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A 사 투자자인 직장인 B 씨는 매년 주주총회 시즌이 되면 주총 참석 통지서를 받는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주총장에 직접 가본 적은 없다. 직장에 다니는 ‘넥타이 개미’이기 때문에 주총 참석 통지서는 각종 고지서와 함께 쓰레기통으로 가기 일쑤였다. 번번이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포기하고 있지만, 다음 주총에는 관심을 가져보려고 한다는 게 B씨의 계획이다. 주주권을 포기하는 동안 믿고 투자한 기업이 대주주만을 위한 경영활동을 하고 있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주식 투자를 한 번이라도 해봤다면 ‘주주’라는 용어는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한 회사의 주식을 1주만 갖고 있어도 주주이기 때문에 주총에 참석할 수 있다. 매년 최소 1차례 이상 열리는 주총 참석은 주주라면 당연히 행사해야 할 권리다.
지난해 영업활동을 결산하는 주총은 이사 선임이나 정관 변경, 재무제표 승인 등 회사 경영과 관련한 사항을 결정하는 의사결정기구다. 적극적인 주주의 경우, 직접 회사 IR팀에 주가나 경영과 관련한 사항을 문의하는 경우도 있지만, 주총에서도 회사의 경영 목표나 계획에 관해서도 확인할 수 있고, 회사의 주요 안건을 직접 결정할 수 있다.
특히, 모든 주주는 주식 1주 당 의결권을 1표 가지게 되는데, 보유 주식이 많아질수록 주총에 대한 영향력이 커진다. 다만, 우선주처럼 의결권이 없는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면 주총에는 참석할 수 없다. 선진국 주총에서는 기업설명회와 함께 공연이 열리는 등 축제처럼 인식되며 주주들이 자유롭게 참여하는 문화인 반면, 우리 주총에 대한 인식은 예전보다 많이 친숙해졌음에도 여전히 ‘기업이 알아서 잘하겠지’라는 믿음으로 나와는 거리가 먼 행사로 인식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한국예탁결제원 등에서는 소액주주들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전자투표나 전자위임장 등의 제도와 시스템 등을 보완해왔다. 몇 년 전에는 ‘열린 주총’이라는 제목으로 몇몇 기업에서 토크쇼 형식의 주총을 열기도 했지만, 이 역시 단발성 행사로 그치고 말았다.
그러나 올해는 주주행동주의 열풍이 불면서 주주의 권리를 행사하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특히, KT&G, DB하이텍, KT 등 행동주의 펀드나 소액주주 간의 표 대결이 유난히 불거졌다. 이 가운데 DB하이텍에 대해서는 팹리스 사업 물적분할이 대주주를 위한 결정이라는 비판이 일었고, KT에 대해서는 경영 공백 사태로 인한 비판이 제기되며 소액주주들을 결집시켰다.
이 과정에서 DB하이텍 주가는 올해 들어 100% 넘게 급등했고, KT 주가는 반대로 9% 이상 하락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기관 투자자들은 올해 1월부터 DB하이텍을 4만 3천 주가량 사들이고, KT를 2만 6천 주가량 파는 사이 개인 투자자들은 KT를 8만 6천 주 매수하고, DB하이텍을 4만 주가량 매도했다.
주주행동주의란 주주들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는 다양한 주주제안을 제시하며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에 나서는 행위를 말한다. 이 같은 주주행동주의는 수년 전 미국계 기관투자가들이 우리 시장에 본격 상륙하면서 거론되기 시작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정기 주주총회에서 주주제안 안건을 다룬 기업은 44곳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28곳과 비교해 16곳 늘어났다.
특히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이 14곳에서 22곳으로, 8곳 늘었다. 다만 이 같은 주주제안의 대부분이 채택되지 못하고 부결로 끝이 났다는 점은 여전히 숙제지만,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는 점은 기대할 만하다. 주주의 권리를 포기하지 않는 투자자들이 많을수록 개별 회사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 사옥 앞에는 종종 현수막이 내걸렸다. 개별 투자자들이 기업이나 관계기관 등에 투자자 보호를 이행하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다. 과거에는 이 같은 행위가 무시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상한 사람’이라고 치부되기 일쑤였다. 그러나 이 같은 소액주주들의 목소리가 모여 소액주주운동을 이끌고 자본시장을 개혁하는 데 역할을 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기업을 믿고 투자했다면 투자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기업이나 대주주의 경영활동이 기업에 반하는 결정이라면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김세아 금융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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