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한 다리 건너 지인인 K는 일에 대한 열정과 남다른 성과로 일찍 부장으로 승진했다. 완벽주의자 성향인 그의 눈에는 솔직히 팀원 대다수가 성에 차지 않는다. 하지만 부서 내에 여성 직원의 비율이 높아 행여나 말실수할까 싶어 끊임없이 자기검열을 하며 조심해 왔다. 점심시간이면 끼리끼리 식사하러 나가버려 사무실엔 혼자 남기 일쑤였지만 그러려니 했고, 저녁 회식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며 ‘자발적 왕따’로 지내왔다. 그런데 최근 여직원 4명이 단체로 직장 내 괴롭힘과 성희롱으로 신고했다며 조언을 구해왔다.
지난해 다른 회사로 이직한 입사동기 C는 자기부서에 새로 전입 온 ‘고문관’ 때문에 죽을 맛이라며 하소연이다. 정말이지 일을 못해도 너무 못한다는 것이다. 따로 불러 면담도 하고, 아주 기초적인 것부터 반복해서 가르쳐주고, 주눅 들까 봐 밥이며 커피도 사 먹이고 다독여 봤지만 바뀌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고문관이 적반하장으로 그동안 자기와 주고받은 문자를 모두 들고 인사팀을 찾아가 괴롭힘 신고했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비슷한 시기에 직장 내 괴롭힘 피신고인이 된 K와 C는 3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올해 꽉 채운 40대의 나이가 되었다는 점, 성취욕구가 강한 타입의 ‘일잘러’로 조직 내에서 인정받아 왔다는 점, 그리고 인정받아온 만큼 잘한다의 기준점이 높고 감정의 예민도 또한 높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본인도 근로자에 불과하면서 스스로를 사용자와 동일선상에 두기 쉽다. 직장 혹은 일 자체에 대한 충성도와 자부심이 높다는 이야기다.
사실 일잘러든 일못러든 관계없이 필자를 포함하여 40대,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중간급 관리자들의 고민은 다 똑같다. ‘윗사람뿐 아니라, 아랫사람들 눈치도 봐야 하는 불쌍한 낀 세대’라는 것이다. 적어도 라떼는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라며 술 한잔하다 보면 ‘요즘 애들 무섭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런데 K와 C같이 직장 내 괴롭힘의 피신고인이 되고 안 되고는 업무 영역을 지적하는 과정에서 업무와 무관한 개인의 자질이나 특성과 연관 지어 필요 이상의 부정적인 감정을 포함하여 비난하느냐 아니냐의 한 끗 차이이다. (물론 아예 지적을 안 하고 눈감고 귀 닫고 넘어가는 것도 하나의 전략이다. 대신 상급자의 잔소리 융단폭격과 부하직원의 원성은 스스로 각오해야 한다.)
K는 직원의 업무상 문제를 지적하면서 “일을 어떻게 그 따위로 하냐, 도대체 상식이 있는 거냐 적어도 밥값은 해야지”라고 하거나, 커피타임을 갖고 있는 직원들에게 “언니동생하며 하하호호 수다 떨 시간에 일이나 끝마쳐라’’ 고 지적하는 등 필요 이상의 부정적인 자기감정을 포함하여 말해 온 것이 화근이었다. 나름 격려의 방법이라고 과업을 끝마친 직원들의 어깨를 다독여 준 행위는 ‘성희롱’으로 신고되었다.
