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올해 수출 증가율 전망치를 기획재정부 예상(전년 대비 -4.5%)보다 대폭 올린 0.2%로 제시하면서 정부 각 부처에서 수출 관련 회의가 쏟아지고 있다. 대통령이 주재하는 수출전략회의는 물론, 경제부총리가 진행하는 수출투자대책회의, 산업통산자원부가 맡은 수출동향 점검회의와 함께 수출전략 민·당·정 협의회, 수출·투자 금융지원 협의회, 수출·투자 책임관 회의 등 수출 증가 방안을 논의하는 회의가 지난해 말부터 줄줄이 이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수출은 6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보이는 등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에 정부가 보여주기식 회의에만 몰두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실제 반도체 등 첨단산업 육성을 위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 정부의 소극적 움직임 탓에 국회에서 재논의 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정부가 잇단 회의를 통해 말만 할 뿐 정책 이행은 주저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지난해 말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국회 통과 시 여당은 반도체 설비투자 세액공제(대기업 기준)를 6%에서 20%로, 야당은 10%로 올리는 안을 제시했을 당시 정부가 야당보다도 낮은 8% 인상안을 내놓으면서 8% 인상으로 확정된 것이다. 이후 대통령의 지시로 대기업 투자 세액 공제를 15%로 올리는 내용으로 재개정이 추진 중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23일 서울 서초구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코트라)에서 ‘제1차 수출전략회의’를 주재하면서 “수출을 증진시키기 위해서는 민간 기업이 알아서 하라고 할 수가 없다”며 “앞으로 제가 직접 수출전략회의를 주재하며 우리 경제 핵심 동력인 수출 증진에 대한 전략, 풀어나가야 할 문제점을 직접 점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후 윤 대통령은 3개월 사이 4차례 수출전략회의를 열었다.
특히 윤 대통령은 2월 23일 ‘제4차 수출전략회의’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16년 동안 수출전략회의를 180회를 했다. 한 달에 한 번꼴로 한 것”이라며 “지금은 세계 어느 나라도 국가, 정부가 기업을 지원하고 도와주지 않는 나라가 없다”고 말했다. 각 부처에 수출 확대를 위해 민간 기업 지원에 나설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한 것이다.
윤 대통령이 직접 수출 상황을 챙기고 정부 부처에 지원을 당부하면서 부처마다 수출 관련 대책회의가 속속 생겨나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2월 3일 ‘수출투자대책회의’를 신설하고 제조업 업종별 수출·투자 지원방안을 논의했다. 추 부총리는 회의에서 “우리 기업들의 수출·투자 지원에 총력을 다하기 위해 장관급 수출투자대책회의를 신설해 격주로 업종별 수출·투자 여건을 면밀히 점검하겠다”며 “부처별 1급 간부를 수출·투자 책임관으로 지정해 부처 책임성을 강화하고 전 경제부처 모든 공무원이 영업사원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추경호 부총리는 같은 달 16일에 농수산식품 수출 동향 및 대응방안, 이번 달 2일에는 K-콘텐츠 수출 전략 후속조치 계획 등을 주제로 한 ‘수출투자대책회의’를 열었다. 추 부총리는 13일에는 1차 수출투자대책회의에서 지정했던 수출·투자 책임관들을 불러모아 회의를 갖고 부처별 지원 상황 등을 점검하기도 했다.
이창양 산자부 장관은 3월 3일 주호영 국민의 힘 원내대표, 김동섭 SK하이닉스 사장 등 여당과 민간 기업 대표들과 함께 하는 ‘수출 전략 민·당·정 협의회’를 가졌다. 13일에는 장영진 산자부 1차관이 코트라와 무역보험공사, 무역협회 등이 참석하는 ‘민관합동 품목별 수출동향 점검회의’를 주재했다. 21일에는 안덕근 통상교섭본부장이 반도체·자동차·정유·철강 등 12개 업종별 협회, 수출지원기관과 함께 ‘수출입동향 점검회의’를 열었다.
심지어 수출과는 거리를 뒀던 문화체육관광부까지 나서 수출 대책 회의를 신설했다. 문체부는 2월 17일 전병극 1차관 주재로 ‘제1차 콘텐츠 수출대책회의’를 연데 이어 이번 달 7일에는 ‘제2차 콘텐츠 수출대책회의’를 열고 방탄소년단(BTS)과 블랙핑크 등으로 대표되는 K-팝 해외 진출 방안을 논의했다.
정부가 이처럼 수출 관련 회의를 대통령부터 부총리, 장관, 차관 등까지 각급별로 진행 중이지만 수출 상황은 여전히 좋지 않다. 관세청에 따르면 3월 1~20일 수출액은 309억 4500만 달러(통관기준 잠정치)로 전년 동기 대비 17.4% 감소했다. 지난해 10월 마이너스로 전환한 이래 최대 감소폭으로 이 추세가 이어지면 6개월 연속 마이너스가 확실하다.
경제계 관계자는 “최근 수출 위기 상황에 대한 국민적 불안감을 줄이기 위해 대통령부터 장·차관까지 나서서 각종 수출 관련 회의를 주재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회의보다는 반도체 설비투자 세액공제 논란이 보여준 것 같은 정부의 소극적 태도부터 고치는 것이 우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승현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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