간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존재하지만 결코 쉽지는 않다는 점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디저트 업계 종사자 가운데에는 오마카세라는 단어가 함께 사용되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드러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5년째 디저트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J 셰프(44)는 “홍보 측면에서는 오마카세라는 단어가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면서도 “오마카세는 일식에서 사용되는 용어이고 저희가 하는 건 ‘플레이팅 디저트’의 일종이다. 접시에만 담겼다고 플레이팅 디저트라고 하거나 메뉴가 코스로 구성돼 있다고 오마카세라고 불리는 건 문제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디저트 문화가 더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디저트 업계가 다각도로 노력을 더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가로수길에서 10년째 디저트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F 셰프도 비슷한 의견이었다. 그는 “오마카세가 아닌 정해진 디저트 코스 메뉴를 운영하는 카페에서 오마카세라는 단어를 사용해 홍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홍보를 위해 오마카세라는 단어를 너무 남용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다만 이들은 디저트 코스 메뉴가 유행을 하면서 국내 디저트 문화가 더욱 활성화되었다는 데는 동의했다. J 셰프는 “이전에 나이 드신 분들께서는 한식이나 베이커리 쪽이 아니면 소비를 잘 안 하셨다. 그러나 최근에 이 같은 디저트 코스 요리가 생겨나면서 디저트를 소비하는 연령대가 다양해졌다”며 “방문해 주시는 고객층의 30%는 5060세대”라고 설명했다.
F 셰프도 “10년 전만 해도 디저트와 베이커리의 구분이 잘 이뤄지지 않을 정도로 국민의 관심이 저조했다. 이제는 세대가 바뀌면서 디저트를 찾아 먹는 문화도 생기고, 밥값만큼 디저트에 돈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 경험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가 생겨나면서 디저트 문화가 국민들에 많이 스며든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오마카세가 다양한 분야로 확장하는 것과 관련해 “젊은 세대는 존중받고 싶어 하고 남들과는 차별화된 경험을 바란다. 오마카세는 이런 부분을 가장 잘 충족시켜 주는 활동 중 하나다. 이러한 젊은 세대의 수요로 다양한 상품이 생겨난 측면이 있기에, 앞으로도 다양한 오마카세 상품이 생겨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김초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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