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음식물 분쇄기(디스포저·disposer)로 공공하수처리장에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가정마다 음식물 분쇄기를 설치하는 사례가 늘면서 하수 오염도가 증가한 까닭이다. 공공하수처리장 관계자들은 음식물 분쇄기로 인해 일일 하수처리 용량이 줄었다고 말한다. 하수처리장에 유입되는 슬러지(찌꺼기)의 양도 늘어나면서 장비의 사용 연한도 줄었다. 이 같은 문제가 계속되자 올해 2월 환경부는 불법으로 유통되는 음식물 분쇄기를 감시하는 ‘주방용 오물분쇄기 유통 모니터링’ 용역 공고를 냈다. 전문가들은 현재 상황에서 음식물 분쇄기 사용은 하수 오염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음식물 분쇄기로 하수 오염 증가…처리장 ‘마비’ 상태
“음식물 분쇄기 사용이 늘면서 스크린에 찌꺼기가 많이 걸린다. 양이 너무 많아져 작동이 어려운 상황이 됐고, 최근 스크린을 교체하기로 했다.” 경기도 하남시 공공하수처리장 관계자의 말이다. 최근 공공하수처리장은 음식물 분쇄기로 인해 하수 처리에 문제를 겪고 있다. 생활하수가 모여 처리장에서 1, 2차로 큰 슬러지를 걸러내는데, 이 양이 많아져 처리가 어려운 것.
하남 공공하수처리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A 씨는 “불법으로 음식물 분쇄기가 많이 설치된다. 음식물 처리 비용도 들지 않고 분리해서 버리는 수고가 안 드니 그렇다. 처음에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근처에 신축 아파트가 생기면서 점점 심해졌다. 여기에 걸러지는 찌꺼기 양이 하루 약 1톤 정도 된다”고 설명했다.
이 하수처리장에서는 넘치는 슬러지를 감당하지 못해 여분의 스크린까지 가동 중이다. 양이 많아 가동이 중단될 때도 있다. 그러면 노동자들이 직접 하수에 들어가 손으로 오물을 빼내기도 한다. 슬러지가 기기 고장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기기에 잔뜩 낀 찌꺼기는 작업자들의 옷과 얼굴, 사방에 튄다. 슬러지를 꺼내는 과정에서 손이 절단되는 사고도 일어난다. 작업장 내 먼지도 증가했다.
최근에는 슬러지를 거르는 스크린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해 교체가 결정됐다. A 씨는 “기기의 노후화가 빨라졌다. 사용연한보다 일찍 교체한다. 하지만 스크린을 교체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찌꺼기가 많아지니 설비가 감당하지 못하는 거다. 새 걸로 교체해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공공하수처리장의 오염도도 증가했다. 관계자 B 씨는 “원래 하수처리장에 유입되는 하수의 BOD(생물화학적 산소요구량)는 200 정도였다. 요즘은 300 정도로 높아졌다. 오염도가 심해졌는데, 음식물 쓰레기가 주원인이라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남 공공하수처리장의 일일 처리 용량은 3만 2000톤이다. 현재는 이 용량의 3분의 2 정도만 처리가 가능하다. B 씨는 “실제 일일 처리량이 2만 2000톤 정도다. 처리용량은 오염도를 고려해 산정된다. 음식물 분쇄기 사용이 늘면서 유입 하수 오염이 더 심각해 설계 용량만큼 처리하지 못하는 거다. 처리 못 한 하수는 탄천 하수처리장으로 보냈는데, 최근 거기서도 처리 용량이 넘친다고 해서 오도 가도 못 하게 됐다. 이 때문에 하수처리장 증설 공사도 하는 중이다”고 말했다.
하수처리장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음식물 분쇄기 사용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수 오염을 높이는 것은 물론 하수 처리에도 지장을 주기 때문이다. 관계자 C 씨는 “편리함 때문에 도입된 음식물 분쇄기로 하수처리장은 직격탄을 맞는다. 비용도 더 든다. 분쇄기를 사용하는 가구는 이를 분리 배출해 사용하는 가구와 달리 음식물 처리에 비용을 내지 않는 형태다. 빠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10년 됐지만 단속도 대책도 없어
일반 가정에서 음식물 분쇄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건 2012년부터다. 1985년부터 1995년 사이 일시적으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분쇄기 사용이 수질 악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로 사용이 금지됐다. 그러다 이명박 전 대통령 공약으로 ‘주방용 오물분쇄기 허용 검토’가 추진됐고, 2012년부터 하반기 인증 제도를 도입했다.
현재 일반 가정에서 음식물 분쇄기를 사용하려면 인증 받은 제품만 설치 가능하다. 음식물 찌꺼기의 80% 이상은 하수도로 갈 수 없고 회수해 별도로 버리는 구조다. 그러나 회수통이나 기름망 등을 제거하거나 인증 받지 않은 제품의 판매가 성행하면서 수질 오염 문제가 불거졌다.
