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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우주 최대 미스터리, 블랙홀과 암흑에너지의 '묘한 관계'

우주 가속 팽창 일으키는 미지의 에너지 원천이 블랙홀일 수 있다는 새로운 가설 등장

2023.03.20(Mon) 10:54:02

[비즈한국] 우주의 팽창은 점점 빨라진다. 이것을 우주의 가속 팽창이라고 한다. 우주는 수많은 별과 은하로 채워져 있고 이들 사이에는 중력이 작용한다. 얼핏 생각하면 이들의 중력으로 인해 우주는 수축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실제 우주에선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진다. 중력에 대항하며 우주 시공간을 더 빠르게 팽창시키는 미지의 에너지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천문학자들은 이 미지의 존재를 암흑에너지라고 부른다. 

 

빅뱅(왼쪽)에서 출발해 현재 가속 팽창(오른쪽)이 이어지고 있는 우주의 진화 과정을 표현한 그림. 이미지=ESO


아직까지 암흑에너지의 정확한 정체는 베일에 싸여 있다. 가장 유력한 가능성은 암흑에너지가 우주 공간 자체에 내포된 공간의 에너지, 바로 진공에너지라는 것이다. 텅 빈 우주 공간은 사실 텅 비어 있지 않다. 텅 빈 공간에도 에너지가 내재해 있다. 진공에너지는 공간 자체가 가진 에너지이기 때문에, 공간이 넓어지면 그에 비례해서 진공에너지도 증가한다. 공간 자체가 넓어지면서 계속 더 빠르게 증가하는 에너지! 정확히 우주의 가속 팽창을 일으키는 암흑에너지의 성질과 비슷하다. 그래서 많은 천문학자들은 암흑에너지의 정체가 진공에너지일 것이라 추정한다. 

 

최근 이런 가능성을 보여주는 새로운 논문이 발표되었다. 심지어 단순히 수식, 이론이 아닌 실제 관측적 증거를 제시했다! 이 논문은 놀랍게도 진공에너지가 모두 블랙홀 속에 숨어 있다고 이야기한다. 블랙홀이 우주의 가속 팽창을 일으키는 암흑에너지의 진짜 기원이라는 것이다. 모든 걸 빨아들이기만 할 것 같은 블랙홀이 어떻게 우주를 점점 빠르게 팽창시키는 진짜 범인이 될 수 있을까? 그 놀라운 이야기를 소개한다. 

 

우주의 거대한 두 가지 미스터리, 블랙홀과 암흑에너지의 놀라운 연결 고리를 소개한다.

 

블랙홀은 아주 무거운 질량이 한 점에 모여 응집된 존재다. 중력이 매우 강해서 너무 가까이 접근하면 빛도 그 어떤 정보도 빠져나올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이 한계를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이라고 부른다. 최근 지구 전역의 망원경을 총동원한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EHT)’을 통해 사건의 지평선에 근접한 블랙홀 주변 빛의 고리의 실제 모습을 포착했다. 하지만 이론상으론 지구보다 더 큰 망원경을 쓰더라도 절대 그 안은 볼 수 없다. 사건의 지평선 안에서는 그 어떤 빛도, 정보도 빠져나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초로 직접 관측에 성공한 M87 은하 중심의 초거대질량 블랙홀 주변 빛의 고리. 사진=EHT Collaboration


여전히 우린 사건의 지평선이란 울타리 안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수년 전부터 일부 이론물리학자들은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 안에 진공에너지가 담겨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수학적 모델일 뿐, 관측 증거는 하나도 없었다.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이렇다. 우주 공간 자체가 팽창하면 그 공간에 존재하는 블랙홀도 함께 늘어난다, 그리고 블랙홀이 품고 있는 진공에너지 역시 함께 늘어난다.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공식, E=mc^2에서 알 수 있듯이 에너지는 곧 질량, 질량은 곧 에너지다. 즉 우주 팽창과 함께 블랙홀이 늘어나고, 그 안에 있는 진공에너지가 늘어나면 결국 블랙홀의 질량도 함께 무거워져야 한다. 우주 자체가 팽창하면서 그에 비례해서 우주 전역의 블랙홀 질량도 무거워져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에너지 보존 법칙에서 이야기하듯이 우주 전체 에너지는 보존되어야 한다. 결국 블랙홀이 더 무거워지고 더 많은 에너지를 머금게 된다면, 블랙홀 바깥의 우주 공간은 그 늘어난 에너지에 상응하는 음(-)의 에너지를 얻어야 한다. 즉 블랙홀이 무거워지면서 도리어 우주 공간 자체가 더 팽창하는 효과가 발생하게 된다! 이것이 블랙홀이 우주의 가속 팽창을 일으킬 수 있다는 기본적인 아이디어다. 

