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패션 산업은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산업’ 2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지만, 한국에서 이 같은 상황을 바꿀 논의는 아직 찾아보기 힘들다. 기후 위기 시대가 도래해 세계 각국과 글로벌 기업이 경영 방식까지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는데도 말이다. ‘패션피플(패피)’은 ‘최신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트렌드에 민감한 이들은 패스트 패션을 많이 소비하는 것으로 비치지만, 이제는 환경과 기후위기 문제를 인식하고 이에 기반해 소비하는 ‘그린 패피’로 달라지고 있다. ‘그린 패피 탐사대’는 새로운 패피의 눈으로 패션을 비롯한 일상의 환경 문제를 파헤치고 그 대안을 살펴보고자 한다.
휴대폰 케이스 시장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글로벌 리서치 테크나비오(TechNavio)는 2022년부터 2027년까지 휴대폰 케이스 시장 규모가 133억 3000만 달러(17조 823억 9500만 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기업리서치센터는 스마트폰 교체 주기가 짧아지면서 휴대폰 액세서리 시장이 더 성장할 거라고 내다봤다. 이에 따르면 2028년 글로벌 스마트폰 케이스 시장은 연평균 성장률이 6.5%씩 증가해 2028년 3580억 달러(458조 2400억 원)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휴대폰 단말기의 가격 상승도 휴대폰 케이스 시장에 호재가 됐다. 한국소비자원도 관련 실태조사에서 ‘스마트폰 교체 수요가 줄고 사용시간이 늘면서 케이스 수요가 함께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제 휴대폰 케이스는 단순히 휴대폰을 보호하기 위한 장비가 아니다. 유행하는 캐릭터, 다양한 재질과 색으로 개성을 드러낼 수 있게 됐다. 기능도 다양해졌다. 실용성도 있다. 카드를 수납하거나 그립톡을 고정하는 역할도 한다. 유행하는 디자인과 캐릭터는 케이스 시장에 빠르게 반영돼 생산되고 판매된다. 휴대폰 케이스는 이제 ‘패션’이 됐다.
문제는 재질이다. 시장 규모는 커졌지만, 관련 규제는 미흡하다. 지난 2017년 한국소비자원은 일부 휴대폰 케이스에서 중금속인 납과 카드늄을 검출했다고 밝혔다. 이에 2019년 산업통상자원부는 휴대폰 케이스에 대한 유해 물질 기준 허용치를 규정했다. 그러나 복합재질로 이루어진 휴대폰 케이스의 폐기 방식은 고려되지 않았다. 여러 재질로 이루어진 휴대폰 케이스는 소각되거나 매립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관련 규제 없어 대량 생산 후 폐기
2015년 KT경영경제연구소는 휴대폰을 구입 후 교체할 때까지 케이스를 평균 2.4회 교환한다고 밝혔다. 휴대폰 케이스가 패션의 영역으로 자리 잡으면서 교체 주기는 더 가속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맞춤 제작’ 케이스도 유행하고 있다.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가 사용한 케이스가 유행이 되거나 유명 캐릭터가 있는 케이스가 인기를 끌기도 한다. 20대 A 씨는 “보통 좋아하거나 힙한 연예인이 사용한 케이스를 따라 살 때가 많다. 휴대폰 디자인보다 케이스 디자인이 더 눈에 띄니 신경 쓰게 된다. 휴대폰 케이스도 하나의 패션으로 자리 잡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소재에 따라 교체 주기도 다양하다. 대학생 B 씨는 “투명 젤리 케이스를 사용하는데, 금방 색이 변해서 2~3주에 한 번은 교체한다. 가격도 1만 원대라 크게 부담 없다”고 답했다. C 씨는 “보통 좋아하는 디자인을 골라서 구매하는데, 3개월에 한 번은 교체하는 것 같다. 여러 개를 사두고 기분에 따라 바꾸기도 한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휴대폰 케이스는 ‘복합재질’로 이루어져 있다. 말랑한 실리콘, 젤리나 딱딱한 플라스틱, 가죽, 큐빅, 거울 케이스 등 모두 여러 재질이 섞인 제품이다. 휴대폰 케이스 시장이 점점 커지고 대량 생산되는 모양새지만 재활용 규정은 찾아보기 힘들다. 결국 복합재질인 휴대폰 케이스는 매립하거나 소각할 수밖에 없다.
휴대폰 케이스 제작업체 관계자는 “합성수지 제품이 가격도 저렴하고 오히려 기능도 좋아 사용하지 않을 수가 없다. 유해 물질만 아니면 재질에 대한 규정이 없으니 대량 생산이 가능하고 단가가 낮은 제품들을 판매하는 거다. 제대로 재활용하려고 한다면 분해 비용이 더 들어갈 것이다. 지금은 대량 생산에 부담 없는 구조라 팔리지 않은 제품들은 대량으로 버려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친환경’ 케이스도 재활용 어려워
문제는 휴대폰 케이스의 판매도, 제조도 쉽다는 점이다. 한 업체 관계자는 “휴대폰 케이스는 낮은 단가로 쉽게 주문 제작할 수 있다. 대량으로 제작해서 제고로 쌓아놓기도 하지만 소규모로 하는 곳은 그때마다 제작도 가능하다. 마플샵, 인스타, 트위터 등으로만 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고 판매하는 경우도 많다. 여기에는 유해한 재질도 있겠지만, 모두 적발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국내에 등록된 휴대폰 케이스 제조 업체(10인 이상)는 53개뿐이지만, 중국에서 제품을 제조해 한국에 판매하는 온라인 업체는 수를 세기 힘들 정도다. 실제로 휴대폰 케이스 제작 업체는 온라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누구나 제품을 주문해 판매할 수 있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도 폐기는 고려되지 않는다.
업계도 이를 인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2020년 플라스틱을 재활용해 만든 업사이클링 케이스를 제작했다. 유명 연예인들이 사용해 ‘핫한 아이템’으로 떠오른 휴대폰 케이스 제작업체 케이스티파이는 비건 레더를 사용하거나 대나무와 녹말에서 추출해 100% 생분해되는 에코 케이스를 판매하기도 한다.
그러나 ‘친환경’ 제품이더라도 재활용이 가능한 재질을 골라내기는 역부족이다. 케이스에 그립톡이나 카드케이스, 스티커 등이 부착되면 더 어려워진다. 재활용선별장 관계자는 “휴대폰 케이스의 재활용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복합 플라스틱 등으로 이루어진 휴대폰 케이스는 선별장으로 오더라도 선별하지 못하고 소각된다. 대부분 분해가 어렵고 프린트된 색상을 지우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생분해 제품이라도 이를 구별하기 어렵고, 분해하는 비용이 더 들 것이다. 소각 시 발생할 수 있는 오염물질에 대한 우려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재질이 하나로만 이루어져 있다면 품목에 맞게 배출하면 되지만, 복합성 제품이라면 종량제로 배출하도록 안내하고 있다”고 답했다.
전다현 기자
allhyeon@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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