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직장인 A씨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대한 뉴스가 연일 흘러나왔지만, 그동안 관심을 두지 않았다. 투자와는 관련이 없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양극재 생산 기업 에코프로비엠 주가가 최근 급등하고 있다는 소식에 IRA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올해 1월만 해도 9만 원대 주가였던 에코프로비엠은 지난 달 23일에는 장중 26만 원대까지 치솟았다. 이후 조정받는 모습을 보였지만, 3일 다시 3%대 급등했다. 미국 정부가 지난 달 31일 IRA 세부 지침을 공개하자 기대감은 국내 증시에 반영됐다. IRA 수혜 효과 기대감에 에코프로비엠은 물론, 2차전지 관련주들이 급등하면서 52주 신고가를 경신하는 종목들이 속출했다.
심지어 검찰과 금융당국이 지난 2020∼2021년 에코프로 전현직 임직원이 미공개 정보 등을 이용해 주식을 거래하고, 부당이득을 얻은 정황을 포착하고 에코프로 본사를 압수 수색을 했지만, 에코프로비엠 주가는 반짝 급락 후 다시 시동을 걸었다. 올해 수익률만 150%가 넘는 에코프로비엠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평가가 엇갈린다. 주가가 지나치게 빠르게 급등하면서 미래 이익을 검증할 시간이 부족했다는 의견과 빠른 주가 상승에도 대표적인 성장 산업이기 때문에 조정이 길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맞선다.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투자자들이 지금 판단해야 할 것은 에코프로비엠의 향후 성장에 대한 가시성이 아니고 적용 밸류에이션의 높이”라고 지적했다. 한 연구원은 “국내 양극재업체들은 적정가치를 평가할 때 이미 높아진 서로의 가치만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며 “향후 미국과 유럽시장에서 K-양극재업체들끼리의 경쟁만 남아 있다고 보는 시각은 지나친 낙관”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안나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최근 주가 급등으로 단기 주가 변동성이 존재하지만, 생산능력 확대로 인한 외형성장, 미국 내 수주 모멘텀 등으로 상승 여력이 여전하다”고 주장했다.
미국 재무부가 현지 시각 31일 발표한 IRA 전기차 보조금 세부 규칙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북미에서 만들거나 조립된 배터리 부품 50% 이상, 미국이나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국가에서 채굴하거나 가공한 핵심 광물 40% 이상을 사용하면 각각 3750달러씩 보조금을 지급하는 내용이 담겼다.
2차전지 분야에서 IRA 핵심 쟁점은 친환경 차 보조금 수령 조건, 생산자 세액공제, 우려집단에 대한 해석 등 3가지다. 이번 세부안은 쟁점들 가운데 친환경 차 보조금 수령 조건, 특히, 배터리 부품과 구성소재를 정의했다. 배터리부품에 양극판과 음극판은 포함하고 구성 재료인 양극재, 음극재, 알루미늄박, 동박 등은 포함하지 않기로 했다. 양극판과 음극판을 만드는 구성재료는 배터리 부품에 포함되지 않고 핵심광물로 정의한 것이다. 한국 업체의 경우 구성 재료를 국내서 생산한 뒤 이를 미국으로 보내 양극판·음극판을 만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삼성, SK, LG 등 국내 주요 배터리업체들은 모두 보조금 조건을 충족할 수 있다.
미 재무부는 또 핵심 광물의 경우 미국과 FTA를 체결하지 않은 국가에서 수입한 재료를 한국처럼 미국과 FTA를 맺은 국가에서 가공해도 보조금 지급 대상에 포함하기로 했다. 예를 들어, 핵심 광물 원산지가 미국과 FTA국가 아니어도 한국에서 50% 이상 부가가치를 더하는 형태로 가공하면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주민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핵심 광물에 속한 국내 소재 업체들의 미국 진출 의무가 사라짐과 동시에 투자 지역에 대한 운신의 폭이 넓어져 전반적으로 국내 업체들에 유리한 방향”이라고 평가했다.
이런 IRA 세부안이 발표되면서 미국 전기차 메이커인 테슬라, 리비안, 루시드 등의 주가가 급등했고, GM과 포드 주가도 상승했다. 이재일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주가 상승의 원인은 배터리 핵심 광물 조달 요건 완화로 전기차 제조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감소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결국 이번 세부안이 발표되면서 기업들의 북미 투자 불확실성이 제거됐다는 평가가 공통된 의견이다. 그동안 미국에만 유리하게 만들었다는 IRA에 대한 불확실성이 컸기 때문이다. 양극재와 음극재 관련 소재를 국내에서 제조할 수도 있고, 핵심 광물도 미국과 FTA를 체결하지 않은 국가에서 수입해서 국내에서 가공할 수도 있다. 한병화 연구원은 “이번 전기차 구매 보조금 수정안이 발표된 이유는 배터리를 미국과 FTA 국가들만의 역량으로는 조달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 연구원은 또 “전기차와 배터리 셀 업체들의 요구가 일정 부분 수용된 것이지만 IRA의 원취지인 미국 내 생산 기지와 일자리 확보를 상당 부분 훼손됐기 때문에 공화당과 민주당 일부 의원들까지 수정안에 대해 반대한다고 밝히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세부안은 국내 2차전지 업체들에 긍정적이다. 정용진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포드, 테슬라 등은 중국 배터리 제조업체 CATL의 기술 지원을 받는 방식으로 중국 배터리의 우회 통로를 노크하고 있다”며 “CATL의 기술을 활용해도 중국산 소재 적용은 해외 우려 집단 설정을 통해 원천 봉쇄된다”고 말했다.
김세아 금융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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