 

그렇다면 이 가설을 어떻게 검증할 수 있을까? 실제 우주가 나이를 먹으면서 우주 속 블랙홀들의 질량이 무거워지고 있는지를 비교하면 된다! 간단하게 식으로 표현하면 이렇다. 블랙홀의 질량을 M, 우주의 스케일을 a라고 할 때, 시간이 흐르며 우주의 팽창과 함께 a가 증가하면, 그에 따라 M이 얼마나 늘어나는지를 비교해보면 된다! 

 

타원은하는 어지간한 충돌과 물질 유입이 거의 다 끝난, 진화를 모두 마친 단계의 은하라고 볼 수 있다. 사진=NASA, ESA, R.M. Crockett(University of Oxford, U.K.), S. Kaviraj(Imperial College London and University of Oxford, U.K.), J. Silk(University of Oxford), M. Mutchler(Space Telescope Science Institute, Baltimore, USA), R. O'Connell(University of Virginia, Charlottesville, USA), and the WFC3 Scientific Oversight Committee


이를 검증하기 위해 이번 연구에서 천문학자들은 먼 과거 우주의 은하 속 블랙홀들과 가까운 우주의 블랙홀들의 질량을 비교했다. 특히 이들은 둥근 타원은하 속 블랙홀들만 사용했다. 타원은하는 이미 한참 전에 작은 은하들끼리의 충돌과 병합을 통해 모든 반죽이 다 끝난 상태로 간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은하 중심 블랙홀의 질량은 다양한 과정을 통해 무거워진다. 은하끼리 충돌하거나 주변 은하에게 물질을 빼앗아 흡수하면서도 무거워진다. 따라서 블랙홀이 정말 우주 팽창에 비례해서 무거워지는지를 검증하기 위해선 오직 순수하게 우주 팽창에 의해서만 블랙홀이 성장하는 과정을 포착해야 한다. 은하끼리의 충돌이나 가스 유입 등 외부 요인으로 인해 블랙홀이 무거워지는 효과는 최대한 걸러내야 한다. 이 때문에 천문학자들은 이미 어지간한 은하 충돌과 물질 유입이 다 끝났다고 볼 수 있는 덩치 큰 타원은하 속 블랙홀들만 샘플로 사용한 것이다. 

 

다양한 시점의 은하 속 블랙홀 질량을 비교한 그래프. 가로축은 은하들의 별 질량, 세로축은 은하 중심 블랙홀의 질량을 의미한다. 주황색 점은 110억 년 전, 파란색 점은 60억 년 전, 빨간색 점은 현재의 은하들이다. 주황색 점부터 파란색 점을 거쳐 빨간색 점으로 오면서 점들이 찍힌 높이가 올라가며 블랙홀 질량이 전반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천문학자들은 가까운 우주의 은하부터 조금 더 먼 과거 우주의 은하까지, 각 은하의 전체 별 질량과 은하 중심 블랙홀의 질량을 직접 비교했다. 당연히 은하의 별 질량이 무거울수록 그 중심의 블랙홀도 무거워진다. 그런데 가까운 주변 우주 속 블랙홀들에 비해 60억 년과 110억 년 전 은하 속 블랙홀들이 조금 더 가벼웠다. 60억 년 전 우주의 은하 중심 블랙홀에 비해 현재 은하들의 중심 블랙홀은 약 7배 더 무겁다. 110억 년 전 우주의 블랙홀에 비해선 약 20배 더 무겁다. 우주가 나이를 먹고 팽창하는 동안 블랙홀 자체의 질량이 꾸준히 증가했다는 뜻이다! 