업무얘기를 하는데 개인의 상식 여부에 대한 비난은 불필요하다. 아무리 상식 이하의 사람이 눈앞에 있더라도 그에게 ‘정말 상식 밖이군요’ 라고 얘기하는 건 분명 싸움을 거는 행위다. ‘밥값’에 대한 무게감도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K와 같이 성과를 인정받고 회사에서 승진 등의 보상을 받는 사람이야 누가 뭐라고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밥값’을 신경 쓰면서 열심히 일한다. 그런데 일반적인 직장인들의 목표는 ‘적게 일하고, 많이 받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 이들에게 ‘밥값’ 운운하는 것 자체가 불필요한 표현이고 공감을 얻기도 어렵다. 또한 업무 중 휴게시간을 갖는 것이 문제행동도 아니지만, 이에 대해 필요 이상의 표현을 하며 비난한 것도 잘못이다. 동등한 관계도 아니고 수직적인 관계에서 이와 같은 부정적인 대화가 쌓이는데, 관계 자체가 긍정적일 리 없다. 그 와중에 어깨를 다독이다니! 신고인 입장에서는 ‘옳다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C의 경우 몸이 안 좋아 연차나 병가를 신청하는 고문관 직원에게 쿨하게 휴가를 승인한 것까진 좋았으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본심을 담은 한 마디를 불필요하게 덧붙였다. ‘걱정을 끼쳐서 죄송하다니 OO씨는 회사에 걱정을 끼칠 존재 자체가 못 된다.’ 라거나, ‘그냥 다시 태어나는 것밖에 답이 없겠다.’는 말은 아무리 친한 사이라고 해도 부적절한 표현이 분명하다.
그냥 잘되라고, 잘 좀 하자고 술 한잔 사주면서 한 말인데도 문제가 되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 왜냐하면 당신은 상급자이기 때문이다. 상사와 부하라는 관계에서는 말하는 사람이 농담이라고 하더라도 듣는 입장에서는 지위를 이용한 위력행사가 되기 쉬우며, 게다가 그 내용에 있어서 업무와 무관한 개인적인 영역에 대한 과도한 평가나 개입이 포함되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서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일을 너무 못하는데, 지시를 제대로 따르지 않는데 이를 비판하고 책임을 묻는 것도 눈치 봐가며 해야 하느냐고? 안타깝지만 그것이 리더의 무게이다. 그러라고 급여도 더 받고 있고, 나름의 호칭도 불러주고 있으니 말이다. 소속직원의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고 이에 대한 책임을 묻는 관리·감독 행위는 사용자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이니 반드시 행사해야 한다. 오히려 소홀히 하면 업무태만에 해당한다. 하지만 오늘까지 끝내기로 약속한 과업을 완수하지 못했다고 해서, 바쁜 와중에 개인 사정으로 자리를 비운다고 해서 상대방에게 감정을 섞어가며 비난하고, 업무와 무관한 개인의 특성이나 성격까지 연관 지어 비판하는 것은 명백한 ‘월권’이다. 그러니 눈치 봐가며, 눈치껏 해야 한다.
그런데 그보다 앞서 생각해야 할 것은 조직에서 내가 상대방에게 기대하는 수준이 너무 높은 것은 아닌지, 애초에 리더로서 부하직원들에게 제대로(혹은 구체적으로) 지시하고 정확히 피드백을 주며 노력해왔는지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것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 무엇이 잘못인지 잘 모르겠다면 주변에 조언을 구하는 것도 방법이다. 물론 잘 듣는 귀와 열린 마음이 있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K와 C에게 이런 이야기를 에둘러 전했는데 그들이 얼마나 받아들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두 명 모두 각자의 회사에서 직장 내 괴롭힘 행위가 인정되었다. 그나마 잘못을 빨리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사과한 K는 징계가 약하게 나왔다고 전해왔다. 그는 “우리도 소싯적엔 윗사람들한테 ‘요즘 애들’이란 소리를 들으며 일해왔는데, 어느덧 40대가 되어서 그 ‘요즘 애들’에게 크게 한 수 배웠네요.”라며 씁쓸하게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필자 김진은? 정규직, 비정규직, 파견직을 합쳐 3000명에 달하는 기업의 인사팀장을 맡고 있다. 6년간 각종 인사 실무를 수행하면서 얻은 깨달음과 비법을 ‘알아두면 쓸데있는 인사 잡학사전’을 통해 직장인들에게 알려주고자 한다.
김진 HR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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