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회사마다 고유의 인사이동 시즌이 있다. 지금 다니는 회사의 경우 매년 상반기와 하반기 말에 승진과 함께 전보 명령이 시행된다. 정기적으로 연 1회 인사이동을 실시하는 회사도 있고, 조직규모에 따라 비정기적으로 소소하게 인사이동을 하는 회사도 있다. 어느 회사든 마찬가지겠지만 이런 인사이동 시즌이면 ‘블라인드’ 게시판은 그야말로 폭주 상태가 된다.
승진과 같은 수직적 인사이동의 경우는 취업규칙에서 정한 절차대로 문제없이 진행하면 실무자 선에서는 욕먹을 일이 별로 없다. 어차피 모든 화살은 인사권을 가진 최고경영자(오너)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수년간 누적된 인사평가 시스템을 바탕으로 계량화되어 만들어진 후보명단 내에서 최종적으로 누구를 고를 것인지, 어디에 나의 충복을 배치할 것인지는 어디까지나 인사권자의 고유권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서이동(회사에 따라서는 전보, 전배, 혹은 전직이라 불리는 수평적 이동)은 이야기가 좀 다르다.
잘해도 욕먹고, 못해도 욕먹는 곳이 인사팀이라지만 이때만큼은 그 좋아하는 밥도 안 넘어가고 식욕이 떨어질 정도로 스트레스가 가득이다. 인사팀장 보직을 맡고 첫인사를 진행하며 겪었던 일로 생긴 트라우마 때문이다. 수년간 기획업무를 위주로 해왔던 터라 ‘부서 인사이동 그거 그냥 원칙대로 하면 되는 거 아니야?’ 하는 아주 단순한 생각이었다. 그동안 일하면서 만난 후배와 동료들의 인재풀도 나름 갖고 있다고 자부했다. 무조건 위에서 시키는 대로만 하지 않겠다는 깡과 배짱도 있었다.
그런데 담당자가 추려온 인사이동 대상자 명단을 받아보니 이름만 봐서는 누구지 싶을 정도로 생소한 인물이 절반 가까이 되었다. 여기에 이런 사람이 있었어? 이 사람은 누구지? 이름은 들어보긴 했는데 그 사람 어떻더라? 회사생활을 10년 넘게 해왔는데도 구성원 수가 워낙에 많다 보니 업무상 부딪힐 일이 없거나 일면식조차 없는 직원이 생각보다 많았다. 매년 새로 들어오고 나가는 직원을 모두 다 알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간 내가 알고 있다고 자만한 이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인적자원의 면면을 모두 다 알지 못하는데 ‘적재적소의 원칙’이라는 것이 가능할 리가.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담당자의 의견이나 상급자의 지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허나 자존심은 있어서 행여 내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정치적인 입김이나 잘못된 평판에 좌지우지되고 휘둘리면 어쩌나 싶은 마음에 전전긍긍하며 잠을 못 이루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주위에 자꾸 레퍼런스 체크를 하게 되었고, 이것이 나비 효과가 되어 ‘이번 인사이동에서 대규모 격변이 있을 것이다’ 라는 소문을 시작으로 ‘인사팀장이 직접 컨택한 사람들은 모두 부서 이동 된다더라’는 카더라 통신이 돌게 되었다. 그 정도 소문에서 끝나면 좋았을 텐데 인사이동 제한 기간에 걸려있는 직원들까지 개인적인 친분이나 갖가지 사유를 들며 연락을 해오기 시작했다. 이쯤 되니 사내 메신저는 끊임없이 깜박이는 수신메시지로 통제 불능 수준이 되었다.
글로만 배우고 입으로만 떠들던 원칙주의, 1:1로 3000명이 넘는 직원 모두를 챙길 수 있을 것이라는 허황된 이상, 누구에게도 욕먹지 않고 아름답게 일 처리 하겠다는 욕심이 빚은 대참사였다. 졸지에 사내 유비(유언비어)통신의 제공자이자 빅 마우스가 되는 것으로 호되게 신고식을 치렀다. 이제는 손가락 발가락 개수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은 횟수의 인사이동을 진행했지만 어김없이 정기 인사이동 시즌이 되면 긴장되기는 매한가지다. 특히 명령 전보다 후가 더 그렇다. 행여 놓친 것은 없는지 이번 인사로 의도치 않게 상처받거나 실망한 사람은 없는지 부서이동의 여파로 누군가 사직하는 것은 아닌지 이후로 몇 주간은 마음이 편치 않다.
2020년부터 은행 등 금융권은 영업점 배치와 같은 대규모 인사이동에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활발히 적용하고 있다. 업무경력, 근무 기간, 자격증, 출퇴근 거리 등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여 근무지를 선정하다 보니 인사이동에 대한 직원들의 불만이 대폭 줄었다고 한다. 어쨌든 사람보다는 ‘시스템’이 보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결과를 도출한다고 믿는 것이다. 물론 사람이 하는 것보다 오류나 실수가 없고, 감정과 편견 같은 주관적인 견해가 개입될 여지도 적은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시스템에 맡긴다고 100% 공정한 인사이동이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직원 개개인의 고충사항이나 인사기록에 포함되지 않는 예외적인 요소들은 데이터화 자체가 불가능한데, 이런 변수가 직원 구성원의 수만큼이나 다양하게 존재한다. 아니, 애초에 알고리즘이라는 것이 누가 어떻게 구성하고 어디에 가중치를 두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데 그 이면에 어떤 상상도 못할 역학관계가 얽혀 있을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어떤 회사든지 ‘도대체 왜?’라는 의문이 드는 인사는 있는 법이다. 제아무리 인공지능이 발전을 거듭한다 할지라도 조직 구성원 모두가 만족하는 인사이동이란 마치 유니콘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괜찮은 회사라면 무리한 인사는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 바로잡힌다. 그렇지 않은 곳이라면 제 발로 먼저 떠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언제까지고 상식이 통하지 않는 회사는 언젠가 위기를 맞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 부디 시즌마다 확인되지 않은 헛소문과 뒤숭숭한 분위기에 편승하여 불안에 떨거나 소용돌이에 휘말리기 보다는 자기중심을 잃지 말고 유비무환의 자세로 현명하게 대처하길 바란다.
필자 김진은? 정규직, 비정규직, 파견직을 합쳐 3000명에 달하는 기업의 인사팀장을 맡고 있다. 6년간 각종 인사 실무를 수행하면서 얻은 깨달음과 비법을 ‘알아두면 쓸데있는 인사 잡학사전’을 통해 직장인들에게 알려주고자 한다.
김진 HR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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