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비즈니스 법률’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지적재산권에서 보호 대상은 아이디어 자체가 아니라 ‘아이디어를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아이디어, 콘셉트, 개념 등을 법률로 보호해달라는 주장은 틀린 말이다. 예를 들어 저작권의 보호 대상인 저작물이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이 표현된 창작물’이다. 즉, 사상이나 감정 자체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표현한 창작물을 보호한다.
그리고 상표란 ‘자·타 상품을 식별하기 위해 사용하는 표장’을, 디자인이란 ‘물품의 형상, 모양, 색채 또는 이들을 결합한 것으로써 시각을 통해 미감을 일으키는 것’을 말하는데, 이들 역시 아이디어가 아니라 표현의 일종이다.
특허는 ‘자연법칙을 이용한 기술적 사상의 창작으로서 고도한 것’을 말하므로 마치 기술적 사상 자체가 보호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보호 내용과 범위는 특허 명세서에 기술한 내용으로 특정된다는 점에서 이 역시 ‘표현한 것’이 보호의 대상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아이디어와 표현을 분리하고 그 중 표현을 보호하는 법리를 ‘아이디어와 표현의 이분법’이라고 한다. 얼핏 들으면 그럴듯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적용하면 실제 사건에서 부당한 결론에 이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어느 스타트업이 대기업에 투자받기 위해 자사의 사업 모델과 주력 제품을 프레젠테이션했다. 그런데 대기업은 이를 그대로 베껴 자사의 제품이나 서비스로 출시하고 스타트업에 단 한 푼도 보상하지 않았다.
스타트업 측은 대기업 관계자를 만나 천신만고 끝에 기술 자료 및 영업 정보를 제공한 사실과, 대기업이 보상 없이 이를 이용해 자사 제품을 출시한 사실을 모두 입증했다. 그런데도 ‘표현만 보호한다’는 아이디어와 표현의 이분법에 따르면 스타트업이 어떤 근거로 보호받을지 난감해진다. 왜냐하면 스타트업이 진정으로 보호받고자 하는 것은 기술자료 등에 담긴 아이디어지, 기술 자료의 문언 그 자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사례를 들어보자. 인터넷 이용자가 N사의 포털사이트를 방문하면 일반적으로 화면에 N사가 제공하는 배너광고가 표시된다. A사는 포털사이트 화면에 N사 광고 대신 자사가 제공하는 배너광고가 뜨게 하는 광고 프로그램을 판매했다. A사가 이 같은 광고 프로그램을 판매·배포하는 건 N사가 막대한 비용을 들여 구축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편승해 이익을 얻는 것이므로, 상식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문제가 있어 보였다.
하지만 이를 법리로 포장해 주장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A사는 광고를 통한 수익 창출이라는 N사의 사업모델, 즉 아이디어를 침해한 것으로 볼 수 있었는데 당시 이를 직접적으로 규율하는 법령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국내 1위 포털사이트의 광고 사업이 침해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기에, 대법원 2008마1541 결정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법리로 A사의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하고 N사의 광고 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① 경쟁자가 상당한 노력과 투자에 의해 구축한 성과물을 상도덕이나 공정한 경쟁 질서에 반해 자신의 영업을 위해 무단으로 이용함으로써 경쟁자의 노력과 투자에 편승해 부당하게 이익을 얻고 경쟁자의 법률상 보호할 가치가 있는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는 부정한 경쟁행위로서 민법상 불법행위에 해당한다.
② 위와 같은 무단 이용 상태가 계속돼 금전배상을 명하는 것만으로는 피해자 구제의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고 무단 이용의 금지로 인해 보호되는 피해자의 이익과 그로 인한 가해자의 불이익을 비교·교량할 때, 피해자의 이익이 더 큰 경우 그 행위의 금지 또는 예방을 청구할 수 있다.
최근 고양된 국민의 권리의식, 한류열풍 등으로 커진 문화산업의 중요성, 대·중소기업 관계에서 자행되는 불공정거래행위를 향한 비난 등을 감안하면 이제는 법리를 세우기 어려워 보호하지 못한다는 주장은 할 수 없게 됐다. 대기업이 스타트업의 기술을 탈취하거나 타사의 성과물에 편승할 경우 비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법적인 불이익까지 줘야 한다는 결론에 모두 공감하는 분위기다.
이런 배경에서 부정경쟁방지법은 거듭된 개정을 통해 법률로서 금지하는 부정경쟁행위의 외연을 확장하고 행위 유형을 추가하고 있다. 예를 들어 대기업의 기술 탈취 등을 직접적으로 규제하기 위해 2018년 개정 부정경쟁방지법은 제1호 차목에 아래와 같은 위반행위를 규정했다.
“사업 제안, 입찰, 공모 등 거래 교섭 또는 거래 과정에서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타인의 기술적 또는 영업상의 아이디어가 포함된 정보를 그 제공목적에 위반해 자신 또는 제삼자의 영업상 이익을 위해 부정하게 사용하거나 타인에게 제공하여 사용하게 하는 행위. 다만 아이디어를 제공받은 자가 제공받을 당시 이미 아이디어를 알고 있었거나 그 아이디어가 동종 업계에서 널리 알려진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또한 부정경쟁방지법은 제1호 파목으로 “타인의 상당한 투자나 노력으로 만들어진 성과 등을 공정한 상거래 관행이나 경쟁 질서에 반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영업을 위하여 무단으로 사용함으로써 타인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를 부정경쟁행위로 규정했는데, 해석에 따라 적용 범위를 확대할 수 있는 일반조항의 성격을 갖는다.
이처럼 과거엔 아이디어는 보호 대상이 아니라고 여겨졌지만, 법의식의 변화와 잦은 법 개정 등으로 인해 경향이 바뀌고 있다. 예를 들어 기존에는 타 의류 쇼핑몰에 올라온 사진을 그대로 복사해 사용(데드카피)한 것이 아니라, 코디나 콘셉트만 따라 했을 뿐 사진 자체는 새로 촬영했다면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볼 수 없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대법원 2015다225967 판결 등은 사진 촬영 방식, 코디, 콘셉트 등을 1년 반 이상 똑같이 따라 하면서 촬영한 것은 경쟁자의 성과물을 무단 이용해 부당하게 이익을 얻은 것이므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처럼 아이디어 보호의 외연을 확장하는 건 경제적 가치가 있는 아이디어를 경시하지 않는 것으로, 바람직한 변화라고 생각한다. 지적재산권의 영역은 시시각각 바뀌고 있다. 부정경쟁방지법에 새로운 유형의 부정경쟁행위가 나타나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러니 업계 종사자와 전문가는 잘못된 결론을 내리지 않도록 업데이트에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
[알쓸비법] 법이 무기가 되는 '입막음 소송' 어떻게 봐야 할까
·
[알쓸비법] 광고용 사진이 저작권을 인정받는 조건
·
[알쓸비법] 최대 영업정지도 가능한 벌점 관리의 중요성
·
[알쓸비법] 공정거래 사건의 절반이 '하도급법', 왜 그럴까?
·
[알쓸비법] 우리나라 대기업은 왜 스타트업 아이디어를 훔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