노후한 하수관과 하수처리시설 등도 걸림돌이다. 2022년 11월 수원시 한 아파트에서는 음식물 분쇄기로 인해 배관이 파손되기도 했다. 음식물쓰레기를 갈아 100% 하수구로 버리는 불법 행위도 증가했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단속에 나섰지만, 일반 가정은 적발하기 쉽지 않다. 제품 인증제도가 시행되고 있지만, 분쇄기 구매나 설치 시에는 별도 신고가 필요 없기 때문이다.
음식물 분쇄기 설치 확대는 윤석열 대통령도 공약으로 내걸었다. 대선 기간 윤석열 대통령은 주택을 신축하는 경우 싱크대에 분쇄기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윤 대통령은 “분쇄기를 통해 분쇄한 음식물을 하수구로 건물 지하의 공동 수거함에 모은 뒤 수거하고, 수거 음식물쓰레기는 미생물로 분해해 도시가스로 사용 가능한 가스를 생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작년 하반기부터 ‘건물 단위 주방용 오물분쇄기 도입 타당성 조사’ 용역을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분쇄기 사용으로 인한 오염에 대해선 아무런 대책이 없는 상황이다. 환경부는 올해 2월 거름망을 제거하거나 인증 받지 않은 분쇄기 사용을 감시하는 ‘주방용 오물분쇄기 유통 모니터링’ 용역을 공고했지만, 아직 이렇다 할 대안은 없다.
환경부 생활하수과 관계자는 “현재 진행하는 연구용역은 초기라 구체적인 방안이 나오진 않았다. 올해 하반기까지는 돼야 나올 예정이다. 오물 분쇄기 인증을 받은 제품의 실적은 확인하고 있지만, 이를 공개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전문가들 “허용 자체가 문제…지금이라도 금지해야”
전문가들은 음식물 분쇄기 사용이 하수 오염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또 현 제도로는 불법 분쇄기 사용을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분쇄기를 사용해 하수도로 내려보내면 노후 아파트 같은 경우 배관 막힘 현상이 증가하고, 지자체 하수처리장은 오염부하가 높아져 하수처리에 어려움이 발생한다. 지금 상황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하수로 내려보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만약 음식물 쓰레기 분쇄기 사용이 가능해지려면 확실하게 중간에 거름망이 작동해야 한다. 현재도 법적으로는 음식물 찌꺼기 80% 이상을 회수하게 돼 있는데, 이걸 지키지 않는 것도 문제다. 아파트 같은 경우 한 번에 모아서 걸러주는 시스템을 설치하는 것도 방법이다. 현실적으로 단속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런 시스템이 실제 작동하느냐가 관건이다. 환경부에서 관련 용역을 진행하고 있는데, 현재 상황을 보면 개별 관리가 어렵기 때문에 하수 처리 문제가 계속 증가할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음식물 분쇄기 허가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폐기물협회 폐기물 분야 전문가 박균성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처음부터 음식물 분쇄기를 통한 처리는 적절하지 않은 방법이었다. 하수로 음식물을 내려보낸다는 것 자체가 환경을 침해하는 행위다. 지금 같은 방식이라면 간편함과 경제적 이득 때문에 분쇄기 처리가 늘어날 거다. 그렇게 되면 하수처리에 지장을 줄 수밖에 없다. 별도 음식물을 분리해 처리하는 방법이 있는 상황에서 분쇄기를 사용하는 것은 탈법이다. 아파트 등에서 공동으로 분쇄해 버리는 방식도 쉽지 않다. 분쇄된 걸 다시 처리할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애초에 음식물 분쇄기 허용 자체가 환경 정의상 옳지 않은 정책이다. 환경을 오염시키는 행위를 무한대로 허용한 것이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문제였다. 지금이라도 하수처리 비용을 증가시키는 행위를 금지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백나윤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는 “음식물 폐기물은 유기물로 폐기 과정에서 많은 오염 물질을 배출한다. 우리나라 하수 구조도 분쇄기를 사용하기에 무리가 있다. 정부에서 분쇄기 사용을 더 추진하는 것은 친환경 정책이 아니다. 우리나라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환경정책이다. 전면적으로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홍수열 소장은 “대통령 공약으로 2012년부터 허용됐는데, 이것부터가 문제였다. 분쇄한 쓰레기를 80% 이상 회수하거나 20% 미만 배출하라는 건 현실성이 없는 정책이다. 그러니 음식물을 100% 하수로 버리는 사례가 늘었고, 불법 제품 확산이 제어가 안 되다 보니까 문제가 심각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다현 기자
allhyeon@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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