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서울에, 그것도 도심 한복판에 이런 곳이 있었어?” 이런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지만, 그중에도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은 모르는 사람이 우연히 찾는다면 입을 다물지 못하는 곳이다. 시청 바로 건너편에 명동성당 크기의 아름다운 성당이, 길에서는 잘 안 보이게 숨어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이후 마스크를 벗고 맞는 첫 부활절에 방문하기 좋다.
#식민지 모던걸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황금 제단화
하늘을 향해 뾰족하게 ‘똥침’을 날리는 고딕양식의 명동성당과 달리, 성공회 서울대성당은 낮은 포복으로 편안한 자세다. 이게 바로 로마네스크 양식의 특징 중 하나란다. 이미 35년 전에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등록될 만큼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인 1922년에 짓기 시작해 4년 뒤에 완공한, 10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근대 문화유산이다. 성공회 신자가 아니어도 정해진 시간에는 성당 구석구석을 둘러볼 수 있다.
두꺼운 나무문을 열고 본당 안으로 들어가니 높은 천장과 소박한 스테인드글라스, 그리고 저 멀리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모자이크 제단화가 우선 눈에 띈다. 유럽 여행에서 본 몇백 년 된 성당의 황금 모자이크 제단화랑 똑 닮았다. 안내 데스크에서 받은 팸플릿을 보니 영국 장인이 11년에 걸쳐 ‘시실리 전통’에 따라 만들었단다. 이걸 완성한 것이 1938년이었다니, 식민지 모던보이와 모던걸의 눈이 휘둥그레졌을 법도 하다.
제단화 옆으로는 우아한 나무의자가 하나 있다. 예배 중에 현직 주교가 앉는 주교좌다. 그래서 이곳의 이름이 서울주교좌성당이었던 것이다. 대한성공회에 한국인 주교가 탄생한 것이 1965년. 1890년 개항한 인천을 통해 처음 성공회가 전파된 지 75년 만의 일이다. 제단화 맞은편, 그러니까 본당 입구 바로 위에는 무척이나 아름다운 소리를 낼 것 같은 우아하고 커다란 파이프오르간이 자리 잡고 있다. 예배 시간뿐 아니라 가끔은 독주회도 연다니 시간 맞춰 방문한다면 더욱 좋을 듯하다.
#경운궁 양이재 앞 민주화 기념비
본당을 둘러보고 ‘세례자 요한 성당’이라는 이름의 지하성당으로 향했다. 대한성공회 3대 교구장이었던 조마가 주교의 유해가 바닥에 잠들어 있다는 지하성당도 아담하니 좋았지만, 거기로 내려가는 나선형 계단 또한 눈길을 끈다. 이곳에도 자그마한 파이프오르간이 있어 매일 아침저녁 예배시간에 연주된다고 한다.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 내부 탐사를 마치면 기왕 내친걸음으로 바깥까지 한 바퀴 둘러보는 것이 좋다. 성당 입구 앞에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있고, 그 옆으로 그만큼 나이를 먹은 것 같은 한옥 한 채가 보인다. 이곳의 이름은 경운궁 양이재. 경운궁이란 덕수궁의 원이름이다. 양이재는 대한제국기에 경운궁에 지은 근대식 교육기관이다. 원래는 이곳보다 조금 더 북쪽에 있었는데, 성공회에서 매입하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조선의 궁궐이 수난을 당했고, 그 과정에서 덕수궁도 규모가 절반 이상 줄었다는데 건물을 보니 실감이 난다.
로마네스크양식의 성공회성당 뒤에 경운궁 양이재라. 이것만 해도 우리 근대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은데, 양이재 옆 건물 앞에 6·10민주항쟁 기념비까지 있다. 이곳은 성공회 주교관인데 6·10항쟁 당시 군사정권의 탄압을 피해 재야운동가와 지식인들이 모여 결의를 다졌던 것을 기념하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3·1운동 당시에는 성공회성당이 기독교계 학생들의 만세운동 거점이었다니, 단순히 건물뿐 아니라 공간 자체가 우리 근현대사의 역사적 유적지인 셈이다.
아름다운 건물에 켜켜이 쌓인 역사. 시청 근처를 지날 일이 있으면 잠시 짬을 내 성공회 서울대성당에 들러보면 좋겠다. 아이와 함께라면 더욱 유익할 듯하다.
<여행정보>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위치: 서울시 중구 세종대로21길 15
△문의: 02-730-6677
△관람시간: 월~토요일 11:00~16:00, 일요일 15:00~18:00, 연중무휴
필자 구완회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여성중앙’, ‘프라이데이’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랜덤하우스코리아 여행출판팀장으로 ‘세계를 간다’, ‘100배 즐기기’ 등의 여행 가이드북 시리즈를 총괄했다. 지금은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역사와 여행 이야기를 쓰고 있다.
구완회 여행작가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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