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해 반도체 지원법(칩스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을 통해 자국 기업의 리쇼어링(본국 회귀·유턴)은 물론 한국 등 세계 주요 기업 생산 시설을 미국 내로 유치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각종 논란에도 우리 기업은 물론 세계 각국 기업들이 미국의 중국 제재 후폭풍을 피하기 위해 미국행을 택하고 있다. 유럽연합(EU)도 핵심 원자재법(CRMA)과 탄소 중립 산업법을 통해 기업 유턴 등 친환경 산업 투자 유치에 주력 중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법인세 인하와 기업 투자 세액 공제 문제를 놓고 여야가 합의점을 찾는 데 애를 먹는 등 이러한 기업 유치 흐름과 반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통령과 정부가 국내 유턴 기업 지원 대책을 내놓고, 야당이 리쇼어링 활성화 법안 발의를 약속하고 있음에도 기업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리쇼어링 기업들도 대부분 중소기업에 불과하고, 오히려 해외에 새로 법인을 세우는 경향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열린 비상경제민생회의 겸 제1차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2023년부터 생산기지를 해외에서 국내로 옮기는 유턴 기업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내용의 ‘2023년 경제정책방향’을 확정·발표했다. 계획안에 따르면 리쇼어링 기업이 중고 설비나 기존 공장을 매입해도 투자로 인정해 세금 감면을 혜택이 주어진다.
또 협력형 유턴(수요기업과 협력 공급사가 연계해 복귀) 보조금 지원 비율은 기존 5%에서 10%로 상향하는 방안에 대한 추진 의사도 밝혔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3월 28일 ‘글로벌 공급망 변화에 따른 대한민국 리쇼어링 정책 진단과 대안 토론회’를 통해 리쇼어링 관련 법안을 조만간 발의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정부와 야당의 리쇼어링 기업에 대한 지원 약속에도 국내 기업들은 유턴보다는 해외로 나가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2013년 말 ‘해외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 지원에 관한 법률(리턴 지원법)’이 시행된 지 10년이 됐지만, 법 시행 이후 국내 복귀 기업 126개 사 중에서 중견기업 이상 기업의 수는 29개 사(23.0%)에 불과하다.
그나마 코로나19로 해외에서 사업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최근에서야 국내 복귀 기업 수가 늘어났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18년 8개 사에 그쳤던 국내 복귀 기업은 2019년 14개 사로 늘어난 데 이어 2020년에 23개 사로 증가했다. 2021년에도 증가세가 이어져 26개 사를 기록했고, 2022년에는 24개 사를 나타냈다. 하지만 국내로 복귀한 126개 사 중에서 15개 사가 폐업하면서 정부의 리쇼어링 기업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 지난해 한국경영자총협회가 해외진출 기업 306개 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 중 93.5%가 리쇼어링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국내 복귀 계획이 있다는 기업은 3.6%에 그쳤다. 특히 현재 국내복귀기업 지원 제도에 대해 응답 기업의 72.3%는 제도 효과가 작다고 평가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코로나19로 주춤했던 기업들의 해외 진출이 다시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2019년 해외직접투자(FDI)를 통해 해외에 신규 설립된 법인은 4018개 사로 최고치를 기록한 뒤 코로나19 후폭풍에 2020년 2429개 사, 2021년 2338개 사로 감소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여파가 가시자 2022년에는 해외 신규 설립 법인이 2588개 사로 1년 사이 10.7% 증가했다. 특히 지난해 해외 신규 설립 법인 중 제조업(691개 사)과 정보통신업(332개 사), 전문과학기술업(217개 사)은 1년 전에 비해 각각 18.9%, 13.3%, 26.2% 늘어났다. 정부가 국내로 유턴시키고자 하는 첨단기술과 제조업 관련 업체들이 해외로 다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경제계 관계자는 “국내 기업의 리쇼어링을 늘리려면 유턴 기업에 대한 법인세 감면과 함께 수도권 규제 완화 등이 필요하다”며 “하지만 지난해와 올해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반도체 설비투자 기업 세액공제 비율 확대 등을 둘러싸고 보인 정치권 혼란을 보면 정부·여당과 야당의 리쇼어링 기업 지원 확대 약속이 제대로 이행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불확실성을 꺼리는 기업들이 국내로 돌아오기를 바란다면 정부는 물론 야당도 정책 일관성을 보여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승현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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