 

관측된 블랙홀의 증가 추세를 통해 블랙홀 질량이 우주의 스케일과 어느 정도로 비례하는지를 확인했다. 그 결과 우주 스케일의 세제곱에 비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프는 가장 적합한 계수가 얼마인지를 통계적으로 비교한 결과다. 계수가 3일 때 결과를 가장 잘 설명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천문학자들은 110억 년 전, 60억 년 전,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블랙홀의 질량이 증가하는 추세를 비교했다. 이를 통해 우주의 스케일이 넓어짐에 따라 블랙홀의 질량이 어느 정도 비율로 증가하는지를 확인했다. 그 결과 블랙홀 질량은 우주 스케일의 세제곱에 비례해서 증가하는 것으로 나왔다. 우주가 두 배 팽창하면 블랙홀 질량은 그 세제곱인 8배 무거워진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3이라는 숫자가 너무나 놀랍다. 정확하게 진공에너지가 보여줘야 하는 값이기 때문이다! 

 

암흑에너지의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는 진공에너지는 공간 자체가 갖고 있는 에너지다. 즉 공간의 부피가 넓어지면 그에 비례해서 진공에너지도 증가한다. 우주의 지름이 2배 커지면, 우주의 부피는 그 세제곱인 8배가 커진다. 그러면 우주 공간의 진공에너지도 8배 증가한다. 암흑에너지​는 우주의 부피에 비례해서 계속 증가하기 때문에 우주가 아무리 팽창해도 ​암흑에너지의 ‘밀도’는 ​일정하게 유지된다. 이것이 현재 관측되는 암흑에너지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우주가 팽창하면서 우주 부피가 늘어나기 때문에 ​암흑물질(파란색 선)과 광자에너지(빨간색 선)는 ​밀도가 감소한다. 하지만 암흑에너지는 우주 공간 자체가 갖고 있는 에너지이기 때문에 우주 부피가 팽창하더라도 밀도가 일정하게 유지된다(녹색 선). 사진=Pearson Education Inc


그런데 놀랍게도 우주가 팽창하고 스케일이 넓어지면 그 세제곱에 비례해서 블랙홀 질량이 증가한다! 진공에너지 역시 공간 자체가 갖는 에너지이기 때문에 스케일의 세제곱에 비례하는 부피에 비례한다. 즉 블랙홀의 질량과 우주의 진공에너지가 서로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놀라운 관측적 증거일 수 있다! 어쩌면 암흑에너지라는 가장 난감한 존재가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 너머 깊숙한 어둠 속에 숨어 있는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아직은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번 발견은 우주의 팽창과 블랙홀 질량의 성장이 참 오묘하게도 똑같이 우주 스케일의 세제곱에 비례해서 진행되고 있다는 걸 알았을 뿐이다. 정말 이들이 연결되어 있는지, 정확히 블랙홀의 어떤 메커니즘이 진공에너지를 만들어내는지를 밝힌 건 아니다. 즉 우주 팽창과 블랙홀 질량의 상관관계를 밝힌 것일 뿐, 인과관계를 규명한 것은 아니다.앞으로 블랙홀 추가 관측을 통해서 검증해야 할 것이다. 

 

우주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존재인 블랙홀과 암흑에너지. 오랫동안 둘은 전혀 상관없는 별개의 수수께끼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은 본질적으로 같은 존재가 아닐까. 이번 가설이 맞다면 천문학자들은 블랙홀과 암흑에너지의 연결 고리를 실제 관측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검증할 방법을 드디어 찾은 것이다. 거대한 ​두 ​미스터리는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 어쩌면 두 존재의 비밀이 동시에 풀릴지도 모르겠다. 

 

참고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3847/1538-4357/acac2e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3847/2041-8213/acb704

https://www.science.org/content/article/dark-energy-supermassive-black-holes-physicists-spar-over-radical-idea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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