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비즈니스 법률’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보통 소장을 받은 피고는 “원고 주장은 말도 안 된다. 이 소송은 부당하다”라고 한다. 소송은 본질적으로 당사자들 간의 다툼이므로 상대방 주장을 근거 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건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그러나 정말로 제삼자가 봐도 소 제기 자체가 부당하게 여겨지는 경우가 있을까?
이른바 ‘전략적 봉쇄소송’에 관한 논의다. 일반적으로 전략적 봉쇄소송이란 시민의 공적 참여로 인해 불이익을 받는 자(정부·기업 등)가 시민의 공적 참여를 위축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제기하는 소송을 말한다.
현재 ‘국가 등의 괴롭힘 소송에 관한 특례법안’ 입법이 논의 중인데, 위 법안은 ‘괴롭힘 소송’을 ‘공정 사안에 관해 언론·출판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또는 근로자의 기본권을 행사한 개인, 노동조합 또는 비영리단체를 피고로 기본권 행사를 제한하는 데에 실재적인 목적이 있는 소송’으로 정의하고 있다.
소송을 권하는 것이 일인 변호사 입장에서 볼 때 소 제기 그 자체가 부당하다고 단정하는 것은 부담스럽다. 법정 공방으로 시시비비를 가리면 되지, 소 제기 자체를 문제 삼을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다. 그러나 가끔 전후 사정을 보다가 숨겨진 의도를 감지해 소송이 압박의 수단으로 보일 때는, 소 제기에 불이익을 줘야 할 필요성을 느끼기도 한다.
이와 관련한 사례가 있다. 한 외식업 프랜차이즈 업체가 있다. 이 업체는 ① 갑질 논란, 유통 과정에서의 폭리 등을 보도한 일간지 기자에게 10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형사고소까지 했다. 또한 ② 가맹점협의회 회장 활동을 하는 가맹점주를 상대로 신용 훼손을 이유로 가맹계약을 해지하고, 10억 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③ 그밖에 다른 가맹점주에게 네이버 게시글로 신용이 훼손됐다고 주장하면서 5억 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제①항 사건은 프랜차이즈 업체 패소 판결이 선고·확정됐고, 검찰은 기자에게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제②항 사건에서도 프랜차이즈 업체 패소 취지의 화해권고결정이 확정됐으며, 제③항의 사건은 1심에서 패소 판결이 선고돼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특이한 점은 공정위가 위 사건에서 피고의 주장을 받아들여 프랜차이즈 업체에 가맹사업법 위반에 따른 시정명령, 과징금 납부 명령을 부과했다는 것이다. 즉 프랜차이즈 업체는 기자와 가맹점주의 문제 제기가 허위라며 거액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지만, 공정위는 문제 제기가 타당하다고 보고 제재한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을 정리하면 프랜차이즈 업체의 소 제기가 정당하다고 볼 수 있을까? 프랜차이즈 업체가 상당히 적극적으로 소를 제기한다는 느낌이 들기는 한다. 어쩌면 이 글을 쓰는 필자에게도 새로운 소를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법원은 전략적 봉쇄소송이라는 개념을 인정하지 않고, 대법원 1999. 4. 13. 선고 98다52513 판결을 보면 매우 엄격한 요건 하에 소 제기의 위법성을 인정하고 있다.
① 법적 분쟁의 당사자가 법원에 당해 분쟁의 종국적인 해결을 구하는 것은 법치국가의 근간에 관계하는 중요한 일이므로 재판을 받을 권리는 최대한 존중해야 하고, 제소 행위나 응소행위가 불법행위인지 판단할 때는 적어도 재판제도의 이용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결과가 되지 않도록 신중하게 배려해야 한다.
② 따라서 법적 분쟁의 해결을 구하기 위해 소를 제기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정당한 행위이고, 단지 제소자가 패소 판결을 받았다는 것만으로 그의 소 제기가 불법행위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③ 그러나 소를 제기당한 사람 쪽에서 보면, 응소를 강요당하고 어쩔 수 없이 그를 위해 변호사 비용을 지출하는 등의 경제적·정신적 부담을 지게 되는 까닭에 응소자에게 부당한 부담을 강요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소의 제기는 위법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④ 따라서 민사소송을 제기한 사람이 패소 판결을 받아 확정된 경우, 소의 제기를 상대방에 대해 위법한 행위로 보는 건 당해 소송에서 제소자가 주장한 권리 또는 법률관계가 사실적·법률적 근거가 없다고 본다. 또한 제소자가 이 점을 알면서 혹은 통상인으로 그 점을 용이하게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를 제기하는 등 소의 제기가 재판제도의 취지와 목적에 비춰 현저하게 상당성을 잃었다고 인정하는 경우에 한한다.
성문법이 우선하는 대륙법계의 원칙상, 별도 입법 없이 전략적 봉쇄소송이라는 개념을 인정하거나 그런 개념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줄 수 없다는 법원의 판단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프랜차이즈 업체가 기자와 가맹점주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거액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반복적으로 제기하는 것은 사실이다. 정치권에서는 정보공개서에 프랜차이즈 업체의 소 제기 내역, 패소 사례 등을 기재하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는 논의가 나온다. 이 같은 사실 등을 종합하면, ‘법에 없으니까 인정 못 한다’는 결론은 지극히 안이한 인식이며, 문제 해결을 위한 최소한의 개입도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최근에는 하도급법, 가맹사업법, 특허법, 부정경쟁방지법 등에서 실손해의 3배 보상을 명하는 3배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했다. 여기서 주로 고려하는 건 법 위반, 권리침해의 의도성, 고의성 등이다. 법 위반 업체가 법 위반 사실을 가리거나 상대방의 권리행사를 막으려고 제기한 소에 대해 경제적 불이익을 주는 법적 근거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더글로리’처럼 사적 제재를 소재로 한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현실을 보자. 대중에게 인기가 높은 이유가 단지 대중의 법적 절차를 간과한 무지에서 비롯한 걸까? 그보다는 현실에서 법이 상식을 따라가지 못하며, 이를 바꾸기 위한 노력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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