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남북통일보다 어려운 게 유보통합’이란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유보통합은 교육계 최대 난제로 꼽힌다. 30년 이상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윤 정부는 2년 내 풀어내겠다는 자신감을 내보이고 있다. 정부의 호언장담에 교육계도 유보통합을 준비해야 한다는 분위기인데, 정작 정책 시행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은 전혀 없어 현장의 혼란은 커지고 있다.
#‘남북통일보다 어려운 유보통합’ 이번엔 진짜 될까
지난 1월 교육부는 유치원과 어린이집으로 분리된 영유아의 교육 및 보육을 통합하는 유보통합 정책 시행에 대한 계획을 발표했다. 올해부터 2024년까지 차례로 통합을 준비하고 2025년부터 곧바로 유보통합을 하겠다는 내용이다.
유보통합은 유치원과 어린이집으로 분리된 영유아 대상의 보육·교육 기관을 하나로 통합하는 정책이다. 유치원은 학교로, 어린이집은 사회복지기관으로 분류돼 관할처도 각각 교육부와 보건복지부로 나뉘어 있다. 때문에 근무하는 교사의 자격 기준이나 처우는 물론 운영 방식, 교육비 지원 등에서 차이가 크다. 교육부는 수준 높고 균등한 교육과 돌봄 서비스 제공을 위해 유보통합을 시행한다고 밝히고 있다.
지난 28일 정부의 저출산 대책 발표에도 유보통합이 거론됐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윤 정부가 핵심적으로 추진할 저출산 대책 5대 핵심분야를 발표하면서, 돌봄과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유보통합을 시행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정부가 유보통합에 상당한 자신감을 보이는 모습에 교육계도 술렁이고 있다. 유보통합이 30년 넘게 해결하지 못한 해묵은 과제임에도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만큼 이번에야말로 해결이 될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생기는 분위기다.
하지만 유보통합 시행 일정만 못 박았을 뿐 아직 구체적 로드맵은 전혀 없다. 가장 문제가 되는 유치원과 어린이집 교사의 통합 운영에 관한 내용도 아무것도 정해진 바가 없다. 때문에 현장에서 혼란은 가중되는 분위기다. 교사들은 유보통합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데, 구체적 방안이 없으니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모습이다.
특히 어린이집에서 근무하는 교사들의 불안감이 크다. 유보통합이 시행되면 유치원과 어린이집이 사라지고 새로운 통합기관이 생길 가능성이 큰데, 그럼 기존의 유치원, 어린이집 교사가 같은 일자리를 두고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현재 유치원 교사와 어린이집 교사는 양성체계에서부터 차이를 보인다. 유치원 교사가 되려면 전문대 및 4년제 대학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하거나 아동복지학 등 관련 분야 전공을 한 뒤 교직과목을 이수해야 한다. 국공립 유치원 교사는 임용시험도 합격해야 한다.
그와 비교해 어린이집 교사는 문턱이 비교적 낮다. 전문대 이상의 졸업장을 갖고 있거나 사이버대학, 학점은행제를 통해서도 보육교사 자격증을 딸 수 있다. 1년이면 자격증 취득이 가능하다보니 교사들 사이에서도 ‘자격증 남발’이라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몇 시간의 교육 이수로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보육교사에 비해 유치원 정교사가 전문성이 높다고 인식되다 보니 어린이집 교사들은 유치원 교사와의 경쟁 관계에 놓이는 것에 대한 우려가 클 수밖에 없다.
경기도의 한 어린이집 교사는 “유보통합 얘기가 나온 뒤 새 학기부터 원의 교사들이 전부 교체됐다. 기존의 보육교사 자격증을 가진 교사들 대신 유아교육과 출신 교사들로 새로 바뀌었다”며 “지역 내 어린이집 교사 공고에도 유아교육과 출신이나 유치원 정교사 자격증 우대 등의 조건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불안한 보육교사 타깃의 과장 광고 난립, 정부는 “연말쯤 시안 나올 것” 느긋
보육교사들은 구체적 지침도 없는 정책을 발표해 혼란을 가중시킨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를 비난하고 있다. 어린이집 교사 A 씨 “아직 정책이 확정된 것도 아닌데 원장이 ‘계속 근무하려면 유치원 정교사 자격증 취득을 준비하라’고 말했다”며 “유보통합에 대한 구체적 내용이 확실해지면 그에 맞춰 준비하려고 했는데, 마음이 불편해졌다. 교사들만 좌불안석”이라고 한숨 쉬었다.
현장에는 온갖 소문이 무성하다. 교사 B 씨는 “원장이 교사들에게 ‘임용고시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고, 어린이집 원장 C 씨는 “교사들 사이에서 유치원 정교사 자격증이 없으면 앞으로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란 얘기가 나오더라. 부담감에 ‘다른 일을 찾겠다’며 그만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불안감이 높아진 보육교사를 타깃으로 하는 과장 광고도 늘어나고 있다. 일부 학점은행제 운영기관은 유보통합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특정 교육과정을 반드시 이수해야 하는 것처럼 우편물을 발송하기도 한다. 한 교사는 “보육교사 자격증 취득자는 반드시 유아교육학과, 아동학과 4년제 학사학위를 취득해야 하는 것처럼 안내문이 발송됐다”며 “자세히 살펴보니 광고물이었다. 하지만 잘 모르는 사람들은 학위 이수가 필수처럼 느껴질 것 같다”고 지적했다.
유보통합 이후의 교사 자격 기준이 어떻게 달라질지는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다. 하지만 교사들은 불안한 마음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사설 기관 등이라도 찾는 상황이다. 한 학점은행제 운영기관 관계자는 “최근 학점은행제 수강생의 40%가량이 보육교사”라며 “유보통합 시행 발표 후 문의도 상당히 많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교육부는 태평한 모습이다. 지난 1월 유보통합 추진방안을 발표하면서 보육교사 3급 자격증 폐지와 학과제 도입 등에 대해 언급해 교사들의 분위기가 술렁였는데, 이에 대해서도 “결정된 사안은 아니다. 검토만 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한 어린이집 교사는 “유보통합 시행만 툭 던져 놓으니 교사들의 스트레스가 너무 크다.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기분”이라고 한숨 쉬었다.
교육부는 “올해 연말쯤 교원자격 양성체제 개편 방안에 대한 시안이 나올 예정이다. 그때 돼야 대략적인 윤곽을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연말에 시안이 나오면 추가 검토 등을 거쳐 2024년에 확정하는 것으로 일정을 잡고 있다”고 전했다.
박해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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