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기자 생활을 하면서 인터뷰했던 배우 중에 가장 인상적으로 멋진 사람은 누구였나요?” 지금은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15년간 기자 생활을 해오면서 배우, 감독분들을 두루 인터뷰해 온 이력 때문에 지금까지도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다. 이런 질문을 들을 때마다 주저함 없이 나는 톱 3 안의 인터뷰이로 꼽는 사람 중의 하나가 배우 김혜수다.
인터뷰를 통해 여러 차례 만났던 그녀는 엄청난 다독가이면서 음악, 미술 등 다양한 방면에 관심이 많았던 이였기에 인터뷰할 때마다 대화의 거리도 늘 다채로웠고, 질문할 때마다 나왔던 그녀의 대답 또한 깊이가 있어서였다. 그래서 오래도록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하는 배우이고, 좋은 작품에서 그녀를 만날 때마다 특히 더 반가웠더랬다.
최근 유튜브 채널 ‘by PDC 피디씨’를 통해 배우 김혜수, 더 나아가 인간 김혜수의 깊이 있는 내면을 확인할 수 있는 인터뷰를 확인할 기회가 있었다. ‘by PDC 피디씨’는 배우 송윤아가 자신의 지인들을 초대해 인터뷰 형식의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유튜브 채널인데, 그 채널에 김혜수 배우가 게스트로 초대되었다.
10년 넘는 인연의 두 사람은 송윤아가 만든 차를 마시며 대화를 평화롭게 나누기 시작했다. 인터뷰 도중 송윤아가 “국민배우 김혜수는 작품을 잘 고르는 비결이 무엇이냐, 작품을 보는 눈이 좋은 것이 좋은 것인지, 작품복이 좋은 것인지”를 묻는 말이 나왔다. 그러자 이에 김혜수는 “둘 다!”라고 말하며, “내가 작품을 잘 본다는 건 최근이다. 딱 맞는 작품이 들어오지 않았던 시절이 굉장히 길었다”고 말하면서 그간 꺼내지 못했던 속내를 다음과 같이 밝히기 시작했다.
“나름 똘똘한 척하면서 참 시나리오 보는 눈이 없는 배우가 김혜수였어요. 내가 좋은 시나리오를 만날 수 있는 공력을 얼마나 들였느냐가 (배우에겐) 출발선인데, 나는 그 출발선이 없었어요. 실력도 안 됐고, 그 실력이 안 된 상태에서 (데뷔를 일찍 해서) 많은 이미지 소모가 되었기 때문에, 좋은 작품을 찍을 수 있는 역량의 사람들은 굳이 내가 필요하지 않았어요. 새롭고 신선한 사람들은 많았고, 나는 뭔가 애매한 사람이었으니까.”
당시 처했던 본인의 상황에 대해 저렇게나 냉정할 정도로 스스로를 묘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참 놀라웠다. 대부분 배우는 인기가 하늘을 찔렀던 과거의 영광만을 그리워하거나 혹은 과거의 인기에만 취해 자신을 알아봐 주지 않는 대중, 자신이 처한 현실만 한탄하는 이들을 인터뷰이로 많이 만났던 까닭이다. 서슬 퍼렇게 냉철한 자아 성찰에 이어 그녀는 말을 이어갔다.
“당시의 평론가들이나 영화기자들의 배우 김혜수에 대한 평가를 보면 배우로서의 내 역량이 보이는 거지. 너무 현실적이어서 할 말이 없었어. 그런데 어떤 때는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더라고. ‘그래도 나 열심히 했는데, 왜 이렇게 평가가 나한테는 박하지?’ 힘들고 가슴 아픈 순간은 본인만 알아요. 그런데 그걸 잊어버리면 안 돼요. 내가 시간을 어떻게 보냈느냐에 따라서 그 기회가 올 수도 있고, 평생 안 올 수도 있으니까. 그 부분에 있어서 나는 운은 좋은 거 같아요. 그런데 (내가) 끊임없이 노력은 한 거 같아요.”
”나는 운은 좋은 거 같다”는 겸손의 말을 놓치지 않으면서 그런데 “끊임없이 노력은 한 거 같아요.”라고 담담하면서도 나직한 어조로 말하는 배우 김혜수의 얼굴에는 순간, 그녀가 쌓아 올린 공력의 시간이 멋지게 아로새겨진 듯했다.
좀 더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당시의 매니저를 통해 좋은 시나리오들을 속속들이 찾아 읽었고, “영화제에서 자신을 초대하지 않았기에, 당대 좋은 평가를 받은 영화인들을 지켜보고 싶어서 수락한 청룡영화상 MC는 뒤돌아보니 무려 30년째 보게 됐다”고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캐릭터를 더 집요하게 해석하고 싶어서 자신에게 주어진 대본을 마르고 닳게 읽고 또 읽어서, 캐릭터를 만들어 가는 새로운 경지를 맛보았다는 사람. 그리고 김혜수는 이 모든 일련의 노력에 마지막 방점이 되는 말을 특유의 크고 그윽한 눈으로 송윤아를 바라보며 다음과 같이 전했다.
“웃어요, 웃지만 어금니를 꾹 깨물고 무언가를 더하면 돼요. 아는 만큼 똑똑하고 하는 만큼 되는 거야. 일이란 대부분 공부랑 비슷한 거 같아요. 내가 천재도 아니고, 1등을 한 적도 없지만, 많이 공부하고 준비하면 모든 상황이 나한테 죽을 때까지 불리하지만 않거든.”
중학생 때 데뷔한 이후 하이틴 스타가 됐고, 작품을 떠나 늘 존재감 자체로는 스타였으나 그런 자신의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작품 속에서 빛나는 배우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사람. 배우 김혜수를 보면서 천재적인 능력은 타고나기도 하지만, 그녀처럼 부단히 성실하게 노력하고 공부하면서 나이 들수록 그 분야에서 기억에 남는 ‘진정한 고수’가 되어가는 것 또한 실로 멋진 일이 아닐까 싶었다.
어금니를 꾹 깨물고 부단히 공부하고 준비한 배우 김혜수의 연기 공력은 현재 38년 차다. 당신의 커리어 공력은 지금 어디까지 왔는가. 그녀는 배우 커리어 10년이 훌쩍 넘었을 당시, 자신의 연기 내공에 대한 냉정한 깨달음을 얻고 지금의 자리를 스스로 만들어 내고, 여기까지 왔다.
”나는 최선을 다했는데, 왜 이렇게 나에 대한 평가는 박하지?” 혹시 과거의 그녀처럼 최근 이런 생각 때문에 마음이 울적한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주변의 평가에 서운해하지만 말자. 배우 김혜수처럼 그 평가는 절대 잊지 안돼, 뭐라도 더 해보자. 어금니를 꾹 깨물고, 웃으면서 그렇게 하나씩 말이다.
필자 김수연은?
영화전문지, 패션지, 라이프스타일지 등, 다양한 매거진에서 취재하고 인터뷰하며 글밥 먹고 살았다. 지금은 친환경 코스메틱&세제 브랜드 ‘베베스킨’ ‘뷰가닉’ ‘베베스킨 라이프’의 홍보 마케팅을 하며 생전 생각도 못했던 ‘에코 클린 라이프’ 마케팅을 하며 산다.
김수